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그 연차에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죠."
넥센 김규민은 이정후가 종아리 부상으로 이탈한 뒤 톱타자를 맡았다. 임시 톱타자 치고 실적이 뛰어나다. 사실 톱타자를 맡기 전 주전들이 줄부상으로 이탈할 때부터 5~6번 타순을 오가며 심상찮은 타격 솜씨를 과시했다. 올 시즌 16경기서 63타수 24안타 타율 0.381 1홈런 12타점 11득점.
장정석 감독은 김규민이 출루율이 좋고 발이 빨라 톱타자로 손색 없다고 수 차례 칭찬했다. 주전들의 줄부상 이후 장정석 감독으로부터 가장 신뢰받는다. 17일 고척 KIA전은 톱타자 김규민의 가치가 확실하게 입증된 경기였다.
당시 김규민은 3-2로 앞선 7회말 1사 1,3루 찬스서 팻딘을 상대로 1타점 우전적시타를 뽑아냈다. 놀라운 건 주루였다. 후속 임병욱이 우중간 깊숙한 타구를 날리자 2루와 3루를 돌아 홈까지 쇄도했다.
KIA 외야진의 중계플레이가 빠르고 정교했다. 조재영 3루코치는 2루를 밟고 3루로 뛰어오던 김규민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어 홈 질주를 저지하는 시그널을 보냈다. 원칙대로라면 김규민은 당연히 3루에서 멈춰야 했다.
하지만, 김규민은 조재영 코치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홈까지 파고 들었다. 결과적으로 KIA 포수 김민식이 공을 잡고 뒤돌아서 태그 동작을 취하기 전 손으로 재빨리 홈플레이트를 쓸었다. 태그를 피하기 위해 상체를 약간 비트는 센스도 발휘했다.
넥센은 김규민의 득점으로 6-2로 달아났다. 이후 이택근의 투런포가 터지며 승부는 사실상 끝났다. 결국 경기흐름상 김규민의 득점이 결정적이었다. 다만, 홈 쇄도는 무리한 측면이 있었다. 아웃되면 흐름이 바뀔 수도 있었다. 사인을 어긴 건 어긴 것이었다.
장정석 감독은 "만약 아웃됐다면 상황에 따라 벌금을 매길 수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선수단 자체 내규에 따른 페널티를 의미한다. 그러나 장 감독은 김규민의 사인위반을 지적하면서도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규민의 톱타자로서의 가치, 센스, 과감한 판단력이 드러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장 감독은 "본인이 2루를 밟을 때부터 타구가 빠질 것이라고 보고 홈까지 달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하더라"면서 "그 연차에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본인이 자신이 없었다면 할 수가 없었던 플레이다"라고 평가했다.
김규민은 18일 고척 삼성전까지 1군 경험이 고작 30경기다. 7년차 야수지만, 무명으로 머무른 시간이 길었다. 현역 군 복무까지 했다. 경험이 일천한 선수가 코치의 멈춤 사인을 보고도 홈으로 파고드는 건 무모하지만, 반대로 소신과 주관이 뚜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주루 센스가 없으면 그런 판단조차 내릴 수 없다.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는 게 장 감독 설명이다.
한 마디로 김규민의 무한한 잠재력이 제대로 드러난 장면이었다. 장 감독도 사인위반을 알면서도 페널티도 매길 수 없었고, 흐뭇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넥센이 주전들의 줄부상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김규민.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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