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빅쇼트’의 배우들은 연극의 방백처럼, 관객에게 불쑥불쑥 말을 건다. 이 영화는 2008년 미국 경제 뿐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을 송두리째 뒤흔든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상품) 사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를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규제를 받는 은행이었다면 절대 뭉텅뭉텅 돈을 빌려주지 않았을 것이고,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돈을 넙죽넙죽 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 이름으로 대출이 가능했고, 옷을 벗고 춤을 추는 스트리퍼(자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대출받았는지도 모른 채)도 다섯 채의 고급 주택을 소유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머니볼’로 유명한 마이클 루이스의 원작을 바탕으로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은 아담 맥케이 감독이 원래 코미디언 출신이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수백만명의 미국인이 파산하고 실직한 금융사태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한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면 희극이다. 아담 맥케이 감독은 천문학적인 대출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과정으로 진행됐는지를 도이치뱅크 트레이더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 그리고 카메오로 등장하는 셀레나 고메즈, 마고 로비, 세계적인 셰프 안소니 부르댕 등의 설명으로 풀어낸다. 금융사태의 한 복판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채택한 이러한 ‘희극적 관점’은 희대의 합법적 사기행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것이다.
규제받지 않은 금융기관의 코미디같은 사기행각의 대가는 너무 컸다. 미국에서만 800만명이 실직했고, 600만명이 집을 잃었다. 5조 달러가 증발했다. 미국 정부는 구멍난 재정을 국민 세금으로 채워넣었다. 정부가 금융을 관리하지 않으면 비슷한 위기가 발생할 것이고, 납세자의 주머니는 또 다시 털릴 것이라고, 이 영화는 경고한다.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역시 희극적 관점을 택한다. 무일푼의 조던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주가 조작으로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뒤 섹스와 마약, 술에 탐닉한다. 벌어들인 돈을 스위스 계좌로 빼돌리는 방법으로 금융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지만, FBI는 그를 표적으로 삼고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온다.
사람들에게 떼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유혹하는 벨포트는 마치 신흥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보인다. 누구나 그의 연설에 머리를 조아리고, 숭배한다. 머니, 마약, 섹스의 세 가지 재료로 만든 이 영화는 돈의 허상을 좇아 탐욕을 불태우다가 몰락, 타락, 파멸하는 과정을 블랙코미디로 담아낸 작품이다. 푹풍우를 만나 요트가 뒤집히는 순간에도 마약을 찾고 더욱 강렬한 약효를 느끼려다 뇌성마비 단계까지 이른 상태에서 페라리를 운전하는 벨포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질척거리는 욕망의 허상이 얼마나 너절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빅쇼트’의 배우들처럼,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건다. 그는 자신이 연기하는 벨포트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희극적 관점이 아니라면, 두 영화가 각각 주가조작과 금융위기를 냉소적으로 담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영화엔 벨포트의 사기 행각에 말려든 피해자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로 들리고, 그의 연설을 듣는 청중의 얼굴로 비춰진다. 대박의 꿈을 실현시켜주겠다는 사탕발림에 속아넘어가는 대중들이 있는 한, ‘제2의 벨포트’는 오늘도 손쉬운 먹잇감을 찾아 군침을 삼키고 있다. 그리고 관객 자신도 ‘제2의 벨포트’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당신이 돈에 눈이 멀었다는 생각이 들 때, 배우들처럼 카메라 밖으로 나가보라. 객관적 거리를 확보하고 희극적 관점을 유지하면 탐욕과 사치와 허황된 꿈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빅쇼트’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스틸컷]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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