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공작’엔 총소리가 울리지 않는다. 대신 감동과 여운이 울린다. 첩보스릴러 장르 치고는 신선한 경험이다. 시끄러운 총성, 숨가쁜 추격전, 첨단 신무기 등 장르의 클리셰가 없다. 무기와 액션이 아니라 ‘말’과 ‘표정’으로 영화를 지배한다. 한국 첩보스릴러 장르의 새 장이 열렸다.
1993년, 북한 핵개발을 둘러싸고 한반도 위기가 고조된다. 정보사 소령 출신으로 안기부에 스카우트된 박석영(황정민)은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최신 정보를 얻기 위해 북한 고위층 내부로 잠입하라는 안기부 최학성(조진웅) 해외실장의 지령을 받는다. 대북 사업가로 위장해 베이징 주재 고위간부 리명운(이성민) 처장에게 접근해 두터운 신의를 쌓는데 성공하지만,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남과 북의 수뇌부 사이에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고 갈등에 휩싸인다.
‘공작’은 윤종빈 감독의 치밀한 플롯과 배우들의 놀라운 호연으로 뭉클한 여운을 전한다. 흑금성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는 과연 이 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까 궁금증을 일으키다가 어느 순간 제발 성공하길 바라는 응원의 마음으로 바뀌게 된다. 차가운 긴장은 뜨거운 감정으로 녹아내린다.
정체를 숨기고 리명운 처장에게 접근하던 중에 국가안전보위부 정무택(주지훈) 과장에게 계속 의심을 받는 박석영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는 과정이 손에 땀이 나는 서스펜스로 펼쳐진다. 살벌한 검문을 용케 빠져나와 녹취에 성공하고, 신분이 탄로날 뻔한 절체절명의 순간을 모면하는 장면을 보라. 왜 총소리가 필요없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속고 속이는 심리게임이 치열한 두뇌싸움으로 전개되다가 후반부에 남과 북 수뇌부의 비밀 회동으로 전개되는 플롯은 실제 사건과 오버랩되며 리얼리티를 높인다. 1990년대를 완벽하게 재현한 미장센과 인물들의 특성을 살린 각종 소품의 활용도 흠 잡을 데가 없다. 관객은 베이징과 평양의 숨 막히는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조직의 명령과 민족의 미래 사이에서 고뇌하는 첩보원 황정민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뚝심있게 밀어붙이는 이성민의 연기 시너지는 뛰어난 흡인력을 발휘한다. 언제든 문을 부수고 달려들 듯한 주지훈의 날카로운 눈빛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윤종빈 감독은 전세계 유일한 냉전 국가에서 벌어진 실화를 통해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남북 발전이 아니라 체제 유지에 혈안이 됐던 권력의 폐부를 깊숙하게 찌르는 솜씨가 수준급이다.
이 영화의 밑바탕엔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신념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분투가 숨 쉬고 있다. 우정과 신뢰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공작’의 작전은 성공했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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