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 뮤지컬 '인터뷰'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뮤지컬배우 정동화가 뮤지컬 '인터뷰'를 통해 그의 탄탄한 연기 내공을 터뜨리고 있다.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이야기, 가벼울 수 없는 인물을 통해 배우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깊고 탄탄한 내공을 드러내고 있다.
정동화가 출연중인 뮤지컬 '인터뷰'는 살아남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한 소년이 10년 후 죄책감으로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극중 정동화는 비밀을 품은 추리소설 작가지망생 싱클레어 고든 역을 맡았다. 싱클레어 고든은 해리성 정체장애로 다중인격을 가진 인물. 맷 시니어를 중심으로 이성적인 노네임, 폭력적인 지미, 예민한 앤,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가진 우디 인격이 공존한다.
정동화는 "한 회, 한 회 끝나고나면 진짜 홀가분하고 성취감이 있다. '해냈다!' 같은 느낌"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보는 관객들도 힘들겠지만 연기하는 배우도 힘든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 매회 공연이 기다려지고 기대가 된다"며 "왜냐하면 예상을 하고 연기하지 않는다. 상대 배우도 바뀌고 그 때 그 때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은 어떤 느낌이 나올지 기대되고 기다려진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김수로 대표님께서 예전에도 제안을 주셨어요. 그 때는 너무나 아쉽게도 다른 일정이 겹쳐 있었죠. 쉬운 작품이 아니라고 말씀 해주셨고, 주위에서도 많이 들어서 '다른 작품과 병행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겠구나' 하고 아쉽게 참여를 못했어요. 이번엔 감사하게 또 제안을 주셔서 다른 공연과 병행하지 않고 '인터뷰'만 할 수 있게 스케줄을 비워놓고 시작했어요."
정동화는 이번 공연에 새로 합류한 뉴캐스트이기 때문에 더 큰 고민과 노력을 해야 했다. 자신을 지켜봐 주는 모든 사람들의 기대와 기회에 보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인 다역이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았다.
"1인 다역, 혹은 다크하거나 감정이 많이 소모되는 류의 작품은 사실 많이 했었는데 이것들이 다 융합돼서 정말 '끝판왕' 같이 해야 되는 작품은 사실 우리 나라 뮤지컬 중에 '인터뷰'가 독보적이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힌 정동화는 "배우가 감당해야 될 몫이 정말 큰 작품이다.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연기하는 1인 다역은 정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인물이 왜 변하는지, 뭔가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죠. 배우의 기량을 뽐내기 위해서가 절대 아니라 참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감정이 튀어나오는 거예요. 사실 '얼마나 대단한 연기를 하길래' 할까봐 늘 감정 이야기를 하는 게 좀 부끄러운데 그래도 얘기하자면 이 감정이 뚫고 나오는 이유나 상황, 근거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정동화는 감정을 위해 인물들에 집중했다. 그 결과, 한가지 관통선이 있어야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다른 인격들이 나올 때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공통 분모가 없으면 공허할 거라 생각했다는 것.
그는 "공통 분모가 있는 상황에서 분자들이 바뀌는 거라고 생각했다. 분모는 그대로 있고 분자들에 대한 결을 미세하게 바꾸려고 노력했다"며 "한사람인데 어떠한 감정, 상황 때문에 다른 정서가 튀어나온 거지 다른 인물이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정동화는 맷 시니어를 분모로 뒀다. "맷으로 시작해서 맷으로 끝난다고 생각했다"며 싱클레어 고든, 지미, 우디, 앤, 노네임의 이야기를 풀어갔다.
"싱클레어는 사실 맷이 연기한 인물이다. 의도적인 인물이고 누나를 죽인 살인범이 유진킴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오는 시작점이 된다. 싱클레어는 맷이 철저히 연기한 인물이고 지미서부터가 또 다른 분자"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맷이라는 사람 자체가 되게 역동적이거나 다이내믹하거나 속을 알 수 없는 기괴함이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순수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며 "결국 범죄자고 사회적인 괴물이지만 맷이라는 사람 자체는 순수한 청년인 거다. '사랑 중 사랑으로 사랑한'이라는 말을 할법한 아주 사랑 가득한 아이, 소년, 청년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맷이 순수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 안에 아주 상반된 인물이 지미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단순히 폭력적이거나 무서운, 예를 들면 새아빠의 모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맷이 갖고 있는 순수함과는 반대선에 있는 인물이란 거죠. 그래서 일부러 욕설을 좀 뺐어요. 결국 분모는 맷이니까요. 지미 안에서도 공통분모는 맷인 거죠."
쌍둥이 우디와 앤은 어떨까. 우디에 대해 "맷의 어린 시절과 가장 가까운 아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한 정동화는 "이 친구는 평균 연령을 낮춘 게 아니라 정신 연령만 낮췄다. 앤과 같은 나이임에도 언어 구사를 다르게 하는데 우디의 정신 연령이 낮아진 원인은 폭력이다. 가정 안에서 안타까운 폭력을 당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정신연령보다 높은 나이임에도 불구 어린 아이처럼 말을 구사하는 거다. 폭력을 당한 순간에 갇혀 더이상 자라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앤에 대해선 "앤은 사실 조안이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조안의 탈출구는 앤인 것"이라며 "사실 난 조안을 되게 안타깝게 생각한다. 또 다른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조안에게는 앤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덧붙였다.
