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윤욱재 기자] 그의 유니폼은 '줄무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유니폼의 디자인이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그가 LG 트윈스 소속인 것은 변함이 없다.
그가 LG 유니폼을 입은 해는 바로 2002년. LG 팬들 눈 앞에 나타난 그는 프로 15년차를 맞은 올해 변함 없는 유니폼을 입고 대망의 2000안타 고지를 정복했다. 마침 그때 LG는 9연승을 달렸고 정말 기적처럼 포스트시즌에 올라갔다.
그의 유니폼이 변함 없는 것처럼 한결 같은 꾸준한 타격을 보여줬다. 내년엔 양준혁, 장성호만 달성한 9년 연속 3할 타율에 도전한다. 하지만 그가 '꾸준함의 대명사'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고민과 노력이 존재한다. 마이데일리는 창간 12주년을 맞아 잠실구장에서 LG의 프랜차이즈 스타 박용택(37)을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11월 중순에 이뤄졌다.
- 요즘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괌과 일본을 다녀왔다. 그리고 12월에는 가족여행을 다녀올 예정이다. 지금은 오전에 운동을 하고 있고 시즌 때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을 보고 있다"
- 2016시즌을 돌아본다면.
"시즌이 시작할 때부터 어린 친구들에게 기회가 가는 분위기였고 그 친구들에게 기대하는 정도만 한다면 충분히 5강 싸움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재밌는 시즌이 될 것 같았다. 그 친구들이 올라오지 못하면 힘든 시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있었다. '이 정도면 이렇게는 되겠다'하는 그림이 있었는데 딱 그 정도가 됐다"
- LG가 예상과 달리 포스트시즌까지 올라갔다.
"사실 선수들도 마음을 비우고 나서 연승 가도를 탄 것 같다. 선수들끼리는 시즌이 지나다보면 말하지 않아도 '이젠 힘들겠다'는 느낌이 있다. 서로 이야기는 안 하지만 그런 시점에서 부담 없이 하다보니 이기고, 연승하고 그러면서 나중에 올라간 것 같다. 경쟁팀이 올라오지 못해 운이 좋은 것도 있었다"
- 팀이 9연승을 하면서 올라가는 기운이 커졌다.
"개인적으로는 9연승을 하는 기간에 2000안타도 쳤고 그때 '보통 느낌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하면 끝까지 올라가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야구가 쉽지 않더라"
- 플레이오프에는 올라갔지만 끝내 한국시리즈 진출은 무산됐는데.
"내가 신인 때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한국시리즈까지 해봤고 10년을 못 하고 11년 만에 올라가지 않았나. 4년 중 3차례가 모두 플레이오프에서 끝나 조금 아쉽더라. 이젠 우리가 한 단계 올라가야 하는 시점이다. 그리고 점점 그런 팀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 올해는 2013, 2014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은데.
"3번 다 달랐던 것 같다. 2013년에는 11년 만에 진출한 것이라 감동이 너무 와닿았다. 그때는 4강 싸움이 아니라 1위 싸움을 했으니까. 아쉽기도 했지만 감격스러운 게 있었다. 2014년에는 김기태 감독님이 물러나시고 양상문 감독님이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하다보니까 올라갔다. 그때 올라가는 걸 보고 우리도 힘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올 시즌 시작할 때 꼴찌 후보라고도 했다. 우리가 아무리 못해도 꼴찌는 할 것 같지 않았다. 자존심도 상했다. 그런 평가가 인정이 될 때도 있는데 올해는 인정이 안 되더라. 두산, NC는 여러 면에서 강팀이 맞고 다른 팀들은 그렇게 크게 위협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힘든 시즌이었지만 그것도 우리의 힘이었다. 이젠 우승할 수 있는 힘이 생겨야 한다"
2000안타치고 9연승, 보통 느낌 아니었다
이젠 우승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때
후배들 다른 팀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이길 수 있어야
- 후배 선수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기량이 올라온 선수는 없다. (양석환, 유강남, 김용의, 문선재, 채은성, 이천웅 등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지금 그 친구들은 할 수 있는 몫을 하는 정도라고 본다. 그 친구들이 주역이 돼야 하는 포지션에서 그 정도로는 강팀이 될 수 없다. 다른 팀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계속 성장을 잘 해야 한다"
-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역시 2000안타가 아닐까 싶다. 언제부터 2000안타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2000안타란 기록을 떠올리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2012년이 지나고 그때 쯤부터 내가 뭔가 자신감이 생겼고 몸 관리만 잘 하면, 통산 기록에 있어서는 엄청난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임팩트는 떨어져도 꾸준히 하면 누적 기록에 있어서는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 2000안타 다음에 도전할 기록은.
