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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오늘은 제대로 했다.”
여자농구대표팀 위성우 감독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내뱉은 말이다. 지난 8월 29일 충북 진천선수촌에 입촌한 위성우호는 아시아선수권대회를 1달 앞둔 지난 27일 사실상 처음으로 정상적인 훈련을 진행했다. 부상자가 너무 많았던 탓에 최종엔트리서 7명을 빼고 3명을 보강한 뒤 제대로 훈련을 시작했다.
훈련을 제대로 시작했으니 부상자 문제를 덮어둘 수도 있다. 하지만, 매년 여자농구대표팀에 부상자가 유독 많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 대회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 진천에 입촌한 16명 중 무려 8~9명이 부상으로 재활 훈련만 했다. 나머지 7명으로는 자체 5대5 게임도 불가능해 훈련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다. 부상자가 적었다면 합숙 초반부터 훈련이 파행으로 진행될 이유가 없었다. 대회 1달을 앞두고 급하게 조직력 다지기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는 의미다.
▲ 여자농구대표팀 부상과의 전쟁, 매년 빚어지는 촌극
위성우 감독은 “상견례 할 때 진단서를 갖고 온 선수가 3~4명이었다”라고 했다. 그래도 위 감독은 일단 예비엔트리 24명 중 선발된 16명을 진천에 불러들였다. 일단 진천에서 재활을 하면서 몸 상태를 지켜보자는 것. 그러나 부상이 가볍지 않았던 선수 6명(하은주, 최윤아, 한채진, 김한별, 정선화, 강아정)이 결국 최종엔트리에서 빠졌다. 최종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들 중에서도 몸이 성한 선수는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
좀 더 빨리 엔트리 정비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 제대로 훈련할 시간을 벌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대표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혹시 회복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지켜볼 시간은 필요했다”라고 했다. 일리가 있다. 부상자들에게 미련을 둬야 할 정도로 여자농구의 선수층이 두껍지 않기 때문이다. 부상자들이 빠진 위성우호는 결국 높이에서 타격을 입었다. 특히 하은주 공백은 매우 크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여자농구는 매년 대표팀이 소집될 때마다 부상과의 전쟁을 치른다. 라이벌 국가 중국과 일본이 매년 장기간 합숙을 하고 유럽팀과 평가전을 갖는 사이 한국은 고작 1~2달 훈련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WKBL 6개구단들이 대표팀 차출에 호의적이지도 않다. 지난해 런던올림픽 최종예선 탈락은 예고된 재앙이었다.
▲ 선수층 얇은 여자농구, 주전 의존도 너무 높다
WKBL 6개구단 주전들의 기록을 보면 대부분 매년 전 경기, 35분 내외의 출장시간을 찍는다. 국내에서 주전과 백업의 기량 차가 가장 큰 프로리그가 여자프로농구다. 주전들의 의존도가 높다는 의미다. 선수층이 얇다보니 각 팀에선 성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전들을 오래 기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시즌 막판 주전들 중에서 몸이 성한 선수는 거의 없다. 때문에 비 시즌에 재활이 필수다. 그런데 대표팀은 매년 비시즌에 소집한다. 대표팀 소집 및 운영이 옳게 이뤄질 수가 없다.
대표팀 주장 이미선은 “지금 여자농구는 주전 의존도가 너무 높다. 선수층이 너무 얇다. 비 시즌에 몸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근본적인 원인은 농구를 하려는 여자 유망주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농구협회에 소속된 여자팀은 81개다. 117개의 남자팀보다 36개 팀이나 적다. 선수는 남자가 1555명, 여자가 839명이다. 남자 중학교 선수가 451명인데 여자 중학교 선수는 210명이다. 절반이다. 남자 고등학교 선수는 388명인데 여자 고등학교 선수는 175명에 불과하다.
여자 중, 고등학교 대회서 선수를 5~6명으로 꾸리는 팀이 허다하다. 어쩌다 1명이 5반칙으로 빠져서 4명으로 5명을 이겼다는 미담은 사실은 슬픈 현실이다. 프로 6개구단은 고작 175명 중에서 신인 옥석을 골라야 한다. 대학교 297명 중에서 신인을 뽑는 남자농구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여자농구는 대학에 입학하지 않은 고졸 선수를 신인으로 뽑다 보니 기존 프로 주전들과의 기량 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 이러니 입단 1~2년차에 은퇴하는 선수가 부지기수다. 주전 의존과 부상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여자농구대표팀이 안고 있는 문제는 결국 한국 여자농구의 구조적 문제점이 드러난 결과다.
▲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 여자농구 더 큰 위기 온다
위 감독은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청소년 레벨에선 중국, 일본은 고사하고 대만, 태국도 겨우 이긴다”라고 했다. 여자농구가 구조적인 악순환으로 점점 국제경쟁력을 잃고 있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실제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2년 중국 세계선수권대회서 4강에 올랐던 한국 여자농구는 이후 조금씩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선수층이 더 얇은 청소년 레벨에선 진행 속도가 당연히 더 빠르다.
위성우호 최종엔트리 12인 중 6명이 30대다. 전주원, 정선민, 박정은, 김지윤 등이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베테랑 의존도가 높다. 최고참 이미선, 변연하 등은 대표팀에서만 10~15년간 뛰었다. 선수층이 두껍고 전력이 좋은 국가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대표팀 정선민 코치는 “2007년 인천 아시아선수권서 1.5진으로 나온 중국 선수들이 지금 노장으로 불린다. 그만큼 세대교체가 빠르다”라고 했다. 그 얼굴이 그 얼굴, 부상에 신음하는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다.
위성우호에 몸 담은 선수들은 지난해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에 참가했던 선수들보단 몸 상태가 좋다. 하지만, 젊은 피를 대거 수혈한 중국과 일본은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위해 지난 봄부터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대표팀 소집부터 삐걱댄 한국 여자농구는 너무나도 초라하다. 여자농구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 마련이 시급하다.
[여자농구대표팀. 사진 = 진천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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