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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가수 진해성은 혜성 같이 나타난 트로트계 신예다. 1990년생 스물여덟로 기라성 같은 선배들에 비하면 풋풋한 신인이지만, 어느새 노래 '사랑 반 눈물 반'으로 전국 트로트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스타가 됐다. 행사 섭외도 쏟아지고 있다.
마냥 트로트가 좋다는 구수한 사투리 청년 '트로트계 샛별' 진해성을 만났다. '진해성'이란 예명은 그의 트로트 가수 도전을 반대하던 아버지가 상경하겠다는 아들의 꿈을 결국 받아들이며 '진해의 별이 되어라'는 뜻으로 지어주셨다.
- '사랑 반 눈물 반' 인기를 실감하나.
"트로트 가수를 시작한 지 7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은 호응을 크게 얻지는 못했다. 거기에 적응돼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사랑 반 눈물 반'을 불러주시는 게 신기하다. 팬 분들이 힘을 주시고 격려를 해주신 덕분이다."
- 원래 트로트 가수가 꿈이었나.
"어릴 적부터 배호 선생님, 나훈아 선생님, 이미자 선생님의 노래를 좋아했다. 트로트를 듣다 보면 어머니, 아버지가 지나오신 세월이 상상되더라. 쿵짝쿵짝 하는 멜로디를 들으면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고, 가사에 공감도 많이 됐다. 트로트란 노래 자체가 인생을 배우게 해주는 노래라고 생각했고, 트로트를 들으면서 내가 성장했다."
- 처음 트로트 가수가 되고 싶었던 게 언제인가.
"열다섯 살 때다. 중학생 때부터 친구들과 만나면 트로트를 불렀다. 한 번은 학교 축제에 나갔는데, 그때 무대 위에서 트로트를 부르니까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게 참 짜릿하더라. 그 순간 '가수가 되어야겠다. 트로트가 너무 좋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 트로트 가수가 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아버지가 처음에는 반대하셨다. 그래서 무언가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았다. 군대도 20대 초반에 바로 다녀왔다. 제대 후에 전국의 가요제란 가요제는 다 찾아서 나갔다. 상을 탈 때도 있었고, 결국 1년 동안 상금으로 천만 원을 모아서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그때서야 '밀어주십쇼!' 하니까 아버지가 '그럼 3년만 해봐라. 길이 보이면 계속 가고, 안 보이면 빨리 포기하라' 하셨다. 기분이 너무 좋더라. 그때부터 죽기살기로 활동을 했다."
- 처음에는 부산 쪽에서 활동하다 어떻게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나.
"부산에서 활동하다 보니 트로트로 방송에 나갈 수 있는 자리가 별로 없더라. 그래서 버스킹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트로트로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해운대 쪽에서 버스킹을 했고, 이름이 알려지면서 서울로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홍대로 답사를 왔는데, 전부 젊은 노래들로 버스킹을 하더라.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홍대 버스킹을 처음 하던 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잘못했다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될 것 같았다. '사람들이 웃고 지나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떨다가 노래를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조금씩 몰리더라. 지나가시던 직장인 분들, 엄마랑 쇼핑 온 가족 분들, 지나가시면서 호응해주시고 좋아해주셨다. 그 순간 '와! 이거구나' 싶으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느낌이었다. 그때 용기를 얻고 홍대에서 계속 버스킹을 했다. 그러다 버스킹 중 우연히 지금의 대표님과 만나게 되면서 함께 일을 하게 됐다. 부산 때부터 홍대까지 저를 응원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사진 =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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