"우선 내가 잘 할 수 있는건 안타를 치는 것이니까 9년 연속 3할이란 기록에 도전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지금 통산 안타 3위인데 우선 내년에는 (장)성호 형의 기록을 당연히 넘어서야 하고 후년에는 양준혁 선배의 기록도 노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받는 돈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 같다"
- 8년 연속 3할 타율이란 기록도 애착이 클 것 같다.
"요즘 세이버매트릭스도 있고 숫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타율에 대해서 평가가 많이 절하되고 있다. 사람들이 숫자로 말하는 것도 있지만 야구쟁이들은 타자라면 우선 3할을 쳐야한다는 생각이 있다. 최정 같은 친구도 40홈런을 치고 공동 1위를 했지만 3할을 치지 못한 걸 아쉬워 한다. 우리끼리 느낄 때는 3할 1푼과 3할은 느낌이 별 차이가 없지만 3할과 2할 9푼은 굉장히 아쉬운 게 있다. 8년 동안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잘 이겨내고 버틴 것 같다.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건 30대에 이 기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 양준혁, 장성호와 달리 30대에 8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잘 하고 있는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개인적으로는 나이에 대한 의식은 전혀 없다. 물론 귀에는 계속 들린다. 한살 한살 먹을 수록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팀에 있었던 유망주들이 다른 팀에 가서 잘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탈LG 효과'라고 하지 않나. 공통적인 인터뷰 내용 중 하나가 'LG에 있을 때는 한 타석을 못 치면 2군에 내려가야 하는 두려움이 컸는데 여기서는 못 쳐도 다음 타석이 있다는 생각에 좋아진 것 같다'고 하더라. 만약 내 옆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으면 굉장히 혼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프로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것이다. 온실 속의 화초라고 봐야 한다. 야구를 하다보면 부담 있는 상황이 얼마나 많은데 절대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길게 성공할 수 없다.
고참이어도 부담이 있는 건 마찬가지다. 한 일주일만 못 쳐도 첫 번째로 나오는 이야기가 '노쇠화'와 '이젠 끝났다'는 말이다. 아무리 최전성기의 선수라도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는 법인데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으니 그런 것에 대한 부담은 있다. 조금이라도 기미가 보이면 내가 체크하고 신경 써야 한다. 그리고 리빌딩이란 팀의 방향성이 잡혀 있을 때는 더더욱 냉정한 프로가 돼야 한다. 내가 1~2번 기회 놓치다보면 많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30대에 8년 연속 3할 자부심
타격폼 생각에 자다가도 일어난 적도
내년엔 '우승택' 만들었으면
- 바뀐 타격폼으로 첫 풀타임 시즌을 치렀다. 얼마나 만족했나.
"아주 만족스럽지 않았다. 0점이다. 작년 후반기에 느낌이 와서 '이렇게 치면 정말 아쉽지 않은 시즌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홈런도 20개가 넘어가고 타점 100개 이상 하면서 슬럼프 없는 시즌이 될줄 알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더라. 내가 머릿 속에 그렸던 그림들을 생각했을 때 내 만족도는 10점도 못 줄 것 같다.
원래 공 빠른 왼손투수가 몸쪽으로 던질 때 반응이 괜찮았는데 그게 점점 힘들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배트 스피드가 무뎌서가 아니다. 오른손투수는 아무리 빠른 볼을 던져도 괜찮았으니까. 아마 작년 시즌 끝날 때 헤드샷을 맞아서 나도 모르게 빠른 볼을 던지는 왼손투수들에게 신경을 쓴 것 같다. 왼손투수가 나오면 나에게 몸쪽 공을 계속 던진다. 그럴 때 어느 순간 두 다리가 너무 벌어져 있었다. 너무 오픈되서 움직임이 커졌다"
- 타격폼을 또 바꿀 생각이 있나.
