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소녀는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을까. 답답한 새장을 박차고 너른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꿈은 모든 소녀의 마음 속에서 파닥거린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레이디 버드’는 17살 여고생 크리스틴의 꿈, 사랑, 우정을 유쾌하면서도 가슴 찡하게 담아낸 보석같은 성장영화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그레타 거윅 감독이 노아 바움백 감독과 공동 각본을 쓰고 출연했던 ‘프란시스 하’의 프리퀄처럼 보인다. ‘프란시스 하’(2012)의 27살 프란시스 할러데이(그레타 거윅)도 ‘레이디 버드’처럼 고향 새크라멘토를 떠나 뉴요커가 됐다. 그러니까 ‘레이비 버드’는 10년전으로 돌아가 한 소녀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사랑을 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다.
2002년 크리스틴은 따분한 도시 새크라멘토를 하루 빨리 떠나 뉴요커가 되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가톨릭 고교에 갇혀 사는 신세다. 스스로 ‘레이디 버드’라고 이름을 지은 크리스틴은 항상 잔소리를 하는 엄마(로리 멧갈프)와 갈등이 깊어질수록 탈출의 욕구를 불태운다. 대니 오닐(루카스 헤지스)에 이어 카일(티모시 샬라메)과 사랑의 감정을 나누지만 늘 꿈꾸던 사랑과 거리가 멀었다. 뉴욕 소재 대학을 가기엔 성적이 아슬아슬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버지가 직장을 잃으면서 등록금 조달에도 신경써야하는 처지에 빠진다.
이 영화엔 첫사랑의 풋풋한 설렘, 엄마와의 격렬한 애증, 친구와의 끈끈한 우정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고 싶은 열망과 떠난 후의 향수가 공존하는 아이러니가 숨을 쉰다.
극 초반부 대학 진학 문제를 놓고 엄마와 싸우던 크리스틴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다. 한 손에 깁스를 한 채 연극 연습을 하고, 첫사랑 데니 오닐을 만났다가 헤어지는 과정이 끝날 즈음에 깁스를 푼다. 카일과 새로운 사랑에 빠지고, 그 과정에서 소원했던 절친 줄리(비니 펠드스타인)와 다시 우정을 회복하는 에피소드가 마무리될 즈음, 한 계절이 지난다.
그렇다. ‘레이디 버드’는 17살 소녀의 성장기를 시간의 흐름 속에 리드미컬하게 풀어낸다. 1년의 시간 속에 펼쳐지는 좌충우돌과 시행착오, 그리고 불쑥 찾아오는 애틋한 상실의 감정을 유머러스한 에피스드와 함께 담아냈다.
이 영화는 10대 시절 바라고 꿈꿨던 모든 것들이, 비록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성장의 열매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시종 흥미롭게 보여준다. 엄마와의 싸움은 사랑의 깨달음으로, 첫사랑의 실패는 추억의 여운으로, 친구와의 다툼은 더 진한 우정으로 피어난다.
시얼샤 로넌은 전작 ‘브루클린’에서 알 수 있듯, 어느 한 공간을 떠나면서 느끼는 상실감을 탁월하게 연기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쓰리 빌보드’의 루카스 헤지스는 따뜻함으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모시 샬라메는 차가움으로 각각의 매력을 발산한다. 연극배우 출신의 로리 멧갈프의 연기도 뛰어나다. 딸을 사랑하면서도 진심을 드러내지 못하는 엄마의 속 깊은 사랑을 깊은 울림으로 전한다.
그냥 예쁘다고 말해주길 원하는 딸과 조금 더 잘 되기를 바라는 엄마와의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 위에 소녀는 오늘도 어디선가 독립의 꿈을 키우고 있겠지. 막상 떨어지면 사무치는 그리움에 몸을 떨지도 모르면서.
소녀는 그렇게 자란다.
[사진 제공 = UPI]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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