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독해지려고 노력한다.”
독해지려고 노력하는 감독. 이미 농구판에서 독하기로 소문난 감독이 더 독해진다면. 지난 9일 장위동 우리은행 연습체육관. 위성우 감독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조금 전까지 기자와 농담하던 밝은 얼굴은 온데간데 없다. 우리은행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경기에 임했다. 태생적으로 스피드, 힘에서 자신들보다 앞선 남자고등학교 팀과의 연습게임. 위 감독에게 자비란 없었다. 정말 혹독하게 선수들을 몰아쳤다.
위성우 감독은 지금부터 바빠진다. 2012-2013시즌 만년 최하위 우리은행을 여자프로농구 통합 챔피언으로 이끈 달콤함은 끝났다. 이젠 수성을 해야 할 입장. 게다가 오는 10월 27일부터 11월 3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릴 FIBA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감독으로 참가한다. 8월 26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29일 진천선수촌에 입촌한다. 본격적으로 두집살림에 돌입하는 것. 남자대표팀의 선전과 여자대표팀의 지난해 올림픽 최종예선 참패. 위 감독의 어깨가 대단히 무겁다.
▲ 훈련 강도 약해진 건 맞다. 그래도 여전히 독하다
우리은행은 최하위를 밥 먹듯 했던 시절과 지난 시즌 멤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티나 톰슨이란 걸출한 외국인선수가 있었으나 시즌 초반부터 잘 나갔다. 수비 조직력과 근성이 살아났다. 위 감독의 엄청난 지옥훈련을 부상자 없이 소화한 우리은행 선수들은 무적으로 변신했다. 워낙 훈련 강도가 높아서 밥 먹을 시간도 뒤로 늦추고 훈련을 한 적도 있었다. 선수단 숙소 식당 직원이 제 시간에 퇴근하지 못했다는 후문도 있었다.
1년 뒤. 위성우 감독은 “디펜딩챔피언으로서 정상을 수성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라고 했다.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은행은 지난해엔 4월부터 훈련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엔 6월 3일에 훈련에 돌입했다. 챔피언결정전과 아시아챔피언십에 우승여행까지. 꼴찌만 하던 지난 몇 년보다 시즌이 훨씬 길었다.
위 감독은 “훈련 강도는 약해진 게 사실이다. 강하게 하고 싶어도 작년과 지금 선수들의 몸 상태가 다르다”라고 했다. 훈련 시작이 늦었으니 컨디션이 올라오는 시간도 늦다. 자칫 강하게 훈련을 하다간 부상의 위험이 있다. 그래도 집중력 있게 훈련을 한다. 관리도 철저하다. 아직 부상자는 단 1명도 없다. 새 외국인선수 니콜 포웰과 사샤 굿렛, 트레이드 된 이선화가 뉴페이스. 배혜윤과 김은혜, 티나 톰슨 등이 빠져나갔다. 윌리엄존스컵에 참가한 박혜진과 이승아도 곧 합류한다.
위 감독은 여전히 독하게 훈련을 지휘한다. 맏언니 임영희와 김은경, 주전센터 양지희에 백업멤버들까지. 주전, 백업, 고참, 신예들의 구분이 없다. 누구든 위 감독의 레이더망에 걸리면 큰일난다. 기자와 얘기를 나누다가도 갑자기 훈련을 스톱한 뒤 세세한 위치 조정과 움직임 지시까지. 독사다. 위 감독의 지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느슨한 플레이를 하면 따라오는 건 혹독한 꾸중과 반복훈련. 위 감독은 “열심히 안 하고는 좋은 결과를 낼 수가 없다. 과정이 있어야 결과가 따라온다”라고 강조했다.
