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배우 이수빈에게 뮤지컬 '웃는 남자'는 큰 도전이자 큰 과제였다. 대작인 것은 물론 자신과 어울리는 역할이라는 평에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이는 곧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수빈이 출연중인 뮤지컬 '웃는 남자'는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뮤지컬로 그려낸 작품.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끔찍한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순수한 인물인 그윈플렌의 여정을 따라 사회 정의와 인간성이 무너진 세태를 비판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조명한다.
극중 이수빈은 아이와 같은 순백의 마음을 가진 인물로, 앞을 보지 못하지만 영혼으로 그윈플렌을 바라보며 그를 보듬어 주는 데아 역을 맡았다.
최근 예술의 전당 공연을 끝내고 블루스퀘어 공연을 앞두고 있는 이수빈은 "사실 이번 공연에 부담감이 커서 겁을 많이 먹고 시작했는데 무대에 오르고나니 더 편하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두 달이 너무 재밌게 금방 지났다"고 운을 뗐다.
사실 이수빈은 '웃는 남자' 연습 기간 내내 부담감을 느꼈다. 워크샵 때부터 참여했던 공연에 함께 하게 돼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때문에 공연 전까지 긴장의 연속이었고, 부담감을 떨쳐내기 위해 더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수빈은 "워크샵에 이어 공연에 함께 하게 되니 더 잘 해보고 싶어서 조금 더 욕심이 나더라"며 "많이들 데아라는 역할과 잘 어울린다고 얘기해주셔서 그런지 캐릭터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웃는 남자'는 엄청 큰 작품이고 노래도 워낙 좋아서 잘 살려줘야 해요. 또 다른 선배 배우분들은 물론 제작진들 분들도 다 실력 있으신 분들이니까 '나만 자리를 잘 잡고 열심히 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매일매일 긴장하고 항상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지금도 계속 떨리지만 막상 공연을 시작하니 오히려 마음은 편해졌어요."
이수빈은 순전히 오디션을 통해 '웃는 남자'에 합류하게 됐다. 워크샵 때부터 본공연까지 숱한 오디션과 미팅을 통해 데아 역을 맡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더 데아에게 애정이 가고 작품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된다.
"원작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 연출님과 대화한 것이 가장 좋았다"고 밝힌 이수빈은 "'내가 데아였다면,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나라면 어땠을까'부터 시작했다"며 "내 안에서 데아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솔직하고 진실될 거라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사실 데아한테 중요한 건 관계인 것 같아요. 이 사람은 나한테 어떤 존재인지, 나는 저 사람한테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나는 이 사람한테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그런 걸로 하나하나씩 관계를 찾아가기 시작했죠. 워낙 원작에 탄탄하게 구조들이 나와 있어서 거기서 많이 힌트를 얻었어요."
이수빈은 원작에서의 데아에도 집중했다. 원작 속 데아는 눈이 안 보이지만 상대방이 어떤 색을 가졌는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더 잘 알고 포용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에 나쁜 생각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주위 동료들 역시 이수빈에게 '넌 이미 그런 아이야', '넌 정말 예쁘고 따뜻한 아이야'라며 에너지를 불어 넣어 줬다.
이수빈은 "주위에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니까 내가 더더욱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 같고 무대에서 그렇게 보여질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데아는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지만 세상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이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상위 1%의 귀족들보다 행복이라는 게 뭔지를 알고 있는 아이"라고 말했다.
극중 데아는 눈이 보이지 않는 인물. 연기하는데 있어 외적으로도 신경써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
"무대에서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의 연기를 한다는게 흔한 경우가 아니고, 눈이 안 보이는 사람으로 보이기가 어렵더라"고 전한 이수빈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데아라는 역할 자체도 어찌 보면 현실에 존재하기 힘든, 신비스러운 아이라는 생각도 들어 더 고민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연출님은 '데아는 천사야'라고 말해주셨다. 이걸 어떻게 구현해야 하나 또 고민다"며 "그래도 많은 분들이 '너대로 해도 될 것 같아'라고 할 정도로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셔서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재밌게 공부해 갔다"고 털어놨다.
