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다도의 세계에 입문하는 것은 우주의 섭리에 몸을 기대는 것과 같다. 하루가 반복되고, 계절이 돌아오지만 그 날과 그 계절은 사람의 성장에 따라 모두 다른 의미로 스며든다. 닫혀 있던 오감의 문을 활짝 열고, 온 몸의 세포를 자연의 흐름에 맡기면 ‘일일시호일’(매일 매일 좋은날)의 세계가 펼쳐진다.
대학에 입학한 스무살 노리코(쿠로키 하루)는 사촌 미치코(타베 미카코)를 따라 얼결에 이웃의 다케타(키키 키린) 선생에게 다도를 배운다. 무역회사에 들어가겠다는 꿈이 확실했던 미치코와 달리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던 노리코는 다도를 배우며 인생의 길을 찾아 나선다. 서른, 마흔이 넘어 가면서도 인생은 여전히 안갯속이지만 다도를 통해 어렴풋이 삶의 진실을 깨달아간다.
인생은 바로 알 수 있는 것과 바로 알 수 없는 것으로 나뉜다. 노리코는 초등학교 5학년때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스물살이 넘어 다시 봤을 때 인간이란 슬픈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다도’ 역시 ‘길’과 비슷하게 오랜 시간에 걸쳐 우려나와야 제 맛과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의식이다.
찻수건 두기로 첫 수업을 시작한 노리코는 갈수록 복잡하고 까다로워지는 다도의 예법을 낯설어한다. 계절이 몇 번 지나가는 길목 위에서 그는 형태를 먼저 만들고 그 안에 ‘마음’을 담는 다도의 세계에 조금씩 빠져든다. 머리의 ‘이성’이 아니라 몸의 ‘감각’으로 저절로 그렇게 되어가는 순간의 노리코 얼굴엔 행복이 깃든다.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며 출판사 입사시험에도 번번이 떨어지는 노리코의 모습에서 이 시대 청춘의 힘겨움이 겹친다. 그는 친구들이 취직, 결혼, 출산 등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며 불안감을 느낀다. 그러나 노리코는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을 긴 시간에 걸쳐 찾아내 깊은 맛이 배어나올 때까지 한 길을 걷는다. 다도가 가르쳐준 깨달음이다.
24절기를 나눠 각 계절에 맞는 다도를 가르치고, 차의 맛을 음미하면서 우주와 자연의 변화에 눈을 뜰 수 있게 해주는 다케타 선생은 인생의 모든 순간이 새롭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지난해 9월 타계한 키키 키린이 ‘어느 가족’에서 “다들 고마웠어”라고 했다면, 이 영화에선 “인생은 오직 한번 뿐”이라는 화두를 찻잔에 담아 남긴다.
‘일일시호일’은 키키 키린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전하는 ‘놀라운 선물’이다.
[사진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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