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1990년대 말이 그리운 요즘이다.
SK 최정이 25일 창원 NC전서 도루 1개를 추가했다. 최정은 20홈런 20도루에 성공했다. 역대 37번째. 최정의 20-20클럽 가입은 의미가 크다. 국내야구는 지난해 최정, 박병호(넥센), 강정호(넥센)가 나란히 20-20에 성공했다. 그러나 올 시즌엔 최정 외엔 20-20 가입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홈런이 20개를 넘긴 선수들은 도루가 적고, 도루를 20개 이상 넘긴 선수들은 홈런이 적다.
최정의 20-20은 2년 연속이라 의미가 더 크다. 국내야구에서 20-20을 2년 연속 성공한 선수는 1996년과 1997년의 양준혁과 이종범, 1999년과 2000년의 송지만, 2008년과 2009년의 덕 클락이 있다. 심지어 박재홍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3년 연속 20-20에 성공했다. 최정이 국내야구를 대표하는 호타준족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 37차례, 24명… 20-20, 최근 10시즌 중 5시즌이나 실종
국내야구 32년 역사상 20-20은 총 37차례 달성됐다. 가입자는 총 24명이다. 국내야구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매년 1차례 정도는 나온 기록이다. 하지만, 범위를 최근 10년으로 좁히면 얘기는 달라진다. 2004년부터 올해까지 20-20은 단 7명이 9차례 달성했다. 특히 2004년, 2005년, 2006년, 2010년, 2011년엔 아예 단 1명도 나오지 않았다.
호타준족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다. 펀치력이 있으면 발이 느리거나, 발이 빠르면 펀치력이 약한 선수가 대다수다. 국내야구는 점점 20홈런타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승리지상주의에 젖어 짧게 끊어치는 데 익숙해진 타자들이 낫다. 오른손잡이 타자가 타의에 의해 우투좌타로 변신해 펀치력이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케이스도 있다.
근본적으로 20개 이상 도루를 할 수 있는 선수도 점점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한 야구관계자는 “예전엔 굳이 발이 빠르지 않아도 요령껏 20개 정도는 도루를 했던 타자가 있었다. 요즘엔 투수의 슬라이드 스텝이 빨라지고 포수의 송구능력이 향상돼 센스가 좋지 않으면 20도루가 어렵다”라며 배터리의 주자견제능력 향상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요즘 포수 세대교체 과도기다. 어깨가 약한 포수가 많다. 그럼에도 도루 20개를 기록하는 선수가 많지 않은 건 주자들의 센스가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 96년 박재홍, 97년 이종범, 99년 이병규가 보고싶다
20-20보다 레벨이 높은 30-30은 국내야구서 몇 차례 나왔을까. 5명이 7차례 달성했다. 박재홍이 1996년(30홈런-36도루), 1998년(30홈런-43도루), 2000년(32홈런-30도루)에 세 차례나 달성했다. 박재홍은 30-30을 두 차례 이상 달성한 유일무이한 야구인이다. 이종범이 1997년(30홈런-64도루), 이병규가 1999년(30홈런-31도루), 홍현우가 1999년(34홈런-31도루), 제이 데이비스가 1999년(30홈런-35도루)에 각각 한 차례씩 달성했다. 2000년 박재홍을 끝으로 30-30은 13년째 잠들어있다.
도대체 30-30은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 것일까. 한 해설위원은 “천재적인 감각이 있어야 할 수 있다”라고 했다. 홈런 30개는 예나 지금이나 국내야구에서 거포의 상징으로 불린다. 도루 30개 역시 준족의 바로미터. 이런 두 가지 능력을 동시에 선보이려면 기본적인 잠재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상대견제와 체력저하, 부상 위험 등의 문제도 당연히 극복해야 한다.
박재홍과 이종범, 이병규가 30-30을 하던 시절. 야구인생의 전성기를 내달렸다. 거침 없었다. 박재홍은 신인시절 사상 최초로 30-30을 해내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뒤 거침없이 치고 달렸다. 자연히 그린라이트였다. 발 빠르고 정교한 타자인줄 알았던 이종범도 실투가 오면 곧바로 담장을 넘겼다. 굳이 다른 작전이 필요가 없었다. 알아서 잘 치고 잘 달렸기 때문에 득점력이 극대화됐다. 팬들은 그들의 질주에 열광했다. 하지만, 지금은 90년대 말처럼 화끈하게 치고 달리는 타자가 없다.
▲ 야구 팬들은 과감한 도전을 원한다
확실히 요즘 재능있는 젊은 타자가 많다. 20-20을 2년 연속 달성한 SK 최정도 대표적인 타자.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과감한 플레이가 덜 나온다는 지적도 있다. 이 야구관계자는 “볼거리를 늘리는 차원에서라도 젊은 타자들이 좀 더 크게 스윙하고 적극적으로 뛰었으면 한다”라고 했다. 득점 확률을 높이기 위해 스윙을 작게 해 안타를 만들고, 철저한 벤치 사인에 의한 도루 혹은 치고달리기 작전이 나오는 게 현대야구다. 실제로 팀내 발 빠른 타자 외엔 어지간해선 그린라이트가 주어지지 않는다.
순위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예전과 달리 벤치의 승리에 대한 압박감도 심하다. 투수들의 수준도 높아졌다. 타자가 홈런을 치기 쉽지 않다. 주자가 움직이기 역시 쉽지 않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서는 꾸준히 30-30 가입자가 배출된다. 지난해엔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이 역대 최연소 30-30클럽에 가입했다. 메이저리그와 국내야구의 인재 풀, 리그 특성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순 없지만, 틀을 뛰어넘는 타자가 나왔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정의 도전에 관심이 간다. 26일 현재 24홈런 20도루. 최정은 아직 34경기를 남겨뒀다. 산술적으로 30-30이 충분히 가능하다. SK 이만수 감독은 누구보다 선수들의 자율을 중시한다. 관건은 본인의 의지와 정신력이다. 만약 최정이 30-30까지 해낸다면 올 시즌 MVP로 손색 없다. 팬들은 96년 박재홍과 97년 이종범, 99년 이병규가 지금 다시 툭 튀어나온다면 열광할 것이다. 담장을 넘기고 루상을 훔치는 것. 야구의 원초적인 매력이니 말이다.
[위에서부터 박재홍, 이종범, 이병규, 최정.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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