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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신소