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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김지운 감독은 ‘흔들리는 인간’에 매혹을 느낀다. ‘달콤한 인생’의 선우(이병헌), ‘밀정’의 이정출(송강호)이 대표적이다. 선우는 희수(신민아)에게, 이정출은 정채산(이병헌)에게 마음이 움직인다. ‘인랑’의 임중경(강동원)은 이윤희(한효주)를 만나 새로운 세계와 맞닥뜨린다.
“촬영을 마무리할 즈음에 ‘달콤한 인생’의 진화된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달콤한 인생’이 개인의 파멸을 다뤘다면, ‘인랑’은 시스템을 극복하려는 이야기라는 점이 달라요. 구도와 구성은 비슷한 맥락이지만, 결론은 다르죠. 좀더 성숙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인랑’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전설적 애니메이션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 남북한이 통일준비 5개년 계획을 선포한 후 반통일 테러단체가 등장한 혼돈의 2029년, 경찰조직 '특기대'와 정보기관인 '공안부'를 중심으로 한 절대 권력기관 간의 숨막히는 대결 속 늑대로 불리는 인간병기 '인랑'의 활약을 그렸다.
“장르는 두려움을 다뤄요. 호러는 보이지 않는 존재, 멜로는 실연, 누아르는 추락, SF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담아내죠. 이 영화를 준비할 때 주변 강대국이 우경화되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집단 대 집단이 충돌하고 있더라고요. 상대에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두드려졌고요. 저같은 자유주의자들은 당혹스럽죠. 그래서 시스템과 개인간의 이야기를 다뤄내고 싶었어요. 레트로 느낌의 SF를 통해서요.”
그는 ‘벽을 뚫고 나가는 느낌’을 살렸다. 모든 인물들은 벽에 둘러 싸여 있다. 막힌 곳을 돌파하는 액션에 중점을 뒀다. 남산타워 액션신부터 하이라이트인 극 후반부 수로 액션신에 이르기까지 ‘인랑’의 비주얼을 갇힌 곳을 벗어나는 동선으로 그려냈다.
“그것이 영화의 주제예요. 시스템과 부딪치다가 자유를 찾아 떠나는거죠. 전작 ‘밀정’의 인물들에게 가혹한 시련을 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엔 휴식과 위로를 주고 싶었어요.”
김 감독은 지난해 ‘밀정’ 인터뷰 당시 기자에게 “야만의 시대에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야만의 시대에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 지금은 얼핏 그런 내용을 ‘인랑’에 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과연 목적을 달성했을까.
“잊고 있었어요(웃음). 신기한 경험이네요. 중압감에 시달리다 잊고 있었는데, 인터뷰 도중에 과거에 했던 이야기를 들으니까 반갑기도 하고요. 돌이켜보면, 처음과 달리 무엇인가 많이 바꾸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결과물을 보면 처음의 생각과 똑같은 경우가 있어요. ‘반칙왕’ ‘장화, 홍련’도 몇 년 지나서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1998년 코믹 잔혹극 ‘조용한 가족’으로 데뷔한지 20년이 흘렀다. 그는 한국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 평가받는다. ‘장르의 마술사’로서 코미디(‘반칙왕’), 호러(‘장화, 홍련’), 웨스턴(‘놈놈놈’), 첩보 스릴러(‘밀정’), SF(‘인랑’) 등을 찍었다. 앞으로 20년은 어떤 영화를 만들까.
“지난 20년 동안 장르의 변죽만 울린 것 같아요. 성숙하지 못했고, 어설플 수도 있었겠죠. 이제는 ‘장르의 결정체’를 제대로 만들어 영화 인생을 정리하는게 꿈이예요.”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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