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최창환 기자] "처음 봤을 땐 '뭐 저렇게 삐쩍 마른 선수를 데려왔어?' 싶었다."
이상민 서울 삼성 감독의 회고다. 단 1경기만 치르고 방출될 수도 있는 냉엄한 세계지만, 이 삐쩍 마른 외국선수는 어느덧 11시즌 연속 KBL에서 활약하고 있다. 꾸준히 파괴력을 발휘, 외국선수 최초의 정규리그 500경기 출전은 물론 국내선수 가운데에도 단 3명만 돌파한 통산 1만 득점도 눈앞에 두고 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최장수 외국선수'. 서울 SK를 단순히 거쳐 가는 팀 가운데 한 팀이 아닌 가족이라 설명하는 애런 헤인즈(37, 199cm)가 그 주인공이다.
▲ 친구의 추천으로 시작된 역사
헤인즈는 2008-2009시즌 초반 에반 브락의 대체외국선수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이전 시즌 예상을 깨고 챔프전에 진출, 보다 높은 목표를 내걸었으나 2라운드 막판 5연패에 빠져 8위로 내려앉은 삼성이 취한 특단의 조치였다.
헤인즈는 사실 2008 외국선수 트라이아웃에서도 몇몇 팀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끝내 선택을 받진 못했다. 기동력은 뛰어났지만, 체격 탓에 몸싸움에 대해선 우려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득점 루트가 한정적이라는 박한 평가도 있었다.
삼성에서 안준호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였던 서동철 부산 KT 감독은 "레더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다. 영상을 찾아보니 날렵했고, 중거리슛 능력도 있어 가장 좋은 대안이었다. 데려와 보니 전술 이해도가 정말 빨랐지만, 사실 반신반의했다. 헤인즈가 이렇게까지 잘하는 선수가 될 줄, 오랫동안 KBL에서 뛸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라고 돌아봤다.
-2008-2009시즌 KBL에 도전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레바논리그에서 뛸 당시 친하게 지냈던 팀 동료가 추천해줬다. '내가 KBL에서 뛰어봤는데, 너와 잘 어울리는 리그인 것 같다'라고 하더라. 그래서 KBL에 도전했고, 대체 외국선수로 삼성에서 뛰게 됐다. 어쩌면 친구에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역사가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 헤인즈에게 KBL을 추천해준 선수는 노먼 놀런이었다. 놀런은 2005-2006시즌 헥터 로메로의 대체외국선수로 창원 LG에서 뛴 바 있다.
-그땐 그 누구도 헤인즈가 조니 맥도웰의 기록을 깰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도 이렇게 오래 KBL에서 뛸 거란 생각을 못했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 최대한 오래 뛰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KBL의 시스템이 잘 갖춰졌고, 팬들도 응원을 많이 해주셨기 때문이다. '오래 뛰고 싶다'라는 생각만 했을 뿐, 나도 KBL에서 가장 오랜 기간 뛰는 외국선수가 될 것이란 예상은 못했다."
-KBL 데뷔전을 기억하는가? 당시 스포트라이트는 D리그에서 돌아온 방성윤(당시 SK)이 독차지했다.
"물론 정확히 기억한다. 나 역시 뱅(방성윤)의 첫 경기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좋은 기회를 얻어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 이외의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굉장히 빠른 적응력을 보였다. 당시 삼성은 테렌스 레더 외에 이상민, 강혁, 이정석을 앞세워 빠른 농구를 구사하는 팀이었다. 본인에게 최적의 팀 컬러였을 것 같다.
"당시 삼성은 선수층이 탄탄했다. 큐(이규섭), 이정석 외에 강혁과도 호흡이 잘 맞았다. LG 코치가 된 강혁과는 지금도 만나면 농담을 주고받는다. '나와 가장 호흡이 잘 맞았던 선수'라고 얘기해줬고, 실제로 그랬다. 농구를 하며 강혁만큼 2대2를 잘하는 선수는 본 적이 없다."
-KBL 첫 시즌부터 흔치 않은 경험을 많이 했다. KBL 사상 최초의 5차 연장전을 치렀고, 챔프전에서는 극적인 버저비터도 성공시켰다.
"삼성의 메인 옵션은 레더였지만, 파울 트러블에 자주 걸리는 선수다 보니 나에게도 기회가 많이 왔다. 특히 5차 연장전을 통해 내가 어떤 선수인지 어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챔프전에서 버저비터를 넣었을 땐 코비가 된 기분이었다(웃음)."
-2번째 시즌에도 대체외국선수로 뛰게 됐고, 울산 모비스(현 현대모비스)의 통합우승에 기여했다. 프로선수 커리어에서 경험한 첫 우승이라고 들었는데?
"모비스에 가게 됐을 때 한편으로는 걱정이 들었다. 외국선수들 사이에서도 모비스는 훈련강도가 높고, 선수단 관리도 철저하다는 얘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걱정과 달리 생활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팀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브라이언 던스톤과 DJ(양동근)처럼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즐거웠다."
-유재학 감독은 KBL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지만, 엄격한 감독으로도 알려져 있다. 직접 경험한 유재학 감독은 어떤 감독이었나? 전술 이해도가 높은 헤인즈도 유재학 감독에게 혼난 적이 있나?
"모든 국내, 외국선수들의 역할 분담을 철저히 해서 팀을 운영하는 부분이 존경스러웠다. 나와 잘 맞는 부분이기도 했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물론 나도 혼난 적이 있었다. 크게 혼난 것은 아니었다(웃음)."
-출전시간에 대비해 생산성이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2시즌 연속 대체 외국선수였고, 2010-2011시즌에도 상대적으로 연봉이 적은 2라운드에 선발됐다. '2인자' 이미지가 강했는데, 아쉽진 않았나?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드래프트에서 탈락하거나 1라운드에서 외면 받은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내 역할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팀에 기여할 수 있는지 확실히 인지하고 있느냐다."