▲ 2명 보유 외국인선수, 못 보고 대표팀 가서 신경 쓰이네
현재 위 감독의 가장 큰 고민은 외국인선수 니콜 포웰과 사샤 굿렛. 기량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팀에 합류하는 걸 보지도 못한 채 정규시즌을 맞이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위 감독은 8월 29일 진천선수촌에 입촌한다. 아시아선수권은 11월 3일에 끝난다. 2013-2014시즌 개막일은 11월 10일. 외국인선수를 단 일주일만 체크를 한 뒤 곧바로 시즌 개막이다. 외국인선수들은 WKBL 규정상 개막 1달전인 10월 10일부터 소속팀에 합류한다.
이 부분은 굉장히 민감하다. 올 시즌 여자프로농구 외국인선수는 2명보유 1명출전으로 바뀐다. 외국인선수 비중이 높아진다. 상대 매치업과 공수 전술에 따라 적절한 외국인선수 기용방법을 찾아야 한다. 감독 입장에선 외국인선수들이 10월 합류한 뒤 훈련을 꼼꼼히 지켜봐야 한다. 물론 위 감독은 “어차피 다른 팀들도 대표팀 선수들은 외국인선수들과 호흡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시즌 개막에 들어가야 한다. 모든 팀이 똑같은 조건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위 감독이 다른 감독에 비해 팀을 더 돌보지 못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포웰은 티나보단 노련미가 떨어지지만 외곽슛 능력을 갖췄다. 스코어러 스타일. 사샤는 지난해 KB에서 뛸 때보다 살이 쪽 빠졌다. 골밑 수비와 리바운드를 기대할 수 있다. 위 감독은 “박성배 코치와 전주원 코치가 잘해줄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했다. 위 감독은 대표팀을 지휘하면서도 종종 우리은행을 체크할 계획이다. 위 감독은 “1~2라운드가 관건이다. 어느 팀이 국내선수와 외국인선수의 호흡이 잘 맞느냐가 중요하다”라고 했다. 우리은행은 특히 시즌 초반이 더 중요하다. 지난 시즌에도 외국인선수가 없었던 1~2라운드서 질주하면서 흐름을 탔다.
▲ 대표팀, 무작정 내 방식대로 밀어붙이진 않겠다
위 감독은 “대표팀 감독 선임이 되고 나서 얼떨떨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라고 했다. 위 감독은 즉각 코칭스태프 구성을 마쳤다. 여자농구에서 잔뼈가 굵은 정상일 삼성생명 코치와 여자농구의 정신적 지주이자 중국리그 경험까지 쌓은 정선민을 대표팀 코치로 합류시켰다. 참신하면서도 최적의 조합이라는 평가.
9일 점심시간. 식사를 마친 위 감독이 감독 집무실 컴퓨터를 켰다. 아시아선수권서 상대할 팀들의 자료를 분석했다. 몇몇 지인들에게 자료를 부탁했고, 일부는 입수한 상태. 조금의 시간이라도 쪼개고 쪼개 두집 살림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위 감독은 “중국, 일본, 대만 등 만만한 상대가 없다. 상대에 맞는 전략을 짜야 한다”라고 했다. 대표팀에서도 무작정 위성우식 농구로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것. 위 감독은 중학생 유망주 박지수의 대표팀 최종엔트리 합류에도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일단 훈련하는 걸 직접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것. 여자대표팀은 일단 16명이 진천에 입촌한 뒤 9월 중순 최종엔트리 12명이 결정된다.
위 감독은 “아, 이거 남자대표팀이 너무 잘하네”라고 웃었다. 취재 당일 남자대표팀은 아시아선수권대회 8강전을 앞두고 있었다. 결국 16년만에 월드컵 티켓을 땄다. 위 감독의 어깨도 무거워지게 됐다. 국제대회서 여자대표팀에 대한 기대는 더 높은 게 사실이다. 지난해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서 당한 수모도 되갚아줘야 한다. 위 감독은 일단 우리은행을 이끌고 지난 10일부터 일본 나고야 전지훈련에 돌입했다. 18일 귀국한 뒤엔 본격적으로 대표팀 지휘에 나선다. 위 감독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그의 어깨에 한국여자농구의 명운이 걸렸다.
[위성우 감독. 사진 =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