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마이클 무어 감독은 ‘화씨 11/9:트럼프의 시대’에서 트럼프 한 명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그는 어떻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그가 군림하는 세상에서 미국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와 무기력한 민주당, 낡아빠진 선거제도와 연결시켜 다룬다. ‘행동주의자’ 마이클 무어의 팩트 폭격은 날카로우면서도 뜨겁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의 비관적 전망이 현실화될까하는 두려움에 서늘함마저 느껴진다.
영화는 2016년 11월 7일, 대선 하루 전부터 시작한다. 거의 승리를 거머쥐어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클린턴 진영과 압도적 패배를 당할까 노심초사하는 트럼프 진영을 번갈아 보여주다 곧바로 상황이 역전돼 초상집이 된 민주당과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는 공화당을 비춰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선결과는 미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토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트럼프가 NBC 출연료를 더 받기 위해 ‘가짜 출사표’를 던지는 쇼를 벌였다가 점점 욕심을 내 대통령까지 당선되는 과정 속에 미국 민주주의의 민낯이 고스란히 폭로된다. 시청률에 목숨을 건 언론은 앞다퉈 트럼프라는 히트상품을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트럼프는 거짓말을 일삼고, 딸 이방카에 대한 성적 농담을 즐기고,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는 등 대통령의 자질이 없었지만 민주당에 실망한 수많은 유권자가 투표를 포기함으로써 백악관에 극적으로 입성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부터 민주당이 ‘타협’을 내세워 점점 공화당처럼 변해가는 역사 속에 트럼프의 당선이 잉태됐다고 꼬집는 대목은 대의 민주주의에서 당의 선명한 정책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일찍이 ‘로저와 나(1989)’에서 GM이 공장 문을 닫아 자신의 고향 미시간주 플린트시가 몰락하는 아픔을 다뤘던 그는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다시 플린트를 방문한다. 릭 스나이더 공화당 주지사는 부자를 위해 세금을 감면하는 반면, 대다수 흑인 거주지에는 납 중독 식수를 제공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재해지역으로 선포해달라는 주민의 바람과는 달리, 식수를 입술에 갖다대는 ‘정치적 이벤트’로 실망감만 안겼다. 그것으로 사실상 게임은 끝났다.
마이클 무어는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신진 정치 후보자들, 열악한 처우 개선에 항의하는 파업으로 인금인상을 쟁취한 교사들, 총기 사용 제한을 주장하는 10대 청소년의 전국적 운동 속에서 희망의 끈을 찾는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들의 외침 역시 부분적인 성공만 거뒀을 뿐이다. 미국은 여전히 성별과 인종으로 나누려는 정치인들로 득시글거린다.
영화는 트럼프를 히틀러에 빗댄다. 누군가 히틀러의 망령까지 불러내는건 과도하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목격했듯이 역사는 언제나 반복된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사진 제공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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