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우리가 고만고만하다고요?”
삼성 배영수가 아쉬움을 토로했다. 국내 투수들이 전문가들과 팬들에게 받는 시선, 그리고 삼성 투수들이 받는 평가 중에서 억울한 구석이 있었다. 배영수는 위트를 섞어 좋게 얘기했지만, 자신과 팀은 물론이고 프로야구 모든 투수들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 시즌 다승부문 선두(14승)를 달리는 배영수를 25일 인천 SK전을 앞두고 만났다.
▲ 투수 FA, 다 실패하는 것 아니다!
국내야구에 FA제도는 1999시즌이 끝나고 도입됐다. 이적을 하든, 원 소속팀에 남든 성공 사례도 있었고, 실패 사례도 있었다. 분명한 건 야수보단 투수의 실패 사례가 좀 더 많았다는 점. 국내야구계엔 “투수 FA는 실패확률이 높다”라는 분위기가 은연 중에 팽배하다. 하지만, 배영수는 “송진우 선배도 있고, 나도 2년 연속 10승 넘게 하지 않았나”라고 했다. 배영수 역시 2011년 삼성과 FA 2년 계약을 맺었고,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끝난다.
투수 FA의 성공과 실패. 그 원인과 배경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FA가 되는 시점에 주목하는 야구인들은 있다. 일전에 한 야구인은 “야수와는 달리 팔꿈치, 어깨 등이 소모되는 투수의 경우 꾸준하게 잘 던졌다고 해도 8~9년차 이후엔 한번쯤 부진한 시즌이 찾아온다”라고 했다. 단순히 투수가 FA 계약을 맺어서 부진하다는 건 성급한 일반화라는 설명이다. 특히 매년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둔 투수일수록 FA가 되는 시점엔 몸에 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배영수도 “FA 계약 이후 부진한 투수 몇 명이 부각될 뿐이다. FA 투수들도 그전과 똑같이 몸 관리를 잘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라고 했다. 2011시즌 이후 삼성과 2년 계약을 맺은 배영수가 잘 보여주고 있다. 2006년 팔꿈치 수술 이후 구위 저하를 끝내 극복했다. 2년 연속 두 자리 수 승수를 챙기며 투수 FA 성공의 교본을 보여주고 있다. 배영수가 거론한 송진우 역시 FA 계약 이후 더욱 꾸준한 활약을 펼쳐 210승 금자탑을 세웠다.
▲ 선발투수로 사는 법, 쉬운 것 아니다
구원투수의 가치가 인정받는 시대다. 하지만, 대다수 투수는 여전히 선발투수를 원한다. 구원투수들은 매일 불펜에서 대기해야 한다. 반면 선발투수는 정해진 날짜에 맞춰 등판한다. 배영수는 여기서도 할 말이 있었다. “불펜투수 가치는 분명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선발투수도 구원투수보다 마냥 편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선발투수는 보통 4~5일의 등판간격을 갖는다. 이때 장거리-단거리 러닝, 불펜피칭, 상대 타자 분석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음 등판을 준비한다. 배영수는 “절대 노는 게 아니다. 5일동안 계속 상대 타자를 분석한다. 일주일에 많아야 2번 던지지만 6~7이닝을 던져야 한다. 다치지 않고 선발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키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 선발투수는 모든 구단의 전력분석팀에 노출돼 있다. 매번 투구패턴 혹은 승부요령을 연구해야 한다. 다치지 않고 한 시즌을 잘 버티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배영수는 그래서 “선발투수가 10승 하는 게 쉬운 게 아니다”라고 했다. 올 시즌 10승 투수는 총 17명. 결국 팀당 2명 꼴이다. 10승 문턱에서 좌절하는 투수는 수두룩하다. 배영수는 “3~4경기 꼬이면 1달간 승수를 쌓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 투수는 정신적으로 힘들다”라고 했다. 특히 선발승은 타선, 불펜의 도움 없인 만들어질 수 없다. 선발투수 입장에선 잘 던지고도 승수를 쌓지 못할 때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배영수는 올 시즌엔 타선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그러나 전성기인 2006년엔 지독한 불운 속 평균자책점 2.92를 찍고도 8승에 그쳤다.
▲ 삼성 선발진이 고만고만 하다고요?
배영수가 가장 목소리를 높인 부분. “우리 선발투수들이 고만고만하다고요?”였다. 배영수는 전문가들이 삼성 선발진을 두고 “확실한 에이스가 없다. 고만고만하다”라고 하는 것에 대한 억울한 심정을 슬쩍 토로했다. “우리 선발투수들, 다른 팀 가면 다 에이스, 1~2선발 대접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웃었다.
실제 토종 투수들이 선발진을 이끌어가는 팀은 9개구단 중 삼성이 유일하다. 배영수(14승), 윤성환, 장원삼(12승), 차우찬(10승) 등 4명 모두 두 자리 수 승수를 거뒀다. 삼성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0승투수 4명을 배출했다. 또한, 차우찬을 제외하곤 2년 연속 선발 10승투수가 3명이나 탄생했다. 결코 찾기 쉽지 않은 기록이다.
배영수는 “확실한 에이스가 없다는 말을 한다. 내가 보기엔 나나, 성환이, 원삼이보다 더 잘 던지는 국내 투수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 더 잘해야 하면 커쇼를 데리고 와야 하나”라고 했다. 실제 현재 국내 토종 투수로 범위를 좁히면 이들처럼 꾸준히 좋은 기록을 올리는 투수는 없다. 배영수는 “우리 선발들이 몇 년 째 꾸준히 부상 없이 로테이션을 소화하고 있다. 그런 걸 봐주셨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실제 삼성 선발진만큼 탄탄하고 안정적인 선발진을 보유한 팀은 없다. 올 시즌엔 외국인농사가 성공적이지 못해 더욱 토종 선발투수들의 가치가 빛난다.
배영수의 말을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쩌면, 일부에서 약간의 편견을 갖고 선발투수들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배영수의 일리있는 하소연이었다.
[배영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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