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설명하지 않고 느껴지는 영화가 되길 바랐어요. 구조적으로 미스터리의 퍼즐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모호한 영화니까요.”
‘버닝’의 이창동 감독은 25일 삼청동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모호함’을 화두로 꺼냈다. 해미(전종서)는 왜 사라졌을까, 벤(스티븐 연)은 어떤 인간인가라는 미스터리가 앞에 있고 뒤로 갈수록 미스터리가 중첩된다. 그 가운데 우리가 눈으로 보고 믿는 것과 실제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욕망’(Blow Up)을 참고한 것이 아닌가.
“물론 레퍼런스로 ‘욕망’을 참고했죠. 영화 한 편을 만들 때 많은 작품을 레퍼런스로 봅니다. ‘욕망’도 그 중의 하나였고요. ‘버닝’에는 서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미스터리도 함께 녹아 있어요.”
고양이의 존재는 무엇일까.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두 영화에서 고양이는 열린 문으로 나가고, 주인공은 찾아 헤맨다. 나중에 이름을 부르고(‘버닝’), 이름을 알게 되면서(‘인사이드 르윈’)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다. 종수(유아인)가 찾던 고양이 이름은 ‘보일(Boil)’이었다. 내면에 잠재된 분노가 끓어오른다.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가 극의 마지막에 주인에게 전해들은 이름은 율리시스였다.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기 위해 10년간 온갖 모험을 겪었던 오딧세우스의 로마식 이름이다. 포크 뮤지션의 음악적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런 해석도 가능해요. 하지만 ‘인사이드 르윈’을 직접적으로 참고한 건 아니예요. 각본을 쓴 작가의 친구가 기르던 고양이 이름이 ‘보일’이었거든요(웃음). 그리고 고양이는 잘 도망가잖아요.”
작가 지망생 종수, 이벤트 걸로 일하는 해미,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개츠비 같은 인물 벤 세 명의 흔적을 좇다보면 이야기가 명확하게 연결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했다. 모호함은 ‘버닝’의 핵심이다.
“제가 젊었을 때만 해도 세상의 모순을 바꾸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죠. 뭔가 잘못됐는데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요. 세상은 세련되게 발전하는데 나는 더 왜소해지고. 그것이 일종의 미스터리죠. 대상이 없다는 것에 대한 무력감. 그게 더 큰 분노일 수 있어요.”
관객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엔딩 장면 역시 이미지로 던져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적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길 원했다.
“벌거벗은 몸으로 어딘가로 떠나는 거잖아요. 제 나름대로 열린 결말이었어요. 세상에 태어난 몸으로 무엇인가 두려워하는 복잡한 감정을 갖고 길을 나서는거죠.”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도 강렬한 이야기로,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후보에 올랐다.
[사진 제공 = CGV 아트하우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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