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누아르는 파멸의 장르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전락의 세계. ‘아수라’의 악인들은 지옥에 떨어져 서로가 서로를 물어 뜯기 위해 달려든다.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지독하고 살벌한 지옥에서 광기와 탐욕의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한다.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성공과 이권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더러운 일을 처리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말기암 환자인 아내 병원비에 발목이 잡혀 돈 되는 일은 뭐든지 해낸다. 그의 약점을 파고든 검사 김차인(곽도원)과 검찰수사관 도창학(정만식)은 한도경을 협박해 박성배의 범죄를 캐려한다. 한도경의 소개로 박성배 밑으로 들어간 후배 형사 문선모(주지훈)는 보스의 총애를 받기 위해 점점 무모한 일을 벌인다.
‘아수라’의 스토리는 헐겁다. 5명의 악인을 한 자리에 모으기 위해 편의적으로 제거되는 인물들이 있는데다 민선시장, 검사, 형사가 얽혀드는 사건 전개도 매끄러운 편은 아니다. 재개발을 둘러싼 이권 다툼도 악인들의 본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활용될 뿐이다.
‘아수라’는 캐릭터로 승부한다. 탐욕에 눈이 멀어 점차 광기를 번뜩이는 인물들이 팽팽하다 못해 끊어질 듯한 긴장감으로 생성시키는 스파크가 시종 불꽃을 튀긴다. ‘동물의 왕국’의 수컷들이 우리 안에 들어가 서로 노려보고 잡아먹는 형국이라고 할까. 폭력의 강도는 근래 한국영화 중 가장 세다. 이 영화에서 자비는 없다.
누아르의 장점을 살려낸 촬영도 뛰어나다. 특히 빗속 카 체이싱은 압도적이다. 박성배와 김차인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한도경이 분노를 터트리는 대목에서 등장하는데, 속도감과 강렬함이 최상급이다. 직부감으로 찍어내는 황량한 재개발 풍경부터 좁은 복도에서 부딪히는 투샷의 비장함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의 촬영은 온통 파멸의 분위기로 가득하다.
톰 웨이츠의 ‘Way down in the hole’, 로버트 플랜트의 ‘Satan your kingdom must come down’ 등도 무겁고 어두운 극의 분위기에 한껏 어울린다.
‘달콤한 인생’의 백사장이 그러했듯, 황정민은 악역을 연기할 때 큰 바윗덩어리가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준다. 이번에도 묵직하면서도 광적인 악인을 열연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끝내 폭주하는 정우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검사 곽도원, 피곤에 지친 듯 하면서도 강한 이미지를 뿜어내는 정만식, 순수와 비열함을 오가는 주지훈의 연기 앙상블은 거의 이 영화의 모든 것이다.
이런 지옥이라면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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