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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화양연화’(2000)의 라스트신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차우(양조위)는 수리첸(장만옥)과 이루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을 앙코르와트 사원의 무수한 구멍 중 하나에 영원히 봉인해놓고 떠난다. 각자 가정이 있었던 차우와 수리챈은 배우자의 외도로 쓸쓸하게 남겨졌다. 이들은 좁은 아파트 복도에서 끝없이 마주치며 서로에게 끌린다. 그러나 둘의 몸은 단 한번도 서로 닿지 않는다. 애틋해서 더욱 그리운 사랑을 영원의 시간 속에 묻고 싶은 감정은 그 자체로 화양연화(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 속에 스며든다. 어떤 사랑은 분위기로 모든 것이 표현된다. 이 영화의 영어제목이 ‘인 더 무드 포 러브(In the Mood for Love)’인 까닭이다.
트레이스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1999) 마지막 대목을 읽고 ‘화양연화’가 떠올랐다. 하녀 그리트는 천재화가 베르메르와 사랑과 예술의 교감을 나눴다. 베르메르는 그리트의 귀에 부인의 진주 귀걸이를 걸어주고 걸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남겼다. 부인의 질투심은 극에 달했고, 그리트는 쫓겨났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베르메르가 세상을 떠난 뒤 부인이 찾아와 진주 귀걸이를 건넨다. 그리트는 진주 귀걸이를 판 돈을 손에 쥐고 이렇게 다짐한다.
“피터(남편)와 아이들이 볼 수 없는 곳에 숨겨두리라. 오직 나만이 아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그런 장소에. 나는 이 다섯 개의 동전을 결코 쓰지 못할 것이다.”
그리트 역시 베르메르와의 사랑을 봉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봉인한 사랑은 영원하니까.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 피터 웨버 감독의 영화 라스트신은, 비록 원작과는 다르지만, 진주 귀걸이를 손에 꼭 쥔 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리트(스칼렛 요한슨)를 매력적으로 담아내 원작의 감흥과 여운을 살렸다. 그리트는 베르메르(콜린 퍼스)를 만나 구름에도 다양한 색깔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화실에 햇빛이 더 잘 들어오도록 창을 닦고, 물감을 섞으며 조금씩 그림에 눈을 뜬다.
베르메르가 ‘물주전자를 든 여인’을 그릴 때, 그리트가 여인의 왼쪽에 있는 의자를 치우는 장면은 그가 예술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을 은연 중에 드러낸다. 베르메르는 그리트의 뜻을 존중해 그림에서 의자를 지웠다. 이들은 그렇게 교감을 나눴다.
그리트는 베르메르가 자신을 모델로 그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 “저를 꿰뚫어 보셨군요”라고 말한다. 서로 몸이 닿지 않았던 차우와 수리첸처럼 이들도 일정한 거리를 뒀지만, 끌리는 마음까지 막을 수 없었다. 사랑과 예술은 그림 속에 영원히 남았다. ‘인 더 무드 포 아트(In the Mood for Art)’의 순간이다.
[사진 제공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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