"부담감이 컸던 이유도 저랑 잘 어울린다는 말 때문이었어요. 근데 주위에서 더 세심하게 봐주시니 용기가 생겼죠. 해가 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했고, 연출님이 그려놓은 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같이 예쁜 색을 입히려고 노력했어요."
이수빈은 눈이 보이지 않는 데아를 연기하기 위해 실제로 눈을 감고 걸어다니기도 했다. 특히 집에서는 거의 눈을 감고 다녔고, 눈을 감은 채 혼자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했다. 아는 길도 걸어보고 모르는 길도 걸어봤다. 혼자서도 걸어보고 누군가와 함께 걷기도 했다.
이수빈은 "그러다 보니 비는 공간들이 생겼다. 또 혼자 걸었을 때는 무서웠다면 나를 인도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걸을 때는 느낌이 달랐다"며 "'아, 내가 만약에 그윈플렌이랑 같이 걸었다면? 이 사람이 우르수스였다면?'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퍼즐 맞추기처럼 맞춰가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함께 데아를 연기하는 민경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도움이 됐다. 차별점을 굳이 만드려고 한 건 아니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자신에서 시작하는 데아를 각각 만나게 됐다. 큰 선이 다른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고민과 이야기를 함께 하며 데아 자체를 표현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
"데아는 작품 안에서 모든 일대기가 그려져요. 아기 때부터 죽음까지. 데아만의 이야기를 다룬 게 아니기 때문에 사실 모든 것을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장면마다 다이내믹하게 만들어내서 잘 가려고 노력했어요. 그건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렇다 보니까 색깔이 다양하죠. 또 인물 하나하나 색깔이 다 달라서 순수한 데아만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가져갈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세 명의 그윈플렌 박효신, 엑소 수호, 박강현은 어떨까. "세 분이 정말 다르다. 셋이 다 다른 색깔"이라고 운을 뗀 이수빈은 "매번 그 분들과 교감하고 싶은 방법이 다르다. 그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둔다"고 고백했다.
"(박)강현 오빠는 솔직한데 담백하다. 되게 열정적인 그윈플렌이에요. 그래서 순수한 감정을 찾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많이 도와줬고 얘기도 많이 나눴죠. 오빠 자체가 워낙 꾸미고 이런 스타일이 아니라서 순수하게, 솔직하게 얘기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면서 또 열정적이고요. 그래서 되게 편했고 솔직하게 할 수 있었어요."
박효신에 대해선 "꼼꼼하고 정말 열심히 하신다"며 "말 하나도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다양한 시도를 하신다. 덩달아 같이 따라가면서 정말 좋은 것들이 나온다"고 말했다.
"(박)효신 오빠는 아이디어도 많이 주세요. '이 그림 어떨까?' 생각을 많이 하시죠.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지 열심히 분석하시고 정말 따뜻하게 잘 해주세요. 특히 리액션을 정말 잘 해주세요. 제가 노래 부르고 있으면 옆에서 또 같이 동조해주고 잘 들어주셔서 좋아요."
수호의 그윈플렌은 "자상하다"고 정의했다. "행동이 자상하다. 데아는 아무래도 눈이 안 보이니까 케어를 받아야 하는 장면들이 많은데 되게 부드럽게 잘 다뤄주는 것 같다"며 "그런 부분에 있어선 되게 젠틀하게 잘 도와주신다. 그러니까 저도 잘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내게 '웃는 남자'는 정말 크게 다가오는 작품"이라며 "그래서 더 나를 몰아세웠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너무 좋은 기회고 이로써 많이 성장할 것 같다는 것을 크게 느껴요. 그만큼 또 어려운 도전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악물고 더 연습하고 레슨 받고 더 체크하고 다시 돌아봤죠. 하루하루 소중하게 찾아가고 표현하고 저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예요. 배워가는 것들이 정말 많거든요. 열심히 성장해 나가고 싶어요.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시간 170분. 오는8월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9월 4일부터 10월 28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배우 이수빈. 사진 =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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