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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극본 김순옥 연출 주동민) 이전까지 배우 이수련(38)의 이름과 얼굴을 완벽히 매치시킬 수 있는 시청자는 많지 않았다. '청와대 1호 여성 경호관'이라는 설명이 더 익숙했다. 데뷔 6년 차, 이 순간 이수련이 만난 '황후의 품격'의 최팀장은 또 하나의 터닝 포인트를 선사한 선물 같은 존재다.
'황후의 품격'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최팀장이 키포인트로 작용한 바는 없다. 대신 매회 태후(신은경)와 함께 등장, 신스틸러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최팀장은 태후가 시키는 일이라면 어떠한 악행이라도 감행하는 인물로, 충직하지만 깨알 허당 매력도 장착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더욱 강탈했다.
또한 청와대 1호 여성 경호관 출신이라는 이수련의 특별한 이력이 그의 이름을 한번 더 곱씹게 했다. 이수련은 "예전에는 그 수식어에만 집중되다 보니까 그만 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덕분에 저를 인식시킬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됐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 이력 덕분에 최팀장과 저를 더욱 손쉽게 연결하실 수 있던 것 같아요. 또 달라진 점도 있어요. 예전에는 그 수식어가 먼저 언급된 뒤에 제 역할이 소개됐다면, 이번에는 '최팀장. 알고 보니 청와대 출신 경호원'이라고 소개가 됐어요.(웃음) 억지로 그 수식어를 떼려는 생각은 안 하려고 해요. 이번에는 역할이 비서팀장이기도 해서 그 이력이 더 조명된 거 같은데, 제가 새로운 역할을 하면 자연스레 다르게 보시지 않을까요? 나사 하나 빠진 역할도 좋을 것 같은데요."
이수련은 끊임없이 변주하는 삶을 살았다. "지나치게 낙천적이고 걱정 없이 사는 스타일의 성격 덕분"이었다. 매번 스스로 여러 갈래의 길을 만들고, 원하는 방향을 걸어왔다.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연세대 대학원 국제안보학과를 졸업한 그의 꿈은 당초 경호관도, 연기자도 아니었다.
방송 리포터 활동을 하다가 기자 혹은 PD에 관심이 생겨 이른바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중에 우연히 신문에서 '청와대 1호 여성 경호관' 공고를 보게 돼 호기심이 생겼다. 마침 한국사, 시사상식, 교양, 영어 등 경호관 시험과 '언론고시' 시험 과목이 유사했다. 운동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서 체력도 충분했다. 그 결과, 이수련은 2004년부터 10년 동안 청와대 경호실 최초의 여성 경호관으로 맹활약했다.
그러나 당시를 회상하던 이수련은 "열심히 했는데 어느 순간 '나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는데 흘러가는 대로 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라며 솔직히 털어놨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잖아요. 저 역시 영문학에 큰 뜻이 있어서 간 것도 아니고, 경호관도 그랬어요. 특별해보이긴 해도 제 미래를 그렸는데 정말 재미가 없는 거예요. 어떻게 살면 더 재미있게 살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어린 시절 연기가 재밌어 보였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어렸을 때 마음이라면 '난 왜 예쁘지 않지? 왜 끼가 없지?' 하는 고민만 했을 텐데, 지금은 연기자를 직업으로 느끼게 됐어요. 다양한 역할을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재미있는 직업이요."
이후 드라마 '피노키오'(2014) 단역으로 데뷔한 이수련은 셀 수 없이 많은 오디션을 거치며 '미녀 공심이'(2016), '다시 시작해'(2016), '푸른 바다의 전설'(2016), '욱씨남정기'(2016), '대박'(2016), '당신은 너무합니다'(2017),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2017), '비밀의 숲'(2017), '다시 만난 세계'(2017), '사생결단 로맨스'(2018), '여우각시별'(2018) 등 연기에만 매진했다. 대부분이 조, 단역에 그쳤지만 이수련은 짧은 순간에도 희열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경호관으로 살면서 저도 모르게 굉장히 절제된 게 많았어요. 감정 표현도, 웃는 것도, 소리를 지르는 것도 어색했어요. 처음에 연기를 시작할 때 표현이 안 되더라고요. 이 과정에서 그걸 깨트려나가면서 제가 몰랐던 저를 알게 됐죠. 그리고 사람들을 폭넓게 보려고 노력을 하게 됐어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에요."
안정적인 직업에서 떠나온 걸 후회한 적은 없을까. 이수련은 "후회는 전혀 하지 않는다. 저는 오히려 '안정적'이라는 표현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며 힘주어 말했다. 그는 "안 해본 걸 하는 것에 더 마음이 간다. 물론, 연기자로서 실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고 '그럼 뭘 하고 살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론은 '다 할 수 있다'라고 내린다. 안 되면 다른 거 하면 되지 않겠나. 연기에 있어서도 주인공이 성공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확실한 건, 지금은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라고 소신을 드러냈다.
적지 않은 나이, 조금씩 쌓여가는 경력. 그럼에도 이수련은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다. "비서팀장 역할을 했으니 다음에는 노는 언니, 백수 같은 웃긴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라고 연달아 너스레를 떨며 망가지는 배역에 욕심을 냈다. 그러면서 "대사가 없어도 좋다.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를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캐릭터를 소화하고 싶다. 큰 기회만 기다리면 지금 하고 있는 게 하찮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들이 잘 모여야 정말 큰 기회가 왔을 때에 살릴 수 있다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저는 예측불가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느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제 연기가 궁금하게요. 그리고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요. 연기를 통해서 다양한 인물이 되고 싶은 욕심도 있고, 아직 못 찾은 제 안의 모습도 찾고 싶어요. 지금은 '경호관 출신' 이수련, '황후의 품격' 최팀장 이수련으로 알려져 있지만 언젠가는 이수련 자체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한 배우가 될 날이 오지 않을까요?"
[사진 = 이수련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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