-삼성으로 돌아온 2010-2011시즌에 처음 득점 1위를 차지했고, 2011-2012시즌에는 자유계약제가 재도입됐는데도 경쟁력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헤인즈는 네임밸류가 높은 외국선수와 맞대결해도 통한다'라는 인식을 심어준 시기가 2011-2012시즌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존심이 상하긴 했다. 자유계약제가 도입되자 KBL 팀들은 NBA, 유럽리그 등 상위리그의 선수를 영입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췄다. 2011년에 레바논에서 뛸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레더와 함께 '두고 보자'라는 각오로 운동을 했다. 실제로 LG에서 제의를 받았다. G리그에서 NBA로 콜업되는 것을 '게토레이 콜업'이라 부르곤 한다. 레더가 이를 빗대 나에게 '포카리스웨트 콜업됐다'라고 농담을 하더라(웃음)."
-삼성, LG에서 뛰며 2시즌 연속 득점 1위를 차지했다. 이는 현재까지 KBL 역사상 유일한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에이전트에게 들어서 알게 된 기록이다. 기록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까지 농구에 대한 열정만 갖고 커리어를 쌓아왔다.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임하다 보니 기록적인 면도 좋은 결과가 따라온 것 같다."
▲ 새로운 가족, 그리고 최전성기
4시즌 동안 두 차례 소속팀을 챔프전으로 이끌었고, 이 가운데 한 시즌은 통합우승이었다. 이외의 두 시즌은 득점 1위를 차지하며 가치를 증명해보였다.
하지만 그 어느 팀도 헤인즈에게 재계약을 제안하지 않았다.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선발한 팀도 없었다. 자유계약제도가 도입됐던 시기는 논외라 해도, 헤인즈를 보유하기 위해 1라운드 지명권을 소진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따랐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팀들은 여전히 스코어러가 아닌 빅맨을 원했다.
SK는 헤인즈 활용에 있어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 팀이다. SK는 2012 외국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헤인즈를 지명했다. 모험이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문경은 감독은 확신이 있었다. "헤인즈를 1라운드에 뽑은 후 'SK는 그래서 안 되는 거다'라는 비아냥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 있었다. 헤인즈는 내가 구상하는 농구를 펼치는데 최적인 선수라고 판단했다."
-이전까지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지만, SK에 온 후 최전성기를 맞았다. SK와 자신의 궁합이 유독 잘 맞았던 이유는?
"처음 SK에 왔을 때 김선형, 최부경, 김민수 등 호흡이 잘 맞고 도움을 많이 주는 동료들이 있었다. 감독님의 '형님 리더십'도 나와 잘 맞았다. 문경은 감독님은 다른 감독들과 다르게 선수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지도자였다. 형제처럼 대해주셔서 잘 통했던 것 같다."
-이전까지 헤인즈와 재계약한 팀은 없었다. 좋은 선수인 것은 알지만, 1옵션으로 쓰거나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소진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SK는 처음으로 재계약을 제안한 팀이었는데?
"나는 항상 시즌이 끝난 직후 1~2주만 쉬었다. 이후부터는 곧바로 새 시즌에 대비한 운동을 해왔다. 비시즌마다 슛, 개인기 연습을 많이 하며 커리어를 쌓아왔다. 이 부분을 반복하다 보니 SK에서 오래 뛸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 것 같다."
-문경은 감독은 공수에 걸쳐 헤인즈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어떤 부분이 주효했던 건가?
"대화가 잘 통했다. 감독님은 이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나의 의견을 잘 들어줬다. 물론 나도 감독님이 지시한 부분을 잘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 서로를 존중해주는 사이였다. 굳이 꼽자면 대화를 많이 나눈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좋아하는 노래 취향도 비슷했다. 감독님 역시 나처럼 힙합을 좋아하신다."
-3시즌 동안 SK를 우승권으로 이끌었지만, 끝내 우승은 못하고 떠났다. 특히 모비스와의 2012-2013시즌 챔프전이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아직도 당시 챔프전에 대한 한이 남아있다. 우리 팀은 정규리그 최다승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기세가 좋았다. 그런데 챔프전에서는 스윕을 당했다. 이후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분하다."
-2015 외국선수 드래프트에서 고양 오리온에 지명되며 SK를 떠나게 됐다. 당시 SNS에 SK 선수단과 관계자, 팬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그때만 해도 SK로 돌아올 것이란 생각은 못했을 것 같다.
"SK는 나에게 의미가 남다른 팀이었다. 이 팀에서 뛸 때 결혼을 했고, AJ(아들의 애칭)도 태어났다. 팀 동료가 아닌 가족 같은 팀이었다. 특히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잘 챙겨줘서 감사했다. 늘 열성적으로 응원해준 SK 팬들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항상 좋은 대우와 대접을 해줬던 팀이 SK였다. AJ도 SK 선수들을 삼촌이라고 부를 정도다."
-오리온에서 마침내 1옵션으로도 팀을 우승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SK가 내세운 포(FOUR) 포워드와 오리온 포워드 전력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나?
"국내선수 구성을 보면 시즌 성적이 어느 정도 예상된다. 당시 오리온은 훌륭한 선수가 많았고, 조 잭슨도 나처럼 농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선수였다. 기대했던 성과를 얻은 시즌이었다. SK는 골밑자원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오리온은 슈터가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슈터들이 많아 오리온 시절에 아이솔레이션을 더 편하게 할 수 있었다. BQ와 슈팅능력, 농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이승현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겐 큰 힘이 됐다."
[애런 헤인즈. 사진 = 마이데일리DB, KBL 제공]
최창환 기자 maxwindo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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