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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기회가 있으면 또 해야죠."
박상영(23, 울산광역시청)이 매력적인 건 단순히 펜싱스타라서가 아니다. 그 누구보다 스포츠스타의 의무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한국펜싱의 발전을 위해 피스트 밖에서도 분주하다. 범위를 넓혀 한국체육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한국체육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기꺼이 부지런함을 감수한다.
1월 18일이었다. 기자는 국내 체육언론인을 대표해 경기도 고양에서 평창올림픽 성화봉송에 나섰다. 마침 박상영도 그날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기자와 한 버스를 타고 다니며 성화봉송을 했다. 기자는 박상영과 함께한 승마선수를 꿈꾸는 유망주에게 성화를 인계 받는 영예를 누렸다.
그날 박상영과 짧게 몇 마디를 나눴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씨가 인상적이었다. 마음속으로 창간인터뷰 주인공으로 생각해뒀다. 10개월 후 현실화했다. 펜서 박상영이 아닌 인간 박상영의 참된 모습 일부를 공개한다.
▲1월 18일의 인연
1월 18일. 고양에서 성화봉송을 하기 약 2~3시간 전. 그날 성화봉송에 임하는 주자들이 모처에 모여 사전교육을 받았다. 당시 박상영은 승마선수를 꿈꾸는 조태현 군(홀트학교)과 호흡을 맞췄다. 조 군은 몸이 조금 불편했다. 박상영이 세심하게 조 군을 챙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박상영은 "태현이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태현이 역시 나에게 궁금해하는 모습이 보이더라. 자연스럽게 얘기하다 보니 대화를 이어갔다"라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태현이에게 다른 인식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태현이에게 어떤 말이 상처를 주는 것인지 몰라서 조심스럽긴 했다"라고 보탰다. 타인을 배려하는 박상영의 배려심이 드러났다.
박상영은 "다음에 이런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또 하겠다"라고 말했다. "내가 처한 상황이 힘들지 않고, 여유가 있으면 하는 게 맞다"라는 입장. 다만, 그날 한 버스를 타고 성화봉송주자로 나선 산다라 박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는 "팬이다. 정신이 없어서 아예 못 봤다"라고 웃었다. 한편, 당시 기자의 모습에 대해 박상영은 "파이팅이 넘치셨다"라고 간략히 회상했다.
▲드미트리&정진선
박상영의 아름다운 마인드가 잘 드러나는 사건이 또 있었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남자 에페 결승. 당시 박상영은 드미트리 알렉사닌(카자흐스탄)에게 12-15로 패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7-12서 특유의 뒷심을 발휘, 12-13까지 추격했다.
결국 리우올림픽 결승처럼 대역전극을 일궈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결승 도중 햄스트링 통증으로 경기가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감안하면 최선을 다한 한 판이었다. 32강서도 사이이한 데리 레난다 푸트라(인도세시아)와 머리를 부딪히는 등 험난한 여정이었다.
결과보다 결승 도중 드미트리가 넘어진 박상영을 일으켜주고, 경기 후 박상영이 드미트리를 치켜세운 게 인상적이었다. 당시 박상영은 "내가 다쳐서 졌다고 말하면 그 선수에게 실례다. 실력 대 실력으로 졌다. 부상이 경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무슨 의미일까. 그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에 신경을 많이 쓴다. 사실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과정이 좋았다. 리우올림픽보다 디테일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사람은 말 한 마디를 조심해야 한다. 핑계를 대거나 변명을 하면 과정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라고 설명했다.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한다는 뜻. 그러면서 "드미트리와는 술도 같이 마실 정도로 친하다. 원래 매너가 좋은 선수"라고 밝혔다.
또 하나. 박상영의 펜싱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정진선이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정진선은 단체전 4연패가 좌절된 뒤 박상영을 포함,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정작 박상영은 "진선이 형 덕분에 사람이 됐다"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박상영은 "(나이)12년 차이가 난다. 선생님 같은 분이다. 승부근성이 뛰어나셨고, 디테일한 스타일이셨다. 나는 마인드는 강했지만, 디테일에 약했다. 혼도 많이 났고, 많이 배웠다. 사람을 대하는 법도 배웠다. 은퇴하셔서 너무 아쉽다"라고 돌아봤다.
▲피스트 밖의 삶, 피스트를 떠난 뒤의 삶
피스트 밖의 삶도 헛되게 보내지 않는다. 박상영은 펜싱 유망주, 팬들과 틈만 나면 호흡하려고 한다. 일례로 10월 27~28일 전국 클럽, 동호인 펜싱 대회에 모습을 드러내 팬 사인회도 열고, 펜싱 유망주들에게 덕담도 건넸다. 그는 "펜싱 클럽, 동호인 인구가 늘어나면 한국 펜싱의 자산이 된다. 그런 행사라면 발 벗고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동호인 펜서들, 초등학생 펜서들에게 애정이 담긴,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박상영은 "펜싱을 새롭게 시작한 아이들, 동호인들을 보면 코치에게 잘하는 방법을 전수받아 공장처럼 찍어내는 느낌이다. 그렇게 하면 어느 시점에 성적은 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 보면 겪어보지 못했던 위기를 맞았을 때 극복하지 못할 수 있다. 미완성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상영은 "나는 고집이 있다"라고 털어놨다. 교과서에 나오는 공식처럼 펜싱을 배우지 않았다. 자신에게 잘 맞는 기술과 전략을 끊임없이 연구했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계정상에 올랐다. 그는 "이기는 방법을 익히는 것도 좋지만, 어릴 때부터 창의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오래 걸리긴 하는데, 그만큼 단단해질 수 있다. 결국 잘 하니 인정을 받았다"라고 돌아봤다.
만 스물 셋 청춘. 그러나 선수생활을 오래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게 많다. 박상영은 "몸 상태를 보면 쉽지 않을 것 같다. 서른 둘 정도? 대신 선수생활을 하면서 석사, 박사 학위도 따보고 싶고 은퇴 후 교수도 해보고 싶다. 얼마 전 동호인들 경기를 보면서 내 이름을 걸고 펜싱 클럽을 차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미래의 일이지만, 기회가 되면 IOC 선수위원도 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박상영.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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