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최창환 기자] 주희정, 박찬희, 김태술 등. 2005년 SBS를 인수한 이후 안양 KGC인삼공사(KT&G 시절 포함)는 전통적으로 스타로 분류되는 포인트가드가 팀을 이끌어왔다. 김태술과 박찬희가 함께 뛴 2011-2012시즌에는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따냈다.
성적이 늘 좋았던 건 아니지만, 주전 포인트가드마다 지닌 개성이 뚜렷했던 덕분에 KGC인삼공사는 런&건이라는 팀 컬러만큼은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제 배턴은 3년차 가드 김기윤(24, 181cm)에게 넘어왔다. 스스로도 “농구 인생에 있어 최고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부담도 따른다”라 말하는 등 2016-2017시즌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잘 알고 있다.
암울했던 대학시절을 거쳐 KGC인삼공사의 새로운 주전 포인트가드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김기윤의 성장세는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을까.
▲드래프트에서 흘린 눈물, 숨은 의미
2014 신인 드래프트 현장. 전체 6순위로 KGC인삼공사에 지명돼 단상에 오른 김기윤은 소감을 말하던 도중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대학시절 겪었던 마음고생이 떠올랐던 까닭이다.
경복고 시절 김기윤은 빼어난 경기운영능력과 돌파력을 과시, 탄탄대로를 걸었다. 문성곤(KGC인삼공사), 주지훈(LG), 이종현(고려대), 최준용(연세대) 등 듬직한 동료들과 함께 우승에 익숙한 농구를 했다.
김기윤은 “밥만 먹으면 우승했다. 결승에서도 30점차로 이긴 경기가 있었을 정도다. 라이벌(용산고)에게 지면 난리가 났다. 지면 단체로 삭발을 해야 할 정도로 이기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었다”라며 고교시절을 돌아봤다.
하지만 김기윤은 연세대 진학 후 서서히 스포트라이트에서 멀어졌다. 단지 연세대가 각종 대회에서 고려대에 발목 잡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기윤은 잦은 부상, 경쟁력 있는 신입생들의 가세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출전시간이 급격히 줄었다. 농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환경까지 더해져 초등학생 시절 농구를 시작한 후 최악의 위기에 놓였다.
특히 졸업반 때는 출전 자체를 못하는 경기도 많았고, 김기윤의 자신감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4학년 때는 농구가 그냥 싫었다. 아프다는 핑계로 운동을 안 나갔고, 코치님께도 농구를 그만두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땐 정말 ‘다시는 농구를 안 하겠다’라는 마음이었다. 오히려 교생실습 나가는 게 마음 편했다.”
대학시절을 회상하던 김기윤은 “코치님이 지금 그만두면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며 말리셨고, 은희석 감독님이 오신 후 기회가 더욱 많이 주어졌다”라고 덧붙였다.
김기윤은 은희석 감독 부임 후 대학리그 플레이오프에서 활기 넘치는 경기력으로 프로팀들이 갖고 있던 의문부호를 지웠다. 드래프트에서 전체 6순위로 KGC인삼공사에 지명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당시 KGC인삼공사는 최대어로 꼽힌 이승현, 김준일에 이어 김기윤을 전체 3순위로 선발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워둔 터였다).
대학시절의 마음고생을 들어보면, 김기윤이 드래프트 현장에서 왜 눈물을 흘렸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동안 자존심이 많이 상했고, 무엇보다 부모님께 농구 그만두겠다는 말씀을 드렸던 게 너무 죄송했다. 고등학교 때 청소년대표로 선발된 것을 그렇게 자랑스러워하셨는데…. 웬만하면 경기장을 오시는 부모님이 대학 땐 내가 못 뛸 것을 알고 안 오셨던 적도 많았다.” 김기윤의 말이다.
