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수염을 붙이고, 고종이 됐다. 낯설고 걱정했던 한국 역사극이지만 의외로 찰떡이었다. 뮤지컬배우 손준호는 그렇게 도전에 성공했고, 스펙트럼을 넓혔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조선 제 26대 왕 고종의 왕비이자 대한제국의 첫 황후였던 명성황후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대형 창작 뮤지컬로, 19세기 말 격변의 시대에 허약한 국권을 지키기 위해 일본에 정면으로 맞서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명성황후의 삶은 그린 작품. 극중 손준호는 혼란의 시기 속에서 왕실을 지키기 위해 고뇌한 왕이자 명성황후의 남편인 고종 역을 맡았다.
손준호는 그간 주로 서양극 위주로 활동했다. 성악을 전공해 서양 음악을 더 배웠고, 무대에서 맡는 역할도 서양 귀족 위주였다. 그러다보니 서양극과 서양 캐릭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명성황후' 속 고종 역은 걱정이 앞섰다.
"처음에 '잘 어울릴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고 운을 뗀 손준호는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다 하셨던건데 내가 괜히 23년이라는 역사에 오점이 남기는 사람이 되는건 아닐까 걱정이 많았는데 걱정과는 반대로 잘 녹아들어서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서양극과 캐릭터에 익숙했고 그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는게 익숙했는데 '명성황후'는 우리 나라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실존 인물이 있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며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이고 매체를 통해 익숙한 게 있기 때문에 어떻게 어색하지 않게 표현해내고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됐고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명성황후'는 역사적으로 많이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잖아요. 그래서 더 대본만 보고 찾으려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유악했던 왕이라 얘기하고 했는데 전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려고 했어요. 아무래도 극중 아내인 명성황후 역 김소현 씨가 제 아내이다 보니 극중 부부를 제 상황에 있는 현실로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만약 내가 좀 부족하거나 어느 한 분야에 있어 아내가 좀 더 알고 조언해준다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해봤는데 내가 약해서 소현 씨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나의 약한 부분을 소현 씨에게 조언 받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캐릭터 미화에 대한 것도 더 세심하게 생각했다. 그는 "캐릭터 미화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더 작품에 집중했다. 역사는 누가 해석하냐에 따라 너무 다르지 않나"라며 "역사는 그런데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명성황후와 고종은 뭘까 더 많이 생각했다. 다듬어지고 연출된 대본에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더 집중했다"고 말했다.
"유약보다 경청인 것 같아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표현의 차이였다고 생각해요. 유약해서 그렇게 행동했다기보다 나라와 백성을 사랑해서 그렇게 한 거죠. 정답을 알면 '그래. 이거 해' 하겠지만 그렇지도 않고, 또 모든 사람이 다 좋다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분명히 좋은 사람이 있고 희생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죠. 어떻게 보면 유약한게 맞을 수도 있는데 좋은 방향으로 하기 위해 경청했다고 생각해요."
실제 아내 김소현과 극중에서 부부로 연기하다 보니 도움이 많이 됐다. 특히 김소현은 지난 20주년에 이어 이번 23주년에 또 참여하게 돼 손준호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는 "아내와 함께 하는 것에 대해 걱정은 전혀 안 했다. 너무 좋았다"고 강조했다. "아내랑 하면 너무 좋은게 설명을 굳이 안 해도 된다. 회식 같은 것도 굳이 힘들게 애쓰며 설득시킬 필요도 없고"라며 웃었다.
"아내와 함께 하는 게 진짜 좋아요. 최고죠. 너무 너무. 벌써 저희도 같이 한 작품도 몇 개 있고 같이 콘서트도 많이 하고 전공도 같아서 이야기 할 게 많거든요. 소리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연기적으로도 서로 도움을 줘요. 같이 한 시간들 속에서 어느 정도 서로 다듬어졌죠. 그래서 같이 일하는데 있어서는 너무 좋아요. 연습할 때도 완급 조절이 정말 좋고요."
이번 '명성황후' 공연에서는 어떨까. 그는 "감정을 쌓아가는데 있어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게 편해졌다. 사실 신들 안에서 바라보는 것은 쉽지만 전체를 보는 게 어려워 밸런스가 안 ?S을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서 서로 조율해 나가니 극 전체에 있어 완급 조절하는게 편해졌다"고 털어놨다.
"이번에 (김)소현 씨가 해준 조언은 딱 두개예요. 제스처나 행동에 있어 뭔가를 너무 하려 하지 말라는 것과 캐릭터적으로도 새로운 걸 하려 하지 말라는 거였죠. 왕의 모습 자체로 중요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또 23년의 역사가 있고 다듬고 다듬어 만들어진 작품이니 새로운 것들을 하는 것보단 최대한 작품에 녹아드는 게 좋다고 했어요. 그 두가지 조언이 엄청난 도움이 됐죠."
23년간 이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얻는 것도 상당했다. 나름 공부를 많이 해도 모자란 게 작품에 대한 해석인데 '명성황후'는 23년간 이어져온 작품이다 보니 해석의 폭이 넓었다. 디테일하게 발견해내는 게 자연스러웠고, 감정의 변화를 정리해 나가는 것 역시 수월했다. '이게 작품의 힘이구나' 감탄했다.
"'내가 한국적인 걸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명성황후'는 그런 제게 용기를 줬어요. 프로필 사진 촬영 할 때 수염을 붙이고 거울을 보니 아니, 그냥 고종이더라고요?(웃음) 저 혼자 연구하고 할 때는 몰랐는데 확실히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들이 잘 표현 되더라고요. 일단 비주얼에서 진짜 어색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나 자신있게 해도 되겠구나' 자신감이 생겼죠. 웬만하면 제가 자신감 넘칠 때 '자제 좀 하라'고 하는 아내도 깜짝 놀라 '흥~' 하고 갔다니까요. 그 '흥'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죠. 하하"
손준호는 '명성황후'를 통해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의 폭을 넓혔다. 그의 넓은 스펙트럼을 입증한 셈이다. "누가 뭐라 하고 걱정해도 결국 무대에서 짊어지고 깨야 하는 건 나이기 때문에 스스로 걱정을 덜어내는 게 중요한데 '명성황후'를 통해 걱정을 덜어냈다. 주위 반응도 아주 핫하다. 다들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더라. 동료 배우들이 칭찬해주니 너무 좋았다"며 웃엇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있어서 두려움이 훨씬 더 줄어들었어요. 배우는 늘 두드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야가 됐건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는 도전해야 하죠. 앞으로도 열심히 두드리고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 할 생각이에요. 내가 열심히 찾아 다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질테니 열심히 노력해야죠. 전 살아있는 스펀지기 때문에 잘 할 자신 있어요."
뮤지컬 '명성황후'. 공연시간 150분. 오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뮤지컬배우 손준호.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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