"3인칭 시점으로 '인터뷰'를 봤을 때 조안이 너무 안타까워요. 조안도 사랑 받아야 할 어린 아이였는데 정서적으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거잖아요. 맷과 조안 둘 다 피해자인데 조안은 누가 돌봐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맷을 또 돌봐야 했어요. 이건 진짜 최악이죠. '어떻게 이걸 견뎌냈지?' 싶어요. 당연히 떠나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 조안에게 앤은 탈출구였고, 놀이를 통해 맷에게 앤처럼 해보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앤이 나온 거고요. 앤은 조안이 씨앗을 뿌려 맷이 열매를 맺은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노네임에 대해선 "맷과 노네임은 종이 한 장 차이. 둘은 동등하다. 뜨거움의 정도가 다를 뿐"이라며 "노네임이 절대자, 혹은 맷을 지배하는 권력자, 혹은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본 안의 표현, 디렉션과 조금 다르게 잡았다"고 고백했다.
"맷은 뜨거운 사람이다. 10년 동안 쫓아온 유진킴을 보자마자 죽이고 싶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적으로 조금 성장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고 본다. 좀 성장한 상태에서 유진킴을 만난 것"이라고 했다.
또 "반면 노네임은 그 뜨거움을 차가움으로 표현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은 아니다"며 "절대자라고 하면 마치 피도 눈물도 없고, 뜨거움과 차가움도 없는 신같은 존재로 보이는데 노네임은 그렇지 않다. 맷과 비슷한 사람인데 그게 오히려 차가움으로 승화된, 결핍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절대자가 아니라 사람이다"고 밝혔다.
"마지막에 인격 변화를 겪으며 여러 사람이 보일 때 그건 사실 맷이 아니라 노네임이에요. 노네임이 흔들리는 거죠. 절대자가 아닌 거예요. 되게 인간적인 사람인 거고요. 노네임이 인격변화를 겪는게 어떻게 보면 맷보다 더 감정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맷이 아니라 오히려 절대자인 노네임이었을 때 인격변화를 겪는다는건 노네임이 맷보다 더 인간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정동화는 각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고스란히 전했다. "다중인격은 후천적이라고 생각한다. 장점이든 단점이든 선천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이를 발전시켜주는 토대가 후천적으로 생기는 것"이라며 "맷의 경우도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선천적으로 없진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태어났을 때의 모든 상황이 그 악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전 밝은 결말을 원해요. '인터뷰'에서도 맷은 계속 치료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유진킴한테 고맙고요. 후천적인 영향으로 나쁜짓을 한 사람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여지를 준 거잖아요. 완벽하게 와닿지는 않지만 그렇게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어요. 사실 맷의 사건도 기사로만 접했다면 용서할 수 없는 범죄예요. 하지만 우리는 이 사건의 내막을 알고 맷이 너무나 안타까운 가정사를 겪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거죠."
정동화는 다소 어두운 작품임에도 '인터뷰'가 사랑 받고 무대에 올려지는 이유에 대해 "빛의 소중함을 알려면 어둠이 있어야 된다"고 답했다.
"이 사회에서는 빛과 어둠, 모든 것들이 공존한다"며 "빛과 어둠이 공존하지 않으면 서로에 대한 감사함과 중요함을 망각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 있어서 관객들에게 다양함을 제공하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이런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동화의 각 인물들에 대한 분석은 그의 연기가 무대 위의 모습으로 느껴지는 것보다 더 힘든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나 정동화는 연기하기 힘들겠다는 말에 "그걸 바라봐 주는 관객분들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것 같다"며 관객에게 공을 돌렸다.
"모든 예술의 꽃은 관객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사실이죠. 씨앗이나 기초적인 토대는 작가, 연출가, 작곡가 같은 분들이 배우들에게 주죠. 이걸 구축해서 열매를 키워야 하는데 그 결실을 맺는 열매는 관객이라고 생각해요.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즉 관객이 이 공연을 보러와주지 않으면 그 식물은 결국 죽은 식물이고, 이걸 키운 농부는 그 식물을 뽑을 수밖에 없어요.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농부는 더이상 이 나무를 키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관객이 소중할 수밖에요."
정동화의 관객 사랑은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 이번 인터뷰에서도 역시나 관객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관객들이 공연을 보러 온다는 건 자신만의 하루 사이클 절반을 감내하고 오는 거다. 공연을 보는 날과 보지 않는 날의 사이클은 분명 다를 것"이라며 "공연 보는 날은 아침부터 리듬과 싸이클도 다르고 업무를 보는 상황도 다를 거다. 기대되는 공연이면 업무가 즐거울 수도 있고 다이내믹하고 활기찰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공연 보는 날은 관객들을 살아있게 하는 시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도 생명력을 느끼기 때문에 공연을 보는 것"이라며 "팬 분들이 '배우님 공연 볼 때마다 살아있는 걸 느낀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너무 감동을 받고 '이걸 어떻게 보답해드려야 하지' 고민한다"고 털어놨다.
"결국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보답할 수밖에 없어요. 저를 움직이게 하고 살아있게 하는 힘, 원동력은 관객들이란 걸 늘 말씀 드리고 싶어요. '인터뷰'가 여러분들 기억속에 많이 남고 여러분들에게 사랑 받았던 작품으로 남을 수 있도록 마지막 공연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
뮤지컬 '인터뷰'. 공연시간 110분. 오는 9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 에스비타운.
[사진 = (주)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