그런데 정말 농구를 그만 뒀다면, 지금쯤 김기윤의 인생은 어떻게 됐을까. “군대는 다녀왔을 테고…. 고향(마산)에서 백수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을 것 같다. 매일 술 먹으면서…(웃음),”
▲폭풍성장, 그리고 ‘180클럽’
미주알고주알 김기윤의 학창시절, 드래프트 당시 얘기를 늘어놓은 건 인터뷰에서 김기윤이 꺼낸 첫마디 때문이었다. 지난 시즌 얘기를 가장 먼저 던졌는데, 김기윤은 “고교 시절 이후 처음으로 즐기면서 농구를 했던 순간”이라고 했다.
김기윤은 이어 “이기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강해졌다. 한 경기, 한 경기 이기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것인지 알게 됐다. 특히 홈 연승이 계속될 때는 정말 두려울 게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KGC인삼공사는 2015-2016시즌을 개막 4연패로 시작했지만, 1라운드 중반 이후 속공전개와 3점슛이 살아나 이기는데 익숙한 팀이 됐다. 시즌 중반에는 역대 2위인 홈 15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비록 KGC인삼공사는 챔프전 진출에 실패했지만, 4강 플레이오프 진출 및 홈 15연승은 시즌 개막 전 전창진 감독의 사퇴 등 뒤숭숭했던 분위기 및 혹평을 뒤엎은 성과였다.
김기윤의 성장세도 KGC인삼공사의 지난 시즌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김기윤은 KGC인삼공사가 정규리그 및 플레이오프에서 치른 62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김기윤의 정규리그 기록은 평균 22분 4초 8.1득점 2.8어시스트. 데뷔시즌(평균 12분 26초 3.6득점 1.6어시스트)에 비하면 괄목할 성장이었다. 특히 김기윤의 3점슛 성공률 43%는 김선형(SK, 45.8%)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기록.
사실 김기윤은 시즌 중반까지 ‘180클럽’도 가능한 페이스를 보였다. ‘180클럽’이란 야투율(50% 이상), 3점슛 성공률(40% 이상), 자유투 성공률(90% 이상)이 도합 180을 넘는 선수를 의미하는 말이다.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NBA에서도 7명이 총 12회 밖에 달성하지 못한 진기한 기록이다. 지난 시즌 김기윤의 야투율은 50.5%였다. 다만, 3라운드까지 90% 이상의 성공률을 남긴 자유투는 4~6라운드 68.8%에 그쳐 최종 기록은 80.6%에 불과했다(?).
지난 시즌 막판 “‘180클럽’은 힘들어졌다”라고 전했을 때 김기윤의 반응은 “그게 뭔가? 키(cm) 180 얘기하는 건가?”였다. 올 시즌 다시 이 기록에 도전할 수 있을지 묻자 그는 “아무래도 슛 찬스가 많지 않은 포지션이라 높은 슛 성공률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 다만, 자유투만큼은 더 집중해서 던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윤은 이어 슛은 언제부터 자신이 있었는지 묻자 “고등학교 때까지는 슛보단 돌파의 비중이 높았다. 대학 때 경기를 많이 못 뛰어서 야간에 슛 연습을 많이 했고, (천)기범이와 뛸 때는 본의 아니게 2번(슈팅가드) 역할을 맡았다. 슛을 던질 기회가 많아지며 자신감도 생겼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찬희 떠난 ‘외톨이’, 홀로서기를 준비하다
사실 KGC인삼공사의 주전 포인트가드는 지난 시즌부터 서서히 김기윤에게 무게 중심이 넘어갔다. 김승기 감독은 부상, 전술 등 종합적인 결론을 통해 박찬희가 아닌 김기윤에게 보다 많은 출전시간을 부여했다.
하지만 김기윤은 박찬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컸다고 말한다. “(박)찬희 형에게 스틸, 수비에 대해 많이 배웠다. 뿐만 아니라 찬희 형이 힘이나 신장이 좋은 상대팀 가드를 막아 이긴 경기도 많았다”라는 게 김기윤의 견해다.
