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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은지 기자] 김옥빈은 신비로운 마스크를 지닌 배우다. 무표정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현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 무언가를 숨긴 느낌이 들 정도다.
이런 김옥빈의 이미지는 영화 '열한시'에서 빛났다. 별다른 연기를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비밀을 숨기는 듯 한 김옥빈은 '열한시' 속 비밀은 간직한 영은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김옥빈이 출연한 '열한시'는 내일 오전 11시로의 시간여행에 성공한 연구원들이 그곳에서 가져온 24시간 동안의 CCTV 속에서 죽음을 목격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시간을 추적하는 타임 스릴러다.
김옥빈은 사건의 유일한 단서인 CCTV 속 비밀을 알고 있는 연구원 영은 역을 맡았다. 영은은 시간이동 연구의 권위자였던 아버지가 사고로 실정된 후 아버지의 수제자였던 우석(정재영)을 따라 시간 이동 프로젝트에 몰두한다. 그곳에서 영은에게만 비밀이 생긴다.
무엇인가를 감춰야했고, 그 비밀은 영은을 계속해서 괴롭힌다. 하지만 영은은 이 비밀을 끝까지 감추기 위해 노력한다. 생사가 오가는 상황이지만, 이런 영은을 욕할 수는 없다. 영은에게는 '감춤'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감추는 것은 드러내는 것 보다 힘든 연기를 요구한다. 지금까지 김옥빈이 맡았던 역할에 비한다면 영은은 표면상으로는 쉬워 보이지만, 막상 연기에 들어가니 어려운 캐릭터였다고 했다.
"비밀을 감추고 있는 캐릭터에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어렵다는 생각을 안했는데, 찍으면서 어렵더라고요.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터에 비해 평범했으니까 쉽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고 힘든 점이 많았던 것은 아니에요. 다만 저와는 정반대 캐릭터라서 어려웠던 것 같아요. 영은은 차분하고 이성적이지만 저는 그렇지 못한 편이거든요."
실제로 '열한시' 속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까. 막연하게 생각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김옥빈은 '일어났다 치고'라는 가상현실을 상상해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저도 영은처럼 혼자서 은폐하려고 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비밀을 감추다가 들키고 나면 다 샅이 해결점을 찾으려고 했겠죠. 폭발지점을 찾고, 그게 안 되면 그곳을 떠나야 한다고 설득했을 거예요. 우석과 심각하게 대립각을 세웠겠죠."
김옥빈은 '열한시' 언론시사회에서 김현석 감독의 일하는 스타일에 대해 난감했던 처음 마음을 드러냈다. 너무 건성으로 일하는 것 같아 화를 내기도 했고, 영화에 대한 애정을 의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김현석 감독을 더 알고 보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일할 때 '툭툭툭' 하는 편이에요. 열심히 하지 않은 것 같아서 화가 나기도 했는데, 작품이 나온 것을 보고 놀랐어요. 그냥 성격이 그런 편인것 같아요. 무언가를 꾸미지 못하고, 솔직하고 쿨한 편이죠. 또 단백해요. 보이는 모습 그대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죠. 영화에 애정이 없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어요. 지금은 정말 고마운 사람이에요 1년이나 늦어진 후반작업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고마운 마음에 포옹을 해 드렸죠."
'열한시'에 함께 출연한 정재영은 영화 흥행 공약의 희생양으로 김옥빈과 최다니엘을 꼽았다. 영화가 흥행한다면 두 사람이 연애를 하겠다고. 이런 공약으로 인해 김옥빈과 최다니엘은 열애설에 휘말리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희생양이 된 김옥빈의 새로운 흥행 공약은 무엇일까. 이번 희생양은 바로 정재영이었다.
"사실 최다니엘씨와 연애 공약은 제가 아니라 정재영 선배가 한 공약이에요. 저와 한마디 상의 없이 했죠. 제가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내가 사귈 순 없잖아'라고 하더라고요. 대신 다른 공약을 걸겠어요. 영화가 흥행하면 제가 '열한시' 속 과거에서 썼던 가발을 씌워서 무대인사를 시키겠습니다. 정재영 선배의 여장이 저의 새로운 공약이에요."
타임머신은 누가 생각해도 매력적인 물건이다. '열한시'에 출연하면서 김옥빈은 타임머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마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김옥빈의 설명이다. 근거는 없다. 모든 과학은 가설이니 말이다.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시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근거는 없어요. 모든 과학은 이론이고 가설이잖아요. 만약 시간 이동이 가능해 과거로 돌아간다면 행동은 하지 않고 지켜볼 것 같아요. 그리고 흔적을 남기는 거죠. 역사적인 순간에 주인공들 위에서 사진을 찍는 것 같은 흔적.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2005년 드라마 '하노이 신부'로 데뷔한 김옥빈은 9년이라는 시간동안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아왔다. 시간 이동이 가능하다고 했으니 물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또 배우로 살아가겠냐고.
"또 배우를 하겠냐고요? 아니요. 배우는 한번 해 봤으니까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그렇다고 특별한 직업을 생각해보거나, 해보고 싶은 무언가를 생각해 본 적은 아니에요. 다만 지금과는 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김옥빈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든,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 '박쥐'에서 그 분위기는 정점에 달했다. 김옥빈이 무표정으로 앉아 있을 때는 꿈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신비로운 분위기는 캐스팅에 있어서도 영향을 끼친다.
"보통 배우를 캐스팅 할 때 이미지를 보고 캐스팅하잖아요. 제작자, 감독 등이 배우를 캐스팅 할 때 '이 사람의 숨겨진 무언가를 이끌어 내겠다'는 생각으로 캐스팅을 하진 않을 거예요. 보이는 모습을 보고 하죠. 이번 영화에는 SF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마스크라서 캐스팅 했다고 하더라고요. 분명 이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감사한 일이죠."
마지막으로 김옥빈은 '열한시'의 관람 포인트를 언급했다. 그는 "SF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지만, 잘 쓰여진, 잘 만들어진 미스터리 스릴러에 아까운 영화다. 보는 분들이 나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 미래를 본 뒤 내 죽음 또 동료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 이라는 감정이입을 하고 본다면 재밌을 것이라 믿는다"고 설명했다.
[배우 김옥빈.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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