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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쟤가 '살인의 추억'의 걔야?"
맞다. 배우 정인선. 얘가 '살인의 추억'의 걔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두 번 놀랐다. 하나는 '마녀보감'의 무녀 그리고 '매직키드 마수리' 출신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살인의 추억'의 그 꼬마 아이란 건 몰랐다.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 송강호(박두만 역)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하던 여자아이가 정인선이다. 다시 그 장면을 찾아보니 열두 살 정인선의 목소리는 제법 섬세했다. "짧은 분량이지만 촬영만 3일을 했어요. 그래서 학예회를 못 갔던 기억이 남아 있어요."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13년 전 보았던 그 여자아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살인의 추억' 촬영은 제게 충격이었어요. (봉준호)감독님께서 꼼꼼하게 모니터를 보여주시면서 '눈썹을 많이 쓰지? 이번에는 안 쓰고 해볼까?' 디테일하게 알려주셨거든요. 예전에는 '웃어'나 '울어' 같은 지도만 받았는데 그런 디렉션은 처음이었어요."
데뷔가 다섯 살이던 1996년 드라마 '당신'이다. '정인선'이란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사실 20년간 끊임없이 우리 곁에서 연기해온 배우였고, '한공주' 속 천우희(공주 역)의 친구 은희 역의 그 배우란 사실도 놀라게 했다.
"인선이란 이름은 '어질 인'에 '신선 선'이에요. 이름이 어렵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전 그래도 제 이름이 좋아요."
'한공주'는 참혹한 현실에 어둡고 무거운 공기가 비정하게 흐르는 영화다. 그 공간 속에서 은희는 홀로 도드라진다. 높은 목소리만큼이나 끊임없이 희망을 얘기하는 인물로 유일하게 비현실적인 캐릭터다. 그럼에도 은희의 존재가 부자연스럽지 않았던 건 은희를 연기한 배우가 정인선이기 때문이다. 정인선의 심성에는 원래부터 희망의 기운이 가득 스며들어 있었다. "전 그저 잘 묻어간 건데" 하며 웃는다.
"사람들은 은희가 비현실적이라고 하지만 저에겐 현실적인 캐릭터였어요. 저에게도 어릴 적 은희 같은 친구가 있었거든요. 정작 그 친구는 시사회 때 영화를 보여줬더니 저 보고 '꼭 어렸을 때 네 모습 그대로네' 하네요."
다섯 살은 먹고 싶은 것 먹고 싶어서, 갖고 싶은 것 갖고 싶어서 떼 쓰고 우는, 감정에 솔직하기만 한 나이다. 그런 나이에 어른들 틈에서 연기를 하고 세상을 알아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웃을 때면 눈이 사르르 가늘어지면서 환해지는 정인선의 미소는 20년간 변함없었을 것 같지만,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기도 분명 있었다.
"힘들어서 도중에 쉰 적이 있어요. 중학생 때였는데, 현장에 가면 어른들이 '인선 씨' 하고 불렀거든요. 근데 학교에 돌아오면 친구들이 '야! 너!' 이렇게 부르니까 정체성에 혼란이 왔던 것 같아요. '이게 아니었다면 난 아무 것도 아니구나' 싶었죠. 제 모습에 자신이 없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한동안 연기 활동을 쉬었는데, 그때를 "바깥 세상에 대해 많이 알게 된 시기. 저의 관점이 생긴 느낌"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생긴 취미가 여행과 사진이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눈으로 확인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과정을 거치며 정인선의 세상도 더불어 넓어진 것일 테다.
마지막으로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물었다. 들려준 답이 엉뚱해서 웃어버렸는데, 정인선과 헤어진 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왠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정인선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어른들의 세상 속에 뒤섞여 살아온 정인선에게 그 '섬'은 이 세상 어느 곳보다 가장 아늑했던 장소였을지 모르겠다.
"고등학생 때였어요. 엄마한테 사진 찍으러 간다고 하고 여자 친구랑 섬에 들어간 적 있어요. 그런데 배가 끊긴 것 있죠.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그 섬이 저에게는 제일 자유롭고 행복했던 것 같아요."
[사진 =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씨제스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영화 '한공주' 스틸]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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