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때로는 섬뜩하게 악랄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또 어쩔 땐 한없이 선한 인상을 풍겨 관객들을 놀라게 만든다. 선(善)과 악(惡)이 공존하는 두 얼굴을 가진 것이야 말로 배우로서 최고의 무기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많은 연기자들이 바라는 배우상이기도 하다. 한계 없는 연기 스펙트럼을 보유한 연기 장인들, 누가 있을까.
◆ "조진웅부터 유해진·곽도원까지"…악역 전문 배우 꼬리표 떼고 '훨훨'
조진웅, 유해진, 김윤석, 곽도원, 김성균 등은 현재 '아재파탈'의 대표주자로 꼽히며 다양한 작품에서 팔색조 매력을 발산하고 있지만, 한때는 '악역 전문 배우'로 통했다. 범접불가 포스와 남다른 카리스마를 소유, 악역에 최적화된 배우들이었다. 다수의 작품에서 조·단역으로 분량을 압도하는 악인을 열연하면서 미친 존재감을 뿜어내 당당히 주연배우로 발돋움하게 됐다. 새 캐릭터를 만난 이들의 모습은 낯설지가 않다. 전작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작품에 완벽히 녹아들어 있다.
조진웅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단역인 야생마 패거리 중 한 명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일진에 이어 '야수' '비열한 거리'에선 조폭으로 등장했다. 이후 2011년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에서 2인자 콤플렉스를 지닌 두목 김판호 역할을 맡아 관객들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끝까지 간다'에서 이선균의 숨통을 조이는 악랄한 경찰로 악역 캐릭터에 한 획을 그은 뒤 천만 영화 '암살'에서 독립운동가, 드라마 '시그널'에선 정의로운 형사로 변신에 성공했다.
조진웅의 행보는 예측불가였다. 그는 또 다시 '사냥'에서 1인 2역 악역을, '아가씨'에서 음란서적 수집가인 변태적 인물 코우즈키를 맡아 관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후 선보일 차기작에선 역시나 색다른 캐릭터에 도전한다. 공포영화 '해빙'에서 의사를, 백범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대장 김창수'에선 독립운동가를, '보안관'에선 성공한 사업가로 열연을 펼칠 예정이다.
곽도원과 김성균 역시 '범죄와의 전쟁' 속 악역으로 영화팬들에게 이름 세 글자를 각인시켰다. 각각 악질 속물 검사 조범석, 비열한 미소가 인상적인 조직 보스 하정우의 오른팔 박창우 역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이후 다수의 작품에서 악역을 도맡아오던 곽도원과 김성균은 드라마 '유령', '응답하라 1994'로 감춰졌던 순박한 매력을 드러내면서 스크린에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곽도원은 '곡성'에서 절절한 부성애 연기로 생애 첫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으며 김성균은 악역이 아닌 선한 역할로 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에서 첫 주연 신고식을 치른 바 있다.
유해진은 '왕의남자'의 육갑, '타짜'의 고광렬, '전우치'의 초랭이 캐릭터를 맡아 감초 역할을 해내며 웃음을 안기다가도 '부당거래'에서 사채업자로, '그놈이다'에선 미스터리한 남성으로, '베테랑'에선 엘리트 악역으로 두 얼굴을 드러냈다. 최근엔 '럭키'에서 킬러와 무명배우 캐릭터를 오가며 국민 호감, 원톱 배우로 우뚝 섰다. 700만 관객을 육박하는 스코어를 기록하며 흥행성과 연기력을 모두 갖춘 스타임을 증명했다.
