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엄태구는 어려서부터 배우 한번 해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수줍은 성격에 무대 오르는 게 싫었다. 교회 성극이 하기 싫어 수련회를 안 갔을 정도다. 그러다 고등학생 시절, ‘얼짱’ 친구가 같이 연기해보자고 했다. 진지하게 고민하다 연기학원에 등록했다. 막상 친구는 미술학원으로 갔다. 그 친구는 현재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친구 덕에 배우가 된 거죠. 그 친구가 꼬시지 않았으면 배우 안 했을 거예요. ‘밀정’ VIP 시사회에도 참석해서 잘 봤다고 하더라고요.”
3수까지 할 줄 몰랐다. 고3 시절, 10군데 넘는 곳에 원서를 냈다. 모두 연극과를 지원했다. 신기할 정도로 다 떨어졌다. 재수할 때는 서울예전 한 군데만 넣었다. 또 떨어졌다. 연극과에 계속 낙방하다 영화과에 원서를 넣었다. 결국, 건국대 영화예술학과 1기로 합격했다. 건국대에 영화예술학과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4수를 했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3수 준비하고 있을 때 형(‘잉투기’ 엄태화 감독)이 단편영화의 단역으로 출연해보라고 권유했어요. 그때 형은 붐 마이크 들고 있었죠(웃음). 영화 제목이 ‘계절의 끝’이었어요. 필름으로 찍는 영화라 최대한 NG 안내려고 노력했는데, 뜻대로 안됐죠. 최근에 영화를 봤어요. 무려 15년만에 본 거예요. 정말 못 보겠더라고요. 심하게 못했거든요(웃음).”
그는 3수를 하면서 “좀더 필사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때부터 연기에 인생을 걸었다.
이기자부대에서 박격포 탄약수, 계산병으로 근무했다. 제대하자마자 영화 ‘기담’의 ‘일본군1’로 캐스팅됐다. 한 줄의 일본어 대사 때문에 일본어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너 단편영화 많이 찍었다며…”.
연출부 형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일본군 군복을 입고 어깨에 총을 멘 채 산에 올라가 일본어 대사를 죽기살기로 떠들고, 외웠다. 지나가던 여성 등산객이 비명을 지르고 도망갔다.
“저기요, 저는 대사 연습을…”
막상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일본어 선생님이 후시 녹음을 했다. ‘내 길이 아닌가, 계속 연기를 해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는 엄태화 감독의 ‘잉투기’로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칡콩팥’ 아이디를 쓰는 잉여 캐릭터 태식을 인상적으로 연기했다. 액션 연기를 하다 다치기도 많이 다쳤다. 이를 악물고 했다.
“‘잉투기’가 잘못되면 집안이 기울어질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했어요(웃음). 이 영화가 성공해야 형도 잘되고 나도 잘 되니까 처절하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제작진은 저를 반대했어요. 형이 제작진을 설득해 저를 캐스팅했죠. 형에게 늘 감사해요.”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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