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올림픽 개최지 결정 직전 日해산물 수입금지, 타이밍 아쉽다
마침내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가 결정됐다.
강력한 우승후보지였던 스페인의 마드리드가 1차 투표에서 탈락하고, 2차 투표에서 터키의 최대도시 이스탄불과 경쟁해 일본 60표, 이스탄불은 36표로 압도적인 표 차이로 도쿄가 선정됐다.
올림픽 개최지로 도쿄가 선정되는 순간, 현지 발표 장소에 있던 아베 신조 수상과 이노세 나오키 도쿄도지사, 다케다 쓰네카즈(竹田恒和) 일본올림픽위원장 등 일본 관계자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서로 악수를 하다가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두손을 번쩍 들고 흔들다가 얼굴을 감싸안고 울다가 웃다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노세 도쿄도지사는 도쿄올림픽 결정이 '일본국민의 팀워크의 결정체'라며 끝내는 울먹거렸다. 아마도 그 순간, 그는 지난 7월 21일 악성뇌종양으로 이세상을 달리 했던 부인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마침 이날은 그의 부인이 죽은 지 49일이 되는 날이었다.
8일 새벽 5시경, 속보로 도쿄올림픽 개최 결정이 전해진 이후 일본은 온통 축제 분위기다. 텔레비전 어느 채널을 돌려도 '올림픽, 올림픽' 얘기뿐이다. 정규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도 결정발표 현장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연결, 현지 분위기를 되풀이해서 전하고 있다. 감격의 순간을 몇번이고 되새김질하는 일본 방송사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지난 6일 한국정부가 발표한 일본 8개현 해산물 수입 전면금지 발표다. 그때 일본정부와 언론에서는 즉각 반응했다. 일본정부는 "한국이 좀 더 과학적으로 판단하라"고 완곡하게 불만을 표출했고, 매스미디어는 시시각각 이 소식을 전하며 TV는 게스트의 입을 빌어, 또한 신문들은 사설과 기사 내용으로 '왜 하필이면 이시점에?'라며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
6일, 한국정부의 해산물 수입금지 발표가 있은 후, 실제로 일본정부와 언론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한국의 수입금지 조치가 문제가 아니라 한국정부의 조치가 다른 나라로 파급될까봐 그것을 염려한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도쿄올림픽 유치를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너무나도 큰 악재였다.
그렇잖아도 5일 있었던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쿄올림픽유치 기자회견장에서, 세계 각국의 기자들은 예상했던 대로 경기장 시설문제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방사능 오염에 대한 질문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때문에 일부 일본언론에서는 이대로 도쿄올림픽 유치는 물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절망의 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필자가 만난 일본기자는 이 같은 분위기로는 도쿄올림픽 유치가 어렵지 않겠느냐고 고개를 흔들었다.
바로 그 다음날, 한국정부의 8개현 해산물 전면 수입금지 조치가 발표된 것이다. 앞의 일본기자는 원전사고로 가뜩이나 불리한 조건에 한국정부가 아예 쐐기를 박았다고 한탄했다.
그래서인지 일본정부와 언론들도 지나치리만치 예민하게 반응했다. 한국정부 입장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노이로제 때문에 생선들이 팔리지 않아 해산물 판매 종사자들의 생계가 위험하게 된 상황에서, 부득불 그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는데도 일본에서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정부 관계자들도 이같은 사실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긴급회의까지 열어 그 대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일부 언론도 "하필이면 지금 왜?"라는, 한국정부의 저의를 지극히 의심하는 투의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 정부가 도쿄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타이밍을 맞춰 수입금지 조치를 내려 발표했다"고 TV방송 등에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상 한국정부에 대해 비난을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한국정부의 조치가, 최악의 상태에 놓여진 해산물 취급 종사자들의 비명과 아우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취해진 조치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하필이면 지금 왜?"라는 저의에 대한 의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우리 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6일, 일본언론을 통해 TV 여기저기 채널에서 요란스럽게 한국정부의 조치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서, 일부 일본인들과 마찬가지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어, 왜 하필이면 지금 왜 그런 발표를 해?"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한국 국민들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 먹거리 걱정은 비단 어제 오늘 사이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물론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은폐기도와, 하루가 멀다하고 드러나는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오염물질의 바다유출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뛰어넘어 당장 우리 입에 들어가는 먹거리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과는 전혀 관계없는 해산물마저 판매가 급감하고,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계마저 위협을 받게 됐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가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조치였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일본언론의 지적대로 '타이밍'이 문제였다. 한국정부가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 날은 말 그대로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한국정부가 발표를 한 날은 6일,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 결정날은 8일 새벽이었다.