김윤석은 '타짜'에서 전설의 도박 귀재 아귀 역할로 등장 인물들을 넘어 관객들마저 두려움에 떨게 했다. 절대 악인으로 고니(조승우)에 맞서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짧은 등장을 무색하게 하는 존재감으로 영화의 흥행을 이끄는데 한몫했다. 그의 광기 어린 열연은 '전우치', '황해',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해무'까지 이어졌다. '극비수사'의 형사 공길 역을 기점으로 "당분간 정의의 편에 설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악역은 잠시 휴업 상태다. 새 옷을 입었음에도 더욱 빛을 발하는 김윤석이다. '검은사제들'에선 악령에 씐 소녀를 구하기 위해 구마 예식을 진행하는 김신부 역할을 완벽 소화하며, 한국에선 생소한 오컬트 장르로 관객들의 마음을 정조준했다. 이러니 차기작인 판타지 영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속 변신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 원톱 배우들의 '무서운 외출'
황정민, 이병헌, 유아인, 이정재, 하정우부터 김혜수, 김민희 등은 티켓 파워를 지닌 충무로의 대표적 원톱 배우들이다. 톱스타의 자리를 확고히 한 상황에선 악역으로 눈을 돌리기가 쉽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행보는 거침없다. 기껏 쌓아온 청춘스타, 멜로킹·퀸, 혹은 CF 이미지에 타격이 입을 것을 우려해 연기 변신을 두려워하는 스타들도 적지 않지만 이들은 이를 비웃 듯 편식 없이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다.
이들 중 특히나 황정민의 필모그래피가 흥미롭다. 시골 총각의 순애보를 그린 '너는 내 운명'으로 오랜 무명생활을 끝내면서 불과 다섯 신만 으로 역대급 악역을 탄생시킨 '달콤한 인생'의 백 사장은 당분간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사생결단'에서 '민중의 곰팡이' 형사로 활약했다. 이후로도 멜로 '행복' '남자가 사랑할 때', 코미디 '댄싱퀸' '검사외전', 드라마 '국제시장' '히말라야', 범죄액션누아르 '부당거래' '아수라', 미스터리 스릴러 '곡성'까지 넘나들며 그 어려운 걸 다 해냈다.
특히 천만 영화 '베테랑'에선 열혈 형사를 맡아 권력을 남용하는 갑(甲) 조태오 역의 유아인을 응징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악인 역할에 일가견 있는 황정민이 선한 캐릭터를, 그동안 단 한 번도 도전해본 적 없던 청춘스타 유아인이 첫 악역으로 호흡을 맞춘 것. 그럼에도 두 사람의 투샷은 너무나 어색함이 없었다. 유아인은 특유의 개성으로 기존과 다른 악역을 만들며 배우로서 진면목을 발휘했다.
이병헌, 하정우, 이정재도 야누스적 매력을 소유한 배우다. 다수의 작품에서 선인으로 여심을 홀리는 이들이지만 불현 듯 악인의 얼굴을 내밀며 반전을 선사한다. 이병헌은 지난 2008년 데뷔 17년 만에 분한 첫 악역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박창이에 완벽 빙의해 믿고 보는 배우임을 새삼 증명했다. 이 뒤 8년 만에 '마스터'에서 악역 변신을 앞두고 있다. 희대의 사기꾼 진회장 캐릭터를 맡아 예비 관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하정우는 '추격자' '황해' '아가씨'에서, 이정재는 '도둑들' '관상' '암살'에서 극악무도하고 비열한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다. 오랜만에 악역 도전을 할 때마다 매번 업그레이드된 열연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이들이다.
김혜수와 김민희는 남배우들이 장악한 충무로에서 팔색조 연기력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훔쳤다. 악녀까지 시도하며 여배우 기근 현상을 해소시켜주는 단비 같은 스타들이다. 먼저 김혜수는 지난 2014년 '차이나타운'에서 조직의 대모 엄마 역할로 파격 연기 변신에 나선 바 있다. 비정한 세계 차이나타운에서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엄마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여성성을 과감히 버렸다. 하얗게 센 푸석푸석한 헤어스타일, 주근깨가 만연한 얼굴, 배와 엉덩이에 보형물을 넣어 덩치를 키운 모습까지 만들어내며 절대 권력자를 제대로 표현해냈다. 김민희는 2012년 '화차' 리플리증후군에 걸린 잔혹한 악녀 캐릭터로 분해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미스터리 여성을 독보적 아우라로 소화, 잠재된 연기력을 폭발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사진 = 마이데일리 DB, 영화 '범죄와의 전쟁' '곡성' '우리는 형제입니다' '베테랑' '럭키' '황해' '극비수사' '마스터' '암살' '추격자' '차이나타운' '화차', CJ E&M ]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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