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영화 ‘로봇, 소리’의 최대 장점은 담백한 연출 그리고 배우 이성민과 심은경의 내공실린 연기다.
‘로봇, 소리’는 10년 전 실종된 딸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을 만나 딸의 흔적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휴먼 로봇 감동 드라마다.
휴먼 로봇 감동 드라마라는 생소하면서도 어려운 말들로 포장돼 있긴 하지만 영화를 보면 왜 휴먼, 로봇, 감동, 드라마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게 될 것. ‘로봇, 소리’에서 로봇은 감동을 짜내기 위한 소품으로 쓰이지 않는다. 한 명의 사람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제 롤을 충실히, 그것도 탁월하게 해낸다. 여기에 가슴 아린 스토리와 감동들이 녹아 있다.
또 ‘로봇, 소리’는 감정의 과잉이 없다.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의 경우 간혹 연출자의 감정이 과잉돼 관객과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메가폰을 잡은 이호재 감독은 적절한 냉정함을 유지한다. 때문에 한국적 신파 영화를 많이 봐 온 관객이라면 몇몇 장면들에서 오히려 극대화된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아함을 느낄 수 있다. 발산하기보다 터져나오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이성민의 연기는 놀라울 정도다. 이번 영화에서 첫 원톱 주연을 맡은 이성민은 무생물과도 완벽한 케미를 선보인다. 사람이 아닌 로봇과 호흡을 맞춘다는 건, 자신이 맡은 해관 뿐 아니라 로봇인 소리의 연기까지 예상하며 연기해야 하는 탓에 두 명분의 연기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텐데도 소리와의 호흡은 물론 절절한 부성애까지 흠잡을데 하나 없다.
이번 영화에서 소리는 여러모로 영화 ‘E.T’ 속 이티를 떠올리게 한다. 우주에서 왔을 뿐 아니라 몸을 가리는 설정도 이티와 흡사하다. 소리가 탄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해관의 모습은 엘리어트의 자전거 앞에 타고 있던 이티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번 영화에서는 이티와 엘리어트의 교감에 맞먹는 소리와 해관의 교감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소리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심은경은 왜 자신이 충무로를 대표하는 20대 여배우 중 한 명인지를 여실히 느끼게 한다. 로봇의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그 안에 감정들을 녹여냈는데, 소리를 기계 덩어리가 아닌 마치 사람처럼 느끼게 하는 일등공신 역을 톡톡히 해냈다. 점점 사람처럼 변해가는 소리의 변화를 목소리만으로도 알아채 수 있다. 또 얼굴의 상하좌우를 움직일 수 있는 소리의 조종을 맡은 일명 ‘소리 삼촌’의 연기력도 다른 배우들 못지 않다.
이런 ‘로봇, 소리’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녹아 있다. “인간은 (자신을 통해) 수집한 정보로 인간을 해친다”는 소리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 서로를 불신하고 심지어 총구까지 겨누는 인간들의 모습, 가장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부녀와의 관계, 이를 통해 보여주는 소통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대구에서의 비극적인 참사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지만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영화 안에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인지 ‘로봇, 소리’는 경쟁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대치가 낮은 편이었지만 시사회 후 입소문을 타고 주목받고 있다. 착한, 새로운 시도의, 담백한 영화가 MSG 가득한 영화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앞으로 한국영화가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물꼬를 터줄지 지켜볼 일이다.
[영화 ‘로봇, 소리’ 스틸.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