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오늘은 한국농구의 국경일이다.”
남자농구대표팀의 내년 스페인 남자농구월드컵 출전 확정. 1998년 그리스 세계선수권 이후 16년만의 경사. 하루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농구인들은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한 농구인은 11일 밤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오늘은 한국농구의 국경일이다”라고 흥분했다. 맞다. 최근 몇년간 치욕과 상처로만 얼룩졌던 한국농구가 모처럼 크게 웃었다. 한국농구가 이번 아시아선수권대회 3위로 얻은 것은 무엇일까.
▲ 한국농구 우월한 유전자 유재학-김민구
한국의 이번 대회 출발은 초라했다. 6월 초 진천선수촌에 모여 훈련을 시작했을 당시 경쟁국가의 정보도, 연습경기를 가질 스파링파트너도 없었다. 인천 실내-무도 아시안게임 관계로 삼산체육관을 사용할 수 없어 진천에 들어왔던 전자랜드가 없었다면 큰일 날뻔했다. 그리고 7월 초에 참가했던 윌리엄존스컵. 유재학 감독은 단단히 충격을 먹었다. 정보부재에 허약한 경쟁력까지. 손 봐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유 감독은 결국 해냈다. 만 가지 수를 지닌 만수(萬手)답게 해법을 찾았다. 장신 귀화선수를 봉쇄하기 위한 오버가딩과 겹수비, 1-3-1 지역방어 등 아시아 상대국가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전술을 준비했다. 철저하게 12인 모두를 활용하는 스피드 농구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특히 히트를 친 1-3-1 지역방어는 하이 포스트 공격과 외곽슛을 즐기는 중동국가들을 상대로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기본적으로 활발한 외곽 로테이션과 리커버가 있었기에 취약지구인 양 코너도 봉쇄했다. 비록 이란, 필리핀전서 집중력을 잃긴 했지만, 이만하면 대성공이었다. 유 감독은 국제적으로도 통하는 명장이라는 게 입증됐다.
선수들로 눈을 돌려보면 역시 김민구(경희대 4학년)의 활약이 대단했다. 191cm로 경희대 졸업반인 그는 올 가을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KBL에 데뷔한다. 폭발적인 외곽슛과 질풍 같은 돌파, 빠른 발을 이용한 속공 전개까지. 경희대에선 듀얼가드 역할을 맡았지만, 유 감독은 슈터로서의 가능성도 확인했다. ‘구비 브라이언트’란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필리핀과의 준결승전과 대만과의 3-4위전서 겁 없는 농구를 선보이며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김민구는 이번대회 베스트5로 선정됐다. 또한, 김종규, 이종현, 최준용, 문성곤 등 대학생 5인방의 중용은 대성공이었다. 남자농구가 세대교체 신호탄을 쐈다.
▲ 이 관심과 사랑, 쭉 이어가야 한다
이번 대회의 진정한 성과. 농구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확인한 것이다. 한국농구의 인기는 몇년전부터 꾸준히 떨어졌다. 완전히 바닥까지 내려간 건 아니었다. 1라운드 첫 경기서 중국을 이기자 농구 팬들의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대표팀이 경기를 치를 때마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SBS ESPN이 1라운드 경기를 프로야구 중계와 겹치는 관계로 녹화중계를 하자 농구 팬들의 원성이 폭발했다. 한국이 1,2라운드서 선전하지 못했다면, 11일 프로야구 넥센-한화전이 SBS CNBC에서 중계될 일은 없었다. 3-4위전은 야구시간과 겹쳤음에도 SBS ESPN이 생중계를 했다. 그만큼 이번 대회 선전을 펼친 남자농구대표팀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이 관심과 사랑을 앞으로 쭉 이어가는 게 과제다. 과거에도 국제대회 선전 후 해당 종목이 반짝 관심을 끈 적은 있었다. 농구도 모처럼 팬들의 관심을 얻을 기회는 잡았다. 당장 15일부터 잠실학생체육관에서 프로-아마최강전이 시작된다. KBL과 대한농구협회는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14일부턴 윌리엄존스컵 여자부가 시작된다. 그리고 남자프로농구는 10월 초, 여자프로농구는 11월 초에 개막한다. 이 기세를 프로농구 시즌까지 이어가야 한다.
▲ 계란으로 바위 부딪혀보자, 세계 흐름 몸으로 느껴볼 기회
이번 대회서 얻은 것들 중 가장 큰 건 따로 있다. 바로 내년 세계대회에 참가할 티켓을 얻은 것이다. 단순히 세계대회에 참가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둬선 안 된다. 왜 한국이 지난 16년간 이 대회에 참가하지 못해 좌절했는지를 되새겨야 한다. 11일 통화가 닿은 이 농구인은 “세계농구의 최신흐름을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했다.
4년마다 열리는 남녀농구월드컵은 세계농구의 최신 흐름과 패권 지형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여자대표팀은 그동안 꾸준히 세계대회에 참가하면서 감각을 쌓았다. 그러나 남자대표팀은 무려 16년간 우물 안 개구리였다. 이론으론 잘 안다. 포스트업 위주의 골밑 공격이 아닌 2대2 공격과 빠른 트렌지션이 현대농구의 주요 흐름이란 걸. 그러나 내년 스페인에서 웃는 팀들이 세부적으로 어떤 농구를 갖고 나올 것인지는 직접 부딪혀보기 전엔 알기 어렵다.
이 농구인은 “말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경기를 해보는 것은 다르다. 이기든 지든 일단 부딪혀보는 게 중요하다”라고 했다. 어차피 한국 남자농구의 세계적인 경쟁력은 최하위권 수준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실제로 세계 강호와 맞붙어보면서 한국농구가 뭐가 부족하고,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가 있다. 선수는 물론이고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자꾸 선진 농구를 경험하면서 차근차근 세계와의 격차를 좁혀나가는 게 중요하다. 언제까지나 아시아 3위에 만족할 순 없는 노릇이다.
아시아선수권대회 3위. 한국농구는 얻은 게 정말 많다. 단순히 유재학 감독의 용병술과 김민구의 발견에만 웃고 있을 여유는 없다. 한국남자농구가 이번 대회서 진짜 얻은 건 따로 있다.
[남자농구대표팀.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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