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시꽃', 300만원의 기적…이돈구 감독을 주목하라!
[고인배의 두근두근 시네마]
성공(남연우)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스물여덟 살의 청년으로 작은 봉제공장 노동자이다.
책임감이 강하고 착실한 그는 봉제공장 내에서 동료들의 신뢰를 받지만 봉제공장과 고시원을 오가며 홀로 살고 있는 그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항상 외톨이다. 더욱이 보육원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해 온 그에겐 고등학교 시절인 10년 전의 사건이 목구멍의 가시처럼 늘 그를 괴롭힌다.
그것은 그가 18세였던 고교시절, 가담하지 않으면 왕따를 시키겠다는 친구들의 강요에 의해 연루된 성폭행 사건으로 비록 자신은 실신한 소녀를 건드리지 않았지만 성공은 성폭행에 가담했다는 지울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심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또한 교복의 이름표를 보고 알게 된 성폭행 피해자인 박장미를 하루도 잊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는 소녀와 마주친 성공은 교회에 나오라고 전단을 주는 그녀가 박장미(양조아)임을 단박에 알아보지만 친구의 독촉으로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친구의 말실수로 친구 대신 억울하게 폭행을 당하고 수모까지 당한 성공은 장미를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어 교회를 나가게 되고 독실한 신자인 장미는 교회 청년부 모임에 온 그를 새로운 신자로서 반갑게 대해준다.
"열심히 기도하면 용서 받을 수 있나요?"라는 성공의 질문에 "용서 받을 수 있어요"라고 확신하는 밝고 쾌활한 장미와의 만남으로 성공의 단조롭던 일상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도 성폭행에 대한 상처로 교복 입은 남학생들만 봐도 공포에 사로잡히고 혼자 사는 집에 몇 겹으로 자물쇠를 걸어두고 사는 장미를 지켜 본 성공은 고통 속에 눌려있는 장미에 대한 연민과 죄책감으로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 봉제공장도 그만두고 그녀가 일하는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성공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장미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성공과 여전히 10년 전 상처로 인해 괴로워하는 장미의 사랑은 이루어질까? 장미는 성공을 용서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성공은 죄를 씻을 수 있을까?
고교시절, 친구들이 합세한 성폭행 현장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성공의 갈등으로 시작되는 이돈구 감독의 '가시꽃'은 도덕적으로 무지하고 무책임한 친구들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성폭행 현장에 있었던 성공의 시점과 선택을 통해 죄의식과 용서, 그리고 단죄에 대한 질문을 강렬하게 관객들에게 던진다.
가해자의 입장인 성공과 피해자인 장미는 10년 동안 아물지 않는 상처로 인해 잔혹한 시간 속에 갇힌 인물로 그들의 갈등은 일반적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것과는 다르게 이중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정작 성폭행을 저지른 친구들은 죄의식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지만 성폭행현장에 있었던 성공은 친구들의 악행을 저지할 수 없었던 자신의 무능력과 장미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만큼,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죄인을 용서하고 싶었던 장미 역시 성폭행자들에 대한 증오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을 끊임없이 원망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성공에게 과감한 선택을 하게하는 가해자로 전이된다. 그것은 씻을 수 없는 죄책감으로 용서를 갈구하는 성공의 장미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그녀를 위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부각된다.
그런 만큼 이 영화의 포인트는 진짜 속죄와 용서는 가능한 것인지, 피해자와 가해자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면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운명을 각인시켜주는데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두 인물인 용서받지 못한 남자 성공과 용서하지 못한 여자 장미의 만남을 기점으로 서로 가까워지면서 극적 긴장감을 서서히 증폭시킨다.
그것은 장미가 성공이 현장에 있었던 가해자 일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장미에게 진실을 고백하려다 끝내 하지 못하는 성공의 불안과 소박한 염원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장미가 성공을 자신을 지켜주는 키다리 아저씨로 생각하고 믿는 만큼, 관객들은 장미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성공의 바램이 이루어지길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교회 청년부 수련회에서 "그 새끼들,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며 처절하게 절규하는 장미와 그 절규를 듣는 성공의 고통을 동시에 보여주는 진실 고백 장면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피맺힌 갈등을 각인시켜주는 이 영화의 정점으로 가슴 먹먹한 감동을 주면서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 시킨다.
특히 "제가 평생 장미씨를 지켜드릴께요"라는 성공과 마찬가지로 가해자들은 물론, 피해자인 장미 역시 비루한 삶을 살고 있는 만큼 가장 서민적인 풍경과 캐릭터를 각인시켜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그것은 총제작비 300만원으로 완성한 이돈구 감독의 뚝심과 재능기부로 이루어진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헌신, 그리고 열정에 기인한다. 카메라 한 대와 오디오(녹음기) 한 대로 촬영한 이 영화는 조명을 쓰지 못해 길거리 가로등이 조명을 대신했고 편집은 노트북으로 대체했다.
비록 미끈한 미장센이나 고급스러운 비주얼 대신 불규칙적이면서 거친 장면의 교차로 현장감을 부각시켜주는 이 영화는 치밀한 프리프로덕션 과정과 배우들의 희생, 이돈구 감독의 뚝심이 초저예산인 이 영화 곳곳에 살아 숨 쉰다.
단돈 300만원으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 이돈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가시꽃'은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부문에 초청되어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 '무산일기'의 박정범 감독에 비견할 '2012년의 발견'이라는 찬사를 얻었고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 연이어 진출하여 호평을 얻었다. 특히 초저예산으로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부문에 초청되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강요에 의해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한 남자가 피해자인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속죄를 담은 '가시꽃'은 가해자 자신이 종교에 귀의해 하느님께 자신의 죄가 사해졌다는 믿음에 대해 질문을 던진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손자의 범죄에 대한 죄의식을 부각시킨 '시', 그리고 자신을 단죄하면서 용서와 구원의 문제를 각인시킨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민감한 사회문제인 성폭행을 다룬 '가시꽃'은 복수와 속죄를 다룬 영화로 보이지만 단순한 복수와 속죄로 후련한 결말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충격적인 반전으로 원죄는 결코 끝나지 않고 씻을 수 있는 죄란 없다는 묵직한 주제의식을 각인시키면서 성공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무모한 것인지, 또한 속죄와 용서는 가능한 것인지 관객들에게 되물으면서 긴 여운을 남겨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러닝타임 103분 동안 강한 흡인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가시꽃'은 놓치기 아까운 두근두근 시네마로 300만원의 기적을 보여준 이돈구 감독을 주목하게 한다.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영화 '가시꽃' 스틸컷. 사진 = 인디스토리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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