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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영화 '브이아이피'(V.I.P.), '신세계'는 없지만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브이아이피'는 '신세계'(468만)로 한국 누아르 영화 계보에 한 획을 그은 박훈정 감독의 신작이다. 4년 만에 다시 한번 범죄 누아르물을 선보였다.
이번 영화는 '기획 귀순자'에서 출발했다. 국내 영화 사상 최초로 다룬 소재다. 국정원과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건너온 VIP 김광일(이종석)이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신세계'와는 결을 달리 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를 기대했던 영화팬들에겐 아쉬움이 들 수도. 김광일을 둘러싸고 은폐하려는 국정원 요원 박재혁(장동건), 복수하려는 보안성 요원 리대범(박희순), 범인임을 직감하고 반드시 잡으려는 경찰 채이도(김명민) 등이 등장하지만 남자들의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 피어오르는 뜨거운 에피소드는 없다.
박훈정 감독의 뚝심 있는 연출이 돋보이는 '브이아이피'다. 과감하게 색다른 누아르에 도전했다. 무엇보다 조폭은 등장하지 않는다. 기존 누아르가 주로 경찰, 조직폭력배 두 집단으로 한정해 각 인물에 집중했다면 '브이아이피'는 그 판을 국가기관으로 확장, 스토리에 초점을 맞췄다. 주연 장동건은 "'브이아이피'는 사건이 주인공"이라며 "배우들이 뭔가를 더하기보다는 뺄셈을 더 중요시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브이아이피' 속 캐릭터들은 개개인이 아닌 국가기관을 상징하기에 감정이 철저하게 배제됐다. 이해관계에 따른 움직임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그러면서 범죄 영화의 공식도 뒤엎는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의 쓰임새가 다르다. 어차피 범인은 김광일임을 드러내며 범인 찾기·검거 등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 않는다.
김광일이라는 괴물이 눈앞에 있지만 그가 무소불위 권력자일 경우엔 상황이 달라진다. CIA, 국정원, 경찰, 검찰 등 사회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고구마 같은 상황을 깊숙이 파고든다. 프롤로그, 용의자, 공방, 북에서 온 귀빈 VIP, 에필로그 총 다섯 가지 챕터로 나뉘어 사건 일지를 써 내려가듯 보여준다.
그러나 문제는 스토리가 주인공인 것치고는 묵직한 메시지가 없다. N차 관람을 이끌은 바 있는 박훈정 감독이기에 아쉬움을 자아낸다. 12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이야기가 흐르지만 김명민의 줄담배 연기, 첫 악역 이종석의 말간 웃음, 잔인한 살인 장면 등 정도만 기억에 남는다. 또한 김광일을 설명하는 살인신은 이야기에 녹여내지 못하고 거부감을 들게 한다.
챕터를 5개로 줄이면서 캐릭터들의 개성을 느끼기 어렵다. 애초 네 인물의 이야기를 포함 총 9개의 챕터로 구성돼 있었다. 쫄깃하게 함축되지 않으며 싹둑 잘라낸 듯 매끄럽지 않은 흐름이다. 충무로 VIP들이 한자리에 모인 시너지 효과도 없다. 장동건, 김명민, 이종석, 박희순 등은 중구난방으로 각자의 역할에만 충실할 뿐이다.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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