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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박정민은 어느 역을 연기하든 실제 존재하는 사람처럼 만들어버리는 마력을 지닌 배우다. 영화 '태양을 쏴라' 역시 마찬가지다. 불안한 청춘의 모습을 제 옷을 입은 듯 표현해 낸다.
오는 19일 개봉하는 '태양을 쏴라'는 세상의 끝까지 떠밀려 LA로 찾아 든 세 남녀의 엇갈린 운명을 그린 영화로, 강지환이 사랑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남자 존, 윤진서가 존과 위험한 사랑에 빠지는 재즈 보컬리스트 사라, 박정민이 존의 둘도 없는 친구 첸, 안석환이 사라가 일하는 재즈바의 오너이자 존에게 일자리를 제안하는 조직 보스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올 로케이션 촬영됐다. 박정민은 미국에서 촬영한다는 소리에 영화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고 장난스레 말했다. 하지만 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캐릭터가 잘 살아 있는 시나리오에 반한 것도 '태양을 쏴라'에 출연하게 된 이유였다.
그렇게 시작된 미국 촬영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미국에서 전우애가 생겨서 왔다"라고 말할 정도니 그 고생을 짐작할 만했다. 촬영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와 싸우다 온 느낌이었다고. 보통 한국에서 촬영되는 상업영화 제작비가 40억 정도인데, '태양을 쏴라'는 약 30억원의 제작비만으로 현지촬영을 소화해냈다. "돈만 있으면 정말 촬영하기 좋은 나라가 미국인데 돈이 없으면 촬영하기 힘든 나라가 미국"이라는 말로 그간의 고생을 에둘러 표현한 박정민은 현장에서 스태프처럼 지내며 '잘 만든 영화'를 탄생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미국에서 연기한다는 자체에 주눅이 들었던 것도 있어요. (촬영을 하며 이질감이 들었는데 그 모습들이 화면에 고스란히 비춰진 덕에) 연기면에서 효과를 본 것도 있지 않나 싶어요."
이런 감정들은 박정민이 등장하는 마지막 신에서 폭발했다. 강지환에게 총을 겨누는 신인데, 영화를 보면서 당시 고생했던 것들이 떠오르면서 찡한 감정이 몰려왔다. 연일 4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 급박하게 돌아가는 촬영현장, 미국 촬영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예상외의 변수 등 많은 것들이 '태양을 쏴라' 팀을 힘들게 했다.
"마지막 감정 신을 찍을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다들 잘해주셨는데도 고립된 것 같고 외롭기도 했죠. 촬영한지 4~5주 정도 됐을 때인데 그런 감정들이 극에 달한 상태였어요. 첸과 동질감이 느껴지면서 굉장히 서러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나중에 그 장면을 보는데 등골이 오싹했어요. '그래, 제일 힘들 때였지' 그런 생각들이 들었어요."
사실 박정민은 촬영이 끝나고 숙소에 돌아갔을 때마다 스트레스에 시달려야했다. 정신없이 촬영을 하고 돌아와 하루를 되돌아봤을 때 자신이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고, 이는 고스란히 스트레스가 돼 돌아왔다. 때문에 영화 속에 자신의 연기가 어떻게 담겨 있을지 무섭고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감독 때문에 자신의 모습이 잘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김태식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박정민은 제 몫을 충실히 해냈다. '태양을 쏴라'의 첸은 세상의 끝으로 떠밀린 청춘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박정민은 철없는 첸이 됐다가도 잠시 후 비릿한 세상의 맛을 잘 알아버린 첸이 돼 존재감을 발산한다. 계산하지 않은 동물적 감각으로 연기하는 것 같지만 정작 그는 이 모든 것이 철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라 털어놨다.
"다 계산한 연기였어요. 전 제 마음대로 연기하는 게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 충돌이 안 생기는 선에서 제 마음대로 연기를 해요. 그런데 그게 꼭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게 밖에 못하는 배우라 마음대로 해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웃음) 상대 배우가 이 정도의 리액션을 주겠다 이런 예상이 되잖아요. 그 만큼 주지 않을 때는 제가 더 해보기도 하죠. 약간의 게임 같은 느낌이기도 해요."
박정민은 연기력 면에서는 만개했지만 대중적 인기 면에서는 아직 큰 빛을 보지 못했다. 오만석, 이선균, 문정희, 유선, 변요한 등 걸출한 배우들을 배출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출신으로 극단 차이무에 소속돼 연극 무대에서 내공을 쌓았다. '경'이라는 극단을 직접 만들어 연극을 무대에 올렸을 정도로 실력과 열정을 겸비한 배우기도 하다. 지난 2011년에는 '파수꾼'으로 장편영화에 데뷔,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주목 받았으며 이후 '전설의 주먹', '들개' 등 스크린뿐 아니라 '너희들은 포위됐다', '일리 있는 사랑' 등 브라운관에도 얼굴을 내비쳤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지만 인기가 정비례하지는 않았다. 오죽하면 한 네티즌이 '제발 떴으면 하는 배우'라고 포스팅을 했을 정도. 박정민도 그 글을 봤다며 폭소했다. 그는 10년 후를 내다보며 연기하고 있다. 끊임없이 과녁을 정조준하며 차근차근 자신의 내공을 탄탄히 다지고 있는 것. 물론 그 전에 부모님이 자랑할 수 있는 유명한 아들이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부모님이 자랑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에요. 그만큼 어려운 게 어디 있겠어요. 부모님이 60세가 다 되셨는데 그 나이대 분들이 아시는 배우가 얼마 없잖아요. 정말 유명한 분들 아니면 잘 모르시니까. 부모님께서 '박정민이 내 아들이야'라고 자랑하실 정도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더 열심히 해야죠."
[배우 박정민.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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