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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전형진 기자]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 속 고수는 그간 우리가 드라마 속에서 봐왔던 고수와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요조숙녀’ 등 주로 멜로드라마에서 여자들의 판타지 속 백마탄 왕자님처럼 여겨졌던 고수는 ‘황금의 제국’에서는 돈에 눈이 먼 남자, 장태주로 의외의 변신을 했다.
판자촌 밑바닥 인생에서 시작해 굴지의 대기업 성진그룹을 집어삼킬 꿈을 꾸는 야망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 고수를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데뷔한 지 14~15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 멜로나 로맨스 드라마만 했었어요. 예전에는 이런 선이 굵은 드라마가 들어와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선택하기 어려웠거든요. 이번에 처음으로 선 굵은 드라마를 하게 됐죠.”
고수에게 ‘황금의 제국’은 일종의 도전 같은 드라마였다. 이번 작품을 통해 그는 전매특허인 잘생긴 외모에서 오는 아우라를 최대한 배제하고 오로지 연기로만 승부했다. 그리고 그가 둔 승부수는 유효했다. 시청자들은 고수의 잘생긴 얼굴이 아닌 그의 연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기존 드라마에는 착한 역과 악한 역이 나눠져 있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에는 그 모든 걸 다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이 나와요. 착한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추악함을 드러내는 장면들도 있고 한 사람이 가진 여러 가지 본성을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라서 참 좋았어요.”
고수가 연기한 장태주는 처음에는 약자의 편에 서는 것처럼 보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악한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이젠 그 돈에 눈이 멀어 스스로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람들과 동화돼갔다.
“사실 저는 연기한 사람 입장에서 태주 캐릭터가 삶의 본보기가 돼서는 안 되겠지만 이해는 해요. 태주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여기까지 온 건데 와보니 정말 판이 커져있었던 거예요. 야망이 큰 인물이라 이걸 차마 외면하지 못한 거죠. 그리고 ‘왜 당신들은 되는데 나는 안 돼?’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 여기까지 와서도 무서울 게 없고 거칠 게 없었던 거죠.”
이 때문에 고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은 것은 강제진압 지시를 내리기 직전 광기를 부리던 태주의 모습이었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자신이 증오했던 사람처럼 변해가고 그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멈출 수 없던 태주가 광기를 일으키며 소리 지르는 모습은 드라마 속의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사실 ‘황금의 제국’에는 액션도 없고 멜로도 없었다. 게다가 캐릭터들의 활동 구역도 좁았다. 성진그룹 일가, 성진그룹 회장실, 장태주가 있는 에덴이 드라마 배경의 거의 전부를 차지했고 대부분의 큰 사건들은 극 중 인물들이 대화에서 이뤄졌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스토리 하나만으로 뒤통수를 치는 커다란 반전을 선사했고 서늘한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해줬다. 고수 역시 “안에서만 찍는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까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이야기가 계속 나올 수 있는 걸 보면서 진짜 대단하다 싶었어요”라며 스스로도 놀랐다고 말했다.
그 덕에 배우들은 좀 더 편하게 연기했다. 이번 작품을 촬영하는 동안 고수는 밤을 샌 적이 거의 없었고 한 여름 촬영에도 더위나 장마와 싸울 필요가 없었다. 다른 드라마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촬영이 진행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몸이 편한 대신 머릿속은 더 많이 복잡했다. 격동의 20년이라 불리는 한국 경제사 전반을 훑는 드라마의 내용을 이해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들 대사를 외울 때 힘들어했어요. 외우면서 공부를 좀 열심히 해둘걸 생각도 했고요. (웃음) 정치, 경제 부분이 좀 어렵긴 한데 그래도 그런 부분을 알고 나면 이 드라마를 좀 더 재밌게 볼 수 있잖아요. 배우들도 어려우니까 찾아보면서 공부하고 그랬어요. 이 드라마를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지식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여기에 캐릭터 고유의 맛을 살려야 하는 박경수 작가의 대본도 만만치 않았다. 각 캐릭터마다 지문이 다 다른 박경수 작가의 대본 때문에 고수는 말투와 몸짓에 특히 신경 써서 연기했다. 작품 속에서 ‘아이고’, ‘~할랍니다’ 등 장태주의 성격을 드러내는 말투는 모두 박경수 작가의 대본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자연스럽게 표현해내 장태주화 시키는 것은 고수의 몫이었다.
“작가님이 대사도 그렇지만 지문을 각 캐릭터마다 다르게 해주셨어요. 누구는 가볍게 누구는 도도하고 누구는 온화하게. 이게 다 달랐어요. 태주는 특히 가볍게 대사를 던지듯이 말하라고 하셨어요. 비꼬는 느낌의 대사를 많이 했었죠. 처음에는 비꼬는 말투가 어색했는데 계속 하다보니까 재미도 있더라고요.”
이번 작품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는 고수와 손현주의 대결구도였다. 한순간 동맹을 맺었다가도 한순간 서로를 배신했던 두 사람은 드라마 속에서 두 눈이 충혈 될 정도로 서로를 노려보고 볼이 떨릴 정도로 치를 떨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사이가 좋았다고.
“(손)현주 형은 다음 작품에서 또 같이 하고 싶은 형이에요. 극중에서는 서로 앙숙이고 눈을 부라리고 하긴 하는데 형이 워낙 재밌고 장난을 잘 치세요. 워낙 좋아하는 형이라서 초반에 싸운다는 게 어렵기까지 했으니까요. 물론 지금은 그게 너무 익숙해졌지만요. 극 중에서 민재를 약 올리는 게 많은데 요즘은 정말 재밌어요.(웃음)”
이제 ‘황금의 제국’은 마지막 한 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고수는 “‘황금의 제국’은 이전 드라마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아요”라며 아쉬운 소감을 전했다.
“제 나름대로 많은 의미를 두고 드라마에 임했기 때문에 끝난다고 하니까 많이 아쉽고 섭섭해요. 노력도 많이 하고 고민도 하고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한 만큼 좋은 성과가 있었던 것 같아서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 것 같아요.”
[배우 고수. 사진 = BH 엔터테인먼트 제공]
전형진 기자 hjje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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