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100분간 쉴 틈이 없다. 숨 고를 틈도 없이 그 어떤 것도 아닌 황정민이 몰아친다.
배우 황정민이 연극 '리차드3세'를 통해 꼭꼭 담아둔 내공을 터뜨렸다. 연극 '리차드3세'는 곱추로 태어났지만 뛰어난 권모술수와 총명한 식견을 지녔던 요크가 비운의 마지막 왕 '리차드3세'의 권력과 욕망을 향한 광기 어린 폭주를 그린 작품이다.
'리차드3세'는 캐스팅 공개부터 화제를 모았다. 황정민을 중심으로 정웅인, 김여진 등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한 것은 물론 이들이 원캐스트로 관객들을 만나기 때문. 한 역할에 더블을 넘어 트리플, 그보다 더 많은 캐스팅이 익숙해진 공연계에서 인지도 면으로나 연기력 면으로 존재감이 있는 배우들의 원캐스트는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펼치는 셰익스피어의 고전이라는 것도 관심 가는 부분. 4대 비극('햄릿',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에 포함되지 않아 허술하다는 평도 있지만 그래서 더 연출과 배우의 힘이 필요하기에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온다.
'리차드3세'는 한아름 작가의 각색과 이를 표현하는 연출의 힘이 돋보인다. 특히 서재형 연출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고전의 강약 조절에 신경 썼다. 일반 관객들에게 낯설 수도 있는 고전의 클래식함에 현대적인 요소를 과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넣었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으로 인한 악행과 복수, 살인 등 파국으로 치닫는 무거운 소재들이 휘몰아치지만 서재형 연출의 노련한 강약조절은 아이러니하게도 관객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요술을 부린다. 리차드 3세를 희대의 악인을 동시에 비운의 희생양으로 보일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이같은 연출 때문이다.
연출과 함께 '리차드3세' 몰입도를 높이는 것은 단연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특히 황정민은 10년만에 연극에 영혼까지 갈아 넣은 듯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리차드 3세로 분한 그는 등장부터 남다르다. 그의 인물 몰입도는 외적인 부분부터 시작된다. 뒤틀려진 몸을 100분 내내 유지하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다. 배우의 감정적인 연기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움직임이 왜 중요한지 스스로 입증한다.
황정민의 연기가 특히 돋보이는 것은 이런 외적인 부분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동시에 요동치는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는데 있다. 가히 이성과 감성을 모두 쥐락펴락 한다. 뒤틀어진 몸 만큼이나 뒤틀어져버린 욕망이 리차드 3세의 피 튀기는 악행을 부추긴다. 극 말미 나약한 양심에 흔들리는 부분에서 특히 그의 휘몰아치는 감정이 극대화 된다. 방대한 분량과 그만큼의 대사를 소화하는 황정민의 연기가 작품의 몰입도를 높인다. 커튼콜에서 리차드3세로 걸어나오다 배우 황정민으로 분하는 순간이 관전 포인트가 될 정도다.
황정민 뿐만 아니라 원캐스트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는 고전의 힘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에드워드4세와 스탠리 경을 연기하는 정웅인은 1인 2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엘리자베스 왕비 역 김여진 역시 권력 다툼으로 인해 끔찍하게 얼룩져버린 현실 앞에 무너지는 절절한 연기가 돋보인다. 요크가와 리차드 3세에 의해 가문이 몰락 당하고 미치광이로 전락한 마가렛 왕비 역 정은혜는 소리꾼인 만큼 사무치는 한을 제대로 표현한다.
영리한 심복 버킹엄 역 김동현, 편과 시아버지를 죽이고 가문을 몰락시킨 원수 리차드3세를 증오하지만 음모와 유혹, 불신에 사로잡혀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 미망인 앤 역 박지연, 리차드3세의 탐욕을 충족시키고 악행을 도와 권력암투의 피바람을 증폭시키는 시장, 리버스, 집행인 역 등 멀티 역 임기홍을 비롯 전 배우의 안정적인 연기력이 작품의 질을 높인다.
적절한 영상 삽입과 조명 역시 '리차드 3세'만의 분위기를 완성시킨다. 특히 영상은 비극으로 치닫는 결정적 이유인 살인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다소 어색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새로운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고전의 클래식함을 유지하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소들을 적절하게 버무린 만큼 '리차드3세'의 100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연극 '리차드3세'. 공연시간 100분. 3월 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사진 = 샘컴퍼니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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