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트래쉬토크인가 동업자 정신 망각인가.
오리온스 김동욱이 욕설논란에 휩싸였다. 6일 잠실체육관에서 열렸던 삼성-오리온스전. 4쿼터 약 2분 30여초전 스크린 과정에서 김동욱이 삼성 김승현과 충돌했다. 김승현은 코트에 쓰러졌다. 벌떡 일어선 김승현은 김동욱에게 “너 지금 뭐하는거냐, 이래도 되냐?”라고 따졌다. 그러자 김동욱은 다짜고짜 김승현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경기 후 오리온스 벤치에 정식으로 항의한 김승현은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 이 사실을 알렸다.
논란은 일단락됐다. 김승현이 경기 후 중계방송사 MBC 스포츠플러스에 이어 취재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사이 김동욱이 사과를 하려고 했다. 김승현과 김동욱이 서로 엇갈려 오해를 풀 타이밍을 놓쳤다. 결국 김동욱은 곧바로 김승현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고, 김승현은 사과를 받아줬다. 하지만, 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김동욱이 김승현에게 욕을 퍼부은 건 사과했지만, 그에 앞서 김승현이 먼저 자신에게 욕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동욱도 김승현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사과를 하면서도 이런 점을 언급했다고 한다.
▲ 욕설논란, 국내판 트래쉬토크?
NBA 혹은 유럽농구리그에선 트래쉬토크가 일상적이다. 트래쉬토크는 농구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면서 말로 일종의 신경전을 주고 받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약간의 조롱과 욕설도 오갈 때가 있다. 물론 정도가 심할 경우 앙금과 오해가 쌓여 폭력사태 등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너무 심하지만 않다면, 약간의 트레쉬토크는 승부욕을 높이고 경기를 보는 재미를 높일 수 있다. 이런 논란을 은근히 즐기는 팬도 있다.
이날 경기 후 한 농구관계자와 전화통화가 닿았다. 국내 남녀프로농구에도 트래쉬토크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약간의 신경전은 있지만, 거의 승부에만 집중하는 편이다. 물론 외국인선수는 좀 더 활발하게 트래쉬토크를 하는 경우가 있다”라고 했다. 종합하자면, 국내엔 NBA보다 트래쉬토크가 덜 활발하다.
왜 한국에선 트래쉬토크가 덜 활성화된 것일까. 국내엔 외국과는 다른 선-후배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미국과 유럽에는 전혀 없는 문화다. 경기 도중 정상적인 충돌을 하더라도 후배가 선배를 일으켜 세워주는 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후배들이 선배들에 게 예의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경기 도중 말을 걸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다.
▲ 코트에선 선-후배는 없지만, 동업자정신은 있다
김승현에게 물었다. 혹시 김동욱의 욕설이 트래쉬토크인데 오해한 것 아니냐고. 김승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아닌 것 같다. 경기를 치르다보면 트래쉬토크를 할 수도 있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라고 했다. 김승현에 따르면, 김동욱은 자신에게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욕을 퍼부었다. 트래쉬토크가 아니라 다분히 인신공격이었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김동욱의 관점에선 이미 김승현에게 욕을 들은 상태였다.
트래쉬토크든, 신경전이든 지나친 건 곤란하다는 게 이 농구관계자의 지적이다. 사실 김승현은 김동욱의 3년 선배다. 선배라는 지위를 앞세워 후배에게 험담을 하는 것도 보기가 좋지 않다. 김동욱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승현 역시 좋게 평가를 받긴 어렵다. 더구나 국내 정서를 감안하면 후배가 선배에게 엄청난 욕을 퍼붓는 것도 어떤 이유에서든 도저히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코트에선 선, 후배가 따로 없다. 정정당당하고 치열하게 승부를 벌이는 게 팬들에 대한 도리다. 흥미를 위해선 약간의 트래쉬토크도 용인될 수 있다. 하지만, 프로 선수들에겐 엄연히 동업자 정신이 필요하다. 특히 치열한 승부 속에서도 선, 후배들간에 최소한의 예의범절은 지켜져야 한다. 적어도 그게 한국 스포츠의 문화다. 그 적정선이 무너지면 승부는 난장판으로 변질된다.
프로농구 규칙 제12장 ‘파울과 벌칙’의 제82조 4항 ‘실제적 관리와 집행’을 살펴보면, (4) 남을 모독하는 행위, (7) 비웃거나 다른 사람을 약 올리는 행위에는 스포츠정신에 위배되는 테크니컬파울을 선언해야 한다. 또한, ‘상대를 조롱하는 행위’라는 특별조항에는, ‘한 선수가 상대선수를 확실히 조롱했을 때에는 테크니컬파울을 선언한다. 상대선수에게 자동적으로 테크니컬파울이 선언되는 것은 아니며, 조롱한 선수의 행위에 따라 결정된다. 남을 조롱하는 선수는 반드시 가려내고 벌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됐다. 당시 심판들은 두 사람에게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어쨌든 두 사람의 욕설 논란이 잘못됐다는 게 규칙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김동욱(위), 김승현(아래). 사진 = 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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