한국정부는 왜 이 며칠을 참지 못했을까? 방사능 오염 걱정은 하루이틀만에 생긴 걱정거리도 아니었고, 또 8일 이후로 발표를 미룬다고 해서 굳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손해보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6일 하필 그런 발표를 했다.
현재 일본은 여러모로 코너에 몰려있다. 우선 경제적으로 30년 가까이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정치 또한, 50여년이 넘는 자민당 일당 정치에서 신물이 나 혹시나 하고 갈아치운 민주당 정권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명언에 부응이라도 하듯 무능정치만 펼치다가 자민당에게 정권을 도로 내줬다.
여기에 2011년 3월 11일 동북대지진에 이어 쓰나미 대재앙,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폭발사고가 있었다. 이로 인해 일본은 세계로부터 경계의 대상국이 됐다. 말하자면 국내외적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것이다.
그러자 일본은 2020년 하계올림픽 도쿄 유치를 '국운'으로 내걸고 모든 것을 올인했다. 도쿄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80년대 전성기인 제2의 일본부활을 꿈꾸었다. 일본으로서는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도쿄올림픽 유치 문제가 전면적으로 부상하기 전까지 일부 정치평론가 중에는, 현재 일본의 국내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했던 메이지유신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었다. 때문에 일본이 국내문제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밀접한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거나, 혹은 일본자위대가 전쟁에 참가할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우익 인사마저 생겨났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이번 도쿄올림픽 유치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노세 도쿄지사는 "도쿄올림픽은 일본인들의 모든 희망이자 꿈이다"라고 역설했다. 이처럼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모든 불행과 악조건을 도쿄올림픽을 통해서 탈출하고자 했다.
흔히 인간사회의 경조사에서는 모든 행동이 자제된다고 한다. 도쿄올림픽 유치는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국운을 건 축제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설사 한국정부가 의도치 않았다고 해도 결국엔 잔치집에 재를 뿌린 격이 되어버렸다.
오늘 새벽, 도쿄가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솔직히 필자는 나도 모르게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왜냐하면 도쿄올림픽 유치가 실패했을 경우를 상정해보면 너무나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만약 도쿄올림픽 유치가 실패했을 경우, 그 원망이 일정부문 한국정부에게 향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실패 원인의 하나로 한국정부의 발표 시점을 거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울고 싶은 아이에게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맞춰 뺨을 때려준 형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다음 반응은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하다. 극우단체들의 한국인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와 혐한 감정표출은 점점 에스칼레이트해지고 있다. 오사카에 사는 여중학생이 한국인을 모두 죽여버리고 싶다고 당당하게 주장할만큼 극우 일본인들의 행동거지는 갈데까지 왔다.
이런 상황에서 도쿄올림픽 유치가 실패하고 6일 한국정부의 발표시점이 재부상했다면 과연 이들의 행동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게다가 오늘(8일) 낮에는 도쿄 신주쿠의 한인타운에서 극우단체들의 데모가 예정돼 있다. 공공연하게 데모시일을 발표하면서 극우성향의 일본인들에게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녕 한국정부 관계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진정으로 '국익'을 생각하느냐고. 지난 6일 발표는 정말이지 긁어부스럼 만들기였다. 며칠만 참았다가 하계올림픽 결정 이후에 발표를 해도 충분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왜 굳이 그 시점에 그런 발표를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현재 한일 양국은 경색관계에 놓여 있다. 국익을 위해서는 때로는 한발 물러설 때도 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일본 해산물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일본정부 대변인이냐"라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옹호를 하더니, 왜 6일의 발표는 그 며칠을 왜 못 기다려 한국정부의 모양새를 그렇게 구겨버렸는지? 왜 사서 국익에 악영향을 미치는 발표를 했는지 그 진의가 자뭇 궁금하다.
만약 그 발표를 며칠 미루었다면 아마 일본정부나 일본국민들은 한국정부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 그 감정은 고스란히 한일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것은 곧 국익에 플러스 요인으로 연결된다.
그런데도 한국정부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자충수를 두었다. 왜 그랬을까? 지혜롭고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정부내 일본전문 외교관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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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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