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1994년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카를로스 알베르토 페레이라(Carlos Alberto Parreira) 감독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전 미래의 포메이션이 4-6-0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는 현실이 됐다. 리오넬 메시는 바르셀로나에서 폴스나인(false nine:가짜 9번)이 됐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엄청난 득점력을 갖춘 윙어로 변신했다. 그밖에도 프란체스코 토티, 마루앙 펠라이니도 각각 AS로마와 에버턴에서 제로톱 역할을 수행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과거 골에만 집중했던 스트라이커가 현대에는 다양한 능력을 요구 받고 있다. 몸싸움에 능하면서도 골을 잘 넣어야 하고 빠르면서도 패스에 능해야 한다. 그리고 압박의 발전으로 인해 상대진영부터 수비를 해야 한다. 11명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을 해야 하는 포지션이 됐다.
세계 최초로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한 신태용 감독은 황희찬(20·잘츠부르크)이 자신이 원하는 유형에 가까운 스트라이커였다고 밝혔다.
“(황희찬은) 저돌적인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웨인 루니와 같은 올라운드 플레이어(All-round player: 어느 포지션에 있어도 능숙한 선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격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루니다. 그는 최전방에서 공을 빼앗겨도 최후방까지 내려와 공을 되찾아온다. 그런 자세가 현대 축구의 공격수에게 필요하다고 희찬이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희찬이는 호주와의 평가전에서 곧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황희찬은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도 황희찬의 활약을 단순히 ‘득점’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신태용 감독도 황희찬이 골 이상의 활약을 해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황희찬은 이번 대회에서 현대 축구가 요구하는 다재다능한 공격수의 움직임을 보여줬다.
황희찬은 휴식을 취했던 이라크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을 제외하고 준결승까지 총 4경기를 뛰었다. 총 232분(우즈베키스탄:90분, 예멘:71분, 요르단:56분, 카타르:15분)간 그라운드를 누볐고 한국은 모두 승리했다. 황희찬이 결장한 이라크전이 유일한 무승부였다.
중요한 건 황희찬의 팀 기여도다. 한국은 5경기에서 총 12골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황희찬이 직접 넣은 득점은 없다. 하지만 황희찬이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득점은 7골이나 된다. 또 황희찬이 뛴 232분 동안 8골이 터졌고, 뛰지 않은 218분에는 4골 밖에 나오지 않았다. 물론 수치만으로 이 모든 것이 황희찬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황희찬이 최전방에 있을 때 한국의 득점력이 더 높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득점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황희찬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전(2-1승)에서 2골은 모두 황희찬으로부터 나왔다. 선제골에서 황희찬은 상대 측면 뒷공간을 파고든 뒤 수비수와 1대1 대결을 펼쳤고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그리고 추가골 장면에서도 황희찬이 측면을 돌파해 올린 크로스가 문창진의 득점으로 연결됐다.
5골차 대승을 거둔 예멘전에서도 황희찬은 2골을 이끌어냈다. 권창훈의 첫 골에선 후방으로 내려와 공을 잡은 뒤 턴 동작으로 수비를 따돌리고 완벽한 패스를 찔러줬다. 이 장면에서 황희찬은 상대 센터백 지역에 있다가 내려오면서 수비를 유인했고 권창훈이 그 자리로 파고들 수 있었다. 권창훈의 세 번째 골도 예멘 좌측면을 무너트린 황희찬의 크로스가 시발점이었다.
요르단전도 황희찬의 보이지 않은 움직임이 결승골에 영향을 줬다. 오른쪽 지역에 있던 권창훈이 득점 장면에선 왼쪽으로 이동해 크로스를 올렸고 이것이 류승우를 거쳐 문창진의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됐다. 이때 황희찬은 좌측면으로 크게 이동해 상대 풀백을 유인했다. 그로인해 예멘 풀백(full back)은 권창훈이 크로스를 할 때 적극적으로 붙지 못했다. 권창훈을 막기 위해 전진했다면 황희찬에게 완벽히 측면을 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롤모델 수아레스를 연상시킨 드리블로 한국의 짜릿한 승리를 이끈 카타르전은 황희찬이 팀 공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확인한 경기였다. 후반 35분에 교체로 들어간 황희찬은 처음으로 왼쪽 측면 미드필더를 맡았다. 이 위치에서 황희찬은 매우 위협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수비가담은 물론 빠른 스피드와 돌파로 공격과 수비 간격이 벌어진 카타르를 무너트렸다.
대회 직전까지 신태용 감독은 황희찬을 4-4-2 다이아몬드(diamond) 전술의 투톱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막상 대회가 시작되자 투톱은 물론 원톱과 측면 미드필더도 능숙하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술적인 이해도 높았다. 공격 2선의 포지션 체인지가 많은 상황에서 황희찬은 공간을 찾는 능력이 뛰어났다. 겹치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신태용 감독이 말한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결승전을 앞두고 소속팀 잘츠부르크로 복귀한 황희찬도 골보다 팀의 목표를 이룬 것에 기뻐했다. 그는 “골을 못 넣어서 아쉽지만 팀 목표를 이뤄 만족한다. 골은 터질 수도 있고 안 터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에는 매 경기 골을 넣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신태용 감독은 황희찬 없이 일본과의 결승전을 치러야 한다. 그는 “(황희찬이 없지만) 이기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택 폭이 넓지 않다. 황희찬이 없는 상황에서 주로 김현을 원톱에 배치한 전술을 사용했지만 골을 넣는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황희찬이 없을 때 (예멘전 후반을 제외하고) 이라크, 카타르전에서 단 2골 밖에 넣지 못했다. 신태용의 선택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사진 = 대한축구협회]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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