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대구 김진성 기자] “여긴 그저 즐기던데요.”
한국시리즈 4차전이 끝난 지난 10월 28일 밤. 사람들의 반응은 “설마”에서 “힘들겠네”로 바뀌었다. 삼성은 1승 3패로 두산에 끌려갔다. 3차전을 잡았으나 4차전을 내주면서 2002년부터 이어진 정규시즌 우승=한국시리즈 우승 공식도 그대로 깨지는 듯했다. 하지만 나흘이 지난 1일 밤. 최후의 승자는 또 다시 삼성이었다.
삼성이 국내야구 새 역사를 창조했다.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3연패. 아무도 일궈내지 못했던 대기록이다. 한국시리즈를 1승3패로 뒤진 팀이 5~7차전을 모두 잡아내면서 4승3패 대역전 우승을 완성한 것도 사상 최초다. 코너에 몰리면 살아나는 삼성 특유의 저력이 빛을 발했다. 류중일 감독의 리더십부터, 특유의 뒷심과 끈끈한 수비력, 약해졌지만 살아있었던 마운드 저력 등이 통합 3연패 원동력으로 떠올랐다.
▲ 삼성 덕아웃은 늘 여유가 넘쳤다
삼성의 전력이 올해 약해졌다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누구도 소위 말해 ‘앓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삼성 선수들의 얼굴엔 여전히 잔잔한 미소가 있었다. 물론 1승3패로 밀린 상황에서 입을 크게 벌려 웃을 순 없었지만, ‘우린 할 수 있다’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었던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승엽은 “비록 나는 한국시리즈서 별로 한 게 없지만, 우리가 우승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한 적이 없다. 1승3패로 몰린 뒤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다른 선수들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벼랑 끝에서도 침착했다. 흔들리지 않았다. 살아난 타선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1승씩을 쌓아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
한 야구인은 “그게 삼성의 저력이다. 단기전서 벼랑 끝에 몰리는 팀은 심리적으로 급해져서 스스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삼성은 큰 경기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 그랬다. 의기소침했을지라도, 고개를 숙이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오늘 지면 곧 끝장인 5~7차전을 준비하는 삼성 덕아웃엔 어딘가 모를 여유가 있었다. 자만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 삼성이 그냥 유쾌해진 건 아니다
한국시리즈 7차전 직후 김태완의 코멘트가 흥미로웠다. 김태완은 지난해 겨울 LG와의 3대3 트레이드 때 삼성에 입단했다. 김태완은 어쩌면 삼성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다. LG 시절 외부의 시선으로 삼성을 바라봤고, 올해 삼성에서 1년을 보내면서 내부의 시선으로 삼성을 느꼈다.
김태완은 “한국시리즈 우승하면 다 울 줄 알았다. 그런데 (신)용운이 형 빼고는 아무도 안 울더라. 그게 정말 신기했다”라고 했다. 프로야구 선수의 로망.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다. 아니, 한국시리즈에 참가하지도 못하고 유니폼을 벗는 선수가 수두룩하다. 삼성 베테랑 진갑용과 배영수는 1번도 아니고 무려 9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참가했다.
그러고 보면 삼성은 21세기 들어 2003년, 2007년, 2008년, 2009년을 제외하곤 한국시리즈를 빠짐없이 치렀다. 무려 9차례의 한국시리즈를 치렀는데, 2001년, 2004년, 2010년을 제외한 6차례 한국시리즈서 우승컵을 들었다. 우승은 늘 달콤하지만, 삼성은 이젠 울지 않고 즐길 경지에 올랐다. 심지어 우승을 차지하자 일제히 단체 세리머니를 펼쳤고, 준비된 물안경을 끼고 샴페인 파티를 하는 용의주도(?)한 모습을 보였다. 1~2번 해본 우승이 아니니 우승하고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도 아는 것이다. 삼성은 유쾌했다.
김태완은 “1승3패한 뒤에 ‘아 이제 끝났구나’싶었다. 짜증도 났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은 아무렇지도 않더라. 마치 우승할 것이라 생각하고 경기를 하는 것 같았다”라고 했다. 이어 “LG 시절 바라본 삼성은 정말 강했다. 경기 중반에 지고 있으면 이긴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막상 삼성에 와 보니 꼭 그렇지 않았다. 안에서 있어보니 삼성은 위기가 참 많았다. 밖에서 봤던 삼성과는 달랐다. 그걸 이겨내고 우승하는 것이구나 싶었다”라고 했다.
삼성의 여유와 유쾌함.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 숱한 고비와 역경을 겪어봤다. 좌절도 해봤고 팬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다. 삼성은 지난 수년간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자연스럽게 승자의 DNA를 체득했다. 2013년 가을. 삼성왕조의 여유와 유쾌함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삼성 선수들. 사진 = 대구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대구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대구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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