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켄 로치 감독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자존심을 훼손하는 관료적 복지제도에 위력적인 펀치를 날렸다. 사회에서 소외된 자의 분노, 울분을 담은 펀치는 워낙 강렬해서 마음의 파동이 쉬이 가라 앉지 않는다. 오히려 그 파동은 영화가 끝난 뒤에 더욱 출렁인다.
솜씨좋은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는 심장병이 악화되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의사는 당분간 일을 하지 말라고 하고, 고용센터는 구직활동을 해야 실업급여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질병수당신청이 기각 당하자 항고를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관료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실의에 빠져 지내다 우연히 만난 싱글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와 어린 남매를 만난 그는 없는 살림 속에서도 온정을 손길을 내민다.
올해 80세의 켄 로치 감독은 지난 50여년간 실업자, 노동자, 이민자 등 소외계층의 삶을 대변하며 지배계급과 최전선에서 싸웠다. 언제나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외치는 켄 로치는 이 영화에서 재취업의 기회마저 박탈하는 사회 시스템에 균열을 낸다.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을만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이리저리 꼬아놓은 복지체계를 시종 시니컬한 블랙코미디로 다루는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숨이 턱턱 막힌다. 1시간 40분을 기다려 겨우 연결된 전화에선 엉뚱한 답변이 흘러 나오고, 관료들은 노동자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위압적인 자세로 윽박지르기 일쑤다.
민영화가 드리운 어두운 그늘 속에서도 켄 로치는 인간적인 위엄과 존중으로 서로를 보듬는 약자들의 연대를 따뜻하게 그린다. 케이티의 낡은 집을 고치고 그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는 블레이크의 손길부터 홀로 외롭게 투쟁하는 거리의 블레이크를 응원하는 다수의 응원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는 국가의 냉기와 민중의 온기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고용청 여직원의 자발적 도움, 옛 직장 동료의 진실한 위로,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옆집 청년의 끈끈한 의리, 케이티 딸의 감사의 인사 등 가난한 이웃들이 펼치는 선의의 네트워크를 풍부하게 담아냄으로써 이 사회엔 여전히 희망이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자전도 도둑’의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네오리얼리즘을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철저한 취재로 신자유주의 정책의 직견탄을 맞은 영국 뉴캐슬 민중의 삶을 온전하게 그려낸 점도 돋보인다. 허구의 인물이지만, 다니엘 블레이크와 케이티는 마치 실존인물인 듯 생동감으로 가득하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출신의 데이브 존스는 넉넉한 인심과 유머 그리고 포기를 모르는 끈기를 지닌 다니엘 블레이크를 최적으로 연기했다. 헤일리 스콰이어 역시 벼랑 끝에 내몰린 가난한 싱글맘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언제나 아이러니를 즐겨 다뤘던 켄 로치는 라스트에 이르러 예기치 않은 반전으로 잊히지 않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다니엘 블레이크의 항고이유서는 영혼을 울리는 강력한 시민선언이다.
[사진 제공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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