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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남태경 수습기자] 10년이 지났다. 지난 2003년 영화 '올드보이' 이후 2005년 '친절한 금자씨', 2006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2009년 '박쥐', 2013년 '스토커' 등 10여 개의 작품을 더 연출하고 제작했지만, '박찬욱 감독' 하면 떠오르는 말은 여전히 "'올드보이' 속 장도리 액션 신을 탄생시킨 감독"이다.
2003년 개봉 후 이듬해 제57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영화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올드보이'(감독 박찬욱 배급 CJ엔터테인먼트)가 오는 21일 디지털 리마스터링 감독판으로 돌아온다.
10년 만에 재개봉하는 '올드보이'를 다시 보게 된 감회를 묻는 질문에 박찬욱 감독은 "최민식이 참 젊더라"는 가벼운 농담으로 입을 열었다.
"최민식은 나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이가 한 살 차이고 친구 같은 사이기 때문에, 최민식이 젊은 만큼 나도 그만큼 젊었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그때는 머리도 까맸고 배도 안 나왔었는데…(웃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작품을 만든 직후에 느끼는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를 만들 때, 심사숙고해서 만들고 결정하기 때문에 후회하거나 '다르게 해볼 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도 스스로 '올드보이'는 자신의 경력 한 복판에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듯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올드보이' 전과 후로 나뉜다.
실제로 그는 '올드보이' 이후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를,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임수정을, '스토커'에서 할리우드 배우 미아 바시코브스카와 니콜 키드먼을 작품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여자 주인공을 작품의 중심에 세운 박찬욱 감독은 전작에 비해 여성스러움이 짙게 묻어나는 그림을 담아냈다. '과연 이 감독이 남성미 넘치는 '장도리 액션신'을 찍은 감독과 같은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장도리 장면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당초 계획은 샷을 많이 쪼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액션 장면을 찍는 것을 원래 싫어한다. 총격전, 액션 등 싸우는 것을 싫어하는데, 찍기 싫으니까 더 파이팅 해보려고 '진짜 멋있는 액션 신을 찍어봐야겠다'라는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이 장면의 핵심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영문도 모른 채 갇혀 있다 나온, 그런 남자의 피로감이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것이 거리를 둔 롱테이크였다."
대부분의 관객이 '올드보이' 속 명장명은 '장도리 액션신'으로 꼽는 편이지만, 박찬욱 감독은 도입부가 가장 인상 깊다고.
"도입부에서 조용한 멜로디가 흘러나와 서정적인 영화인 것처럼 시작한다. 그러다 갑자기 주먹이 '빵' 하고 터져 나온다. '영화가 이렇게 시작합니다'라는 준비 동작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스토리가 한 복판에, 그것도 아주 드라마틱한 순간에 관객에게 던져지는 것이다. 이런 도입부는 관객들을 긴장하게 만들며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마음에 든다. 남성적인 활력이 느껴진다. 요즘 여성 영화를 많이 찍어서 인지 '내가 이렇게 박력 있는 영화를 찍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원작을 그대로 살리는 데 치중하고 오래된 화면에서 보이는 스크래치 정도만 보완했다는 이번 리마스터링 버전, 그에게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들어봤다. "편집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사운드는 전혀 안 만졌다. 그림만 손을 본 것이다. 어떤 관객이냐에 따라 다시 보는 느낌이 다를 것 같다. 필름으로 봤느냐, DVD로 봤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적어도 먼지나 긁힌 자국, 비 오는 화면은 없어졌고 색도 조금 더 원래의 의도와 가까워졌다."
어떤 때는 박력 넘치는 남성적인 모습으로, 어떤 때는 섬세한 여성의 모습으로, 어느 한 부분도 놓치기 싫어하는 완벽주의자 박찬욱 감독. 실제로는 "코앞에 닥친 일만 해결하는" 단순한 성격 이라고.
"오늘 하루만 어떻게든 수습해보자는 주의다. 영화를 찍을 때는 밀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완벽에 가깝게 하려고 노력한다. 실제 성격도 그런 면이 있긴 하다. 글을 읽을 때 맞춤법 틀린 것을 못 견딘다. 예전에 글을 쓰다가 지금은 안 쓰는 이유가 편집증 같은 것이 있다. 과거 책을 집필할 때 썼던 것을 보고 또 봐서 편집하는 곳에서 손을 들었다. 이번에도 '올드보이' 색보정을 하는데,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지 않나. 그것을 몇백 번을 봤다. 집착 같은 것이 있다. 그런데 오늘 또 잘못된 것을 발견했다. 영화 연출을 잘못하면 그러려니 하는데…'바르셀로나'인데 '바로셀로나'로 표기돼 있었다. 발견하니까 당장 고치고 싶더라."
"사실 '올드보이' 다음으로도 많은 영화를 연출, 제작했다. 이제는 다른 작품들도 많이 이야기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 박찬욱 감독은 10년 만에 '올드보이'를 다시 찾는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10년 전 '올드보이'가 개봉했을 때는 다 보고 나가서 발설하지 말아달라고 말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당부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다. 영화를 보고 마음껏 이야기 해주셨으면 한다.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진실을 깨닫는 순간을 위해 이 영화가 처음부터 어떻게 디자인 됐는지를 하나하나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남태경 기자 tknam1106@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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