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오랜 시간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정확한 지도 만들기에 매진했던 김정호(차승원)가 한양으로 돌아온다. 어느덧 딸 순실(남지현)은 처녀로 성장했고, 순실을 보살피는 여주댁(신동미)은 딸보다 지도에 미쳐있는 김정호를 타박한다. 김정호는 조각가 바우(김인권)와 목판본 제작에 박차를 가하지만, 지도의 가치를 알아본 흥선대원군(유준상)과 세도가 안동 김씨 문중이 지도를 뺏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는 오직 백성을 위해 지도를 만들려고 했던 김정호의 삶을 뚝심있게 밀고 나간다. 극 초반부에 한반도 최남단 마라도, 일몰의 풍경이 아름다운 여수 여자만, 겨울의 고된 여정을 담은 북한강, 봄의 철쭉이 만개한 합천 황매산,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 등 수려한 경치를 담아내 그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 지도를 만들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관객은 풍광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으러 극장을 찾는다. 김정호와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과 안동 김씨, 김정호와 안동 김씨의 대립과 갈등이 선명하지 않아 이야기의 중심이 흔들린다. 목판본을 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의 강도도 약한 편이다.
왜군의 독도 침탈,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 등은 이야기에 유기적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겉돌았다. 침탈 과정에서의 생존과 귀환, 지도 탈취와 반납이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천주교를 믿을 수 밖에 없는 이유와 동기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후반부의 내용 전개가 느닷없이 다가온다.
‘유머의 강박’은 이 영화의 미덕인 진정성을 살리는데 약점으로 작용했다. 이미 김대우 감독의 ‘음란서생’(2006)에서 동영상이 등장했다. 조선 시대에 미래의 첨단기기를 언급하는 유머는 이미 신선함을 잃었다. ‘음란서생’은 에필로그에 등장했지만, ‘고산자’는 극의 중반부에 나와 의아함을 자아낸다.
김정호 캐릭터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권력에 맞서 지도를 지키려는 의지를 가졌다면 좀더 강단있는 성격이 필요한데, 이 영화의 김정호는 시종 권력에 주눅 든 모습으로 등장해 이야기의 활력을 떨어 뜨린다.
강우석 감독은 목판 인쇄로 정확한 지도를 나눠주려고 했던 김정호가 이 시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정보를 독점하려는 지배층과 정보를 공유하려는 김정호의 대립과 갈등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더라면 그의 연출의도가 명확하게 전달됐을 것이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