어쨌든 김기윤은 박찬희와 역할을 양분했던 지난 시즌과 달리, 올 시즌에는 개편된 포인트가드진의 핵심 역할을 소화하게 됐다. 김기윤은 “찬희 형은 함께 팀을 이끄는 선수여서 의지가 됐는데, 이제는 떠나셔서 ‘외톨이’가 된 기분이다. 농구 인생에 있어 최고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부담도 따른다”라며 남다른 마음가짐을 전했다.
변수는 또 있다. KGC인삼공사는 2016 외국선수 드래프트 2라운드 2순위로 단신가드 키퍼 사익스(177.9cm)를 지명했다. 몇몇 전력분석원과 에이전트에 따르면, 사익스는 조 잭슨(前 오리온)과 비슷한 유형의 가드로 보인다. 외국선수는 결국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하지만, 사익스와 함께 뛰게 되면 김기윤의 역할에도 분명 변화가 있을 터.
김기윤은 “감독님도 사익스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해주신다. 찬스를 잘 만들어주는 선수라고 들었다. 감독님이 ‘20분만 뛸 것이라면 설렁설렁해라. 얼마나 뛸지는 너에게 달렸다’라며 압박을 주셨다(웃음). 나 스스로도 사익스에게 배울 기회라 생각한다. 잘 이겨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김기윤은 이어 “요새 회식할 때마다 선수단이 ‘통합우승!’을 외친다. 악착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지난 시즌 이상의 성적을 내고 싶다”라고 포부를 전했다.
서두에 언급한 KGC인삼공사의 포인트가드 계보(주희정-박찬희-김태술)를 김기윤에게 전했다. 수상할 당시 소속팀이 다르긴 하지만, 모두 신인상 출신인데다 팀을 우승으로 이끈 적이 있는 선수들이다. 국가대표 경력도 있다. 자의든, 타의든 결국에는 KGC인삼공사를 떠났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에 대해 김기윤은 손사래를 쳤다. 다만, “나는 형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싶다. 다들 팀을 옮기셨지만, 나는 이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는 게 목표다. 팀이 꼭 필요로 하는 선수 말이다”라며 힘주어 말했다.
▲김기윤의 말말말
“‘반짝 활약’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한 단계씩 성장하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다. 근력을 키우기 위해 비시즌에 체중을 73kg에서 81kg까지 찌웠는데, 너무 무리하게 찌워서 몸이 오히려 안 좋아졌다. 피로골절이 오기도 했다. 근력은 점진적으로 키워야 할 것 같다. 우리 팀은 포워드 전력이 좋아 슛 찬스를 더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 지난 시즌에 적었던 어시스트 개수를 늘리는 것도 목표다.” -2016-2017시즌 개인적인 목표를 묻자
“헤어스타일은 대학 때부터 두 가지였다. 앞머리를 내릴 때도 있고, 올릴 땐 스프레이를 뿌린다. 경기가 잘 풀리면 그 헤어스타일을 계속하는 편인데, 지난 시즌 초반에는 머리를 내렸다. 앞머리를 올린 경기부터 팀이 잘 풀렸고, 그 이후에는 플레이오프가 끝날 때까지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유지했다. 징크스라기 보단, 좋은 기분을 이어가고 싶어서다.” -깔끔한 헤어스타일이 눈에 띈다고 전하자
“등번호는 프로에 온 후로 계속 2번을 달고 있는데,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냥 남는 번호였다. 이번 시즌부터 1번을 쓸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면 너무 (김)태술이 형(삼성)을 따라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안 바꿨다(웃음). 형들이 얘기해주시기 전까진 몰랐는데, 내 응원가(슈프림팀 ‘슈퍼매직’)도 우리 팀에 있을 때 태술이 형이 썼던 노래랑 똑같다고 하더라.” -등 번호에 대해 묻자
[김기윤.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마이데일리DB]
최창환 기자 maxwindo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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