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추우면 생각나는 찜 겨울을 뜨겁게 품다

[마이데일리 = 장영준 기자] 볶고, 끓이고, 무치고. 재료에 따라, 원하는 맛에 따라 다양한 조리 방법을 거쳐 밥상에 오르는 음식들이 있다. 그 중 겨울이면 생각나는 것이 바로 뜨끈뜨끈한 '찜'이다.

오는 21일 방송될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솥 안에서 맛과 영양은 물론 모양새까지 오롯이 지켜내며 뜨겁게 익은 찜 음식들을 만나본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오래된 삶의 지혜도 엿본다.

◆ 가덕도 대구 찜 이야기

겨울 바닷가는 비릿한 냄새가 끊이질 않는다. 햇볕 드는 곳이면 어디든 제철맞은 생선들을 손질해 말리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2월까지 겨울 대구잡이로 바쁜 가덕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1미터 가까운 큼직한 대구들이 찾아올때면, 집집마다 대구 말리는 손길이 바빠진다.

요즘은 싱싱한 활어를 회나 탕으로 먹는게 익숙하지만 사실, 생선을 먹는 방법은 찜이 더 익숙한 조리법이었다. 말린 생선은 그대로 쪄서먹는게 보통이지만, 가덕도에선 특별한 대구찜을 만들어먹곤했다.

가장 큰 알배기대구의 내장을 빼내고 뱃속에 소금을 채워 염장해서 말렸다 먹는 약대구찜에 반쯤 말린 대구 몸속에 갖은 채소를 양념해 넣고 쪄서 먹는 대구찜까지, 추운 겨울 뜨겁게 이겨낸 가덕도 사람들만의 겨울 별미를 만난다.

◆ 노부부의 채소찜 이야기

찜은 솥 하나만 있으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겨울이면 수도가 얼만큼 추운 강원도 정선의 산촌마을. 60년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에게 평생 감자 옥수수가 끼니의 전부였지만, 무엇이든 넣기만 하면 따뜻하게 익혀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주던 가마솥은 가장 든든한 살림밑천이다.

가마솥에 밥을 지을 때, 밥위에 무, 배추, 고추등 채소를 올려서 찌면 아삭한 식감 그대로, 단맛이 가득 베인 찜이 만들어진다. 아궁이 불 하나로 밥과 반찬을 동시에 만들어내던 알뜰한 지혜가 담긴 채소찜에 거친 귀리가루에 소금에 절인 갓김치로 맛을 낸 옛 귀리만두찜까지 오래된 추억들이 밥상을 채우면, 겨울이 더 따뜻해진다.

◆ 2천년의 지혜, 찜

찜은 재료를 물에 직접 넣어 끓이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뚫인 구멍을 통해 올라오는 수증기로 익히는 조리방법이다. 요즘은 건강식으로 찜요리가 주목을 받기도 한다는데, 과연 찜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찜을 하는 전통조리도구인 시루는 철기시대 고구려벽화에 등장, 가마솥보다 더 먼저 사용된 오래된 조리도구였다. 밥처럼, 곡식의 낟알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여 익힐수 있는 기술은 시루가 있었기 때문이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새 사라져가는 옹기 시루를 만드는 장인의 손길에서, 시루에 담긴 조리과학의 지혜를 엿볼수 있었다. 흙의 기운까지 그대로 담고 있는 옹기시루에 갖은 약초를 넣고 익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었던 시루찜닭. 그리고, 조선시대 고조리서에 기록된 옛 전통 찜음식. 채소에 칼집을 내고, 갖은 모양의 소를 넣고 육수를 부어 익힌 선(膳)까지 선조들의 오래된 지혜와 조리과학의 진수가 찜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 폐광촌 마을의 묵은지 찜 이야기

겨울이 가장 추운 곳, 강원 태백, 60년대까지 금광으로 호황을 누리던 조탄마을은 폐광된 이후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않는 쇠락한 동네였다. 하지만, 요즘 마을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겨울이면 한과를 만드느라 바쁘고, 산속 깊은 곳, 버려졌던 폐광안에선 묵은지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깊은 동굴안 마을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항아리가 무려 약 500여개. 갓담근 김장김치는 그대로 꺼내먹을수 있지만 3년 된 묵는지는 찜을 해야 제맛이다.

돼지고기에 묵은지를 돌돌말아 만든 묵은지찜에 땅속 깊이 묻어둔 감자와 양배추를 쪄서 빡빡장과 함께 싸 먹는 산촌의 별미까지, 자신이 가진 온기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찜 한솥에 춥고 시리던 인생도 그렇게 조금씩 따뜻해진다.

[사진 = KBS 제공]

장영준 digou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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