"그렇다. 이제는 완전히 스퀘어 스탠스(양발을 타석의 세로 줄과 평행으로 둔 자세)로 가려고 한다.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좀 더 괜찮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타격폼 수정은 순간적인 계획인가, 아니면 예전부터 생각한 것인가.
"정말 순간적으로 생각날 때도 있다. 자고 있다가도 뭔가 그림이 그려저서 일어난 적도 있었다. 우리 리그에서 잘 치는 선수들, 그리고 못 쳤다가 잘 치는 선수들이 어떻게 치는지 찾아보기도 한다. 여러 친구들을 보면서 나에게 맞는 걸 찾으려고 한다. 순간 순간 메모한 것도 있고 기사 스크랩을 한 것을 한번씩 훑어보기도 한다. 그런 게 나의 관심인 것 같다"
- 타격에 눈을 뜬 시점은 2009년으로 보면 될까.
"눈을 떴다기 보다는, 그 전까지는 눈을 감고 있었고 앞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김용달 코치님은 나한테는 둘도 없는 스승이다. 정말 많이 부딪혔고, 대화했고, 연습했다"
- 김용달 코치 뿐 아니라 많은 지도자들을 만났다. 지도자가 자주 바뀌는 게 선수 입장에서도 어려운 부분이었을텐데.
"나에게 정말 고마운 분들인데 그 분들이 떠나는 걸 보는 건 참 슬픈 일이다. 가르침을 받는 입장에서도 한 사람한테 지속적인 가르침 받아야 내 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아주 바람직하지는 않은 현상이다.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캠프부터 인간 관계를 쌓고 믿음이 생기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 2009년 당시 타격왕 타이틀 말고도 얻은 게 있다면.
"너무 많은 것을 얻었다. 그 전까지 야구선수였나 싶을 정도로. 갈비뼈가 부러져 4월 말에 올라와서 치는데 9~10경기 동안 멀티히트를 치는 내 자신이 너무 신기하더라. 내가 치는 것 같지 않았으니까. 한달 두달 지나니까 자신감도 생겼다. 팀만 포스트시즌에 올라갔으면 베스트였다. 방망이는 정말 신나게 친 것 같다. '이제 시작이야. 잘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다음 해(2010년)에 석 달 동안 1할을 치니까 환장하겠더라. 정말 별 짓을 다해봤다. 경기 끝나고 2시간씩 뛰기도 하고, 정말 돌아버리는줄 알았다. 그 해에 여러가지를 느꼈다"
- 다소 이르지만 내년 시즌 전망을 한다면.
"올해 선수들이 좋은 경험들을 많이 했다.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정말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선수들이 돼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숫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생산성이 높은 타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무리 그래도 3할을 치지 못하면서 OPS .950을 기록하는 타자는 되기 싫다"
- 이제 정말 우승만 남은 것 같다.
"다치지 않고 딱 우승 두 번만 하면 시원하게 옷 벗을 수 있을 것 같은데…"
- '택 시리즈'가 많은데 내년에 갖고 싶은 새로운 택은.
"내년에는 '우승택'이 괜찮겠다. '눈물택'도 한번 나와야 할 거고"
-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주 아주 고맙죠. 정말 사랑을 많이 주신다. 그렇게까지 안 주셔도 되는데 너무 많이 주신다.(웃음) 예전에 가끔 힘들 때도 있었지만 다 나에 대한 관심이고 사랑이더라. 팬들의 열기나 야구장 분위기 등 여러가지를 보면 내가 꿈꿨던 LG는 맞는 것 같다. 한 가지 다른 건 항상 우승하는 팀이었다는 것이다. 계속 도전은 해보겠다"
[LG 박용택이 마이데일리와 창간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윤욱재 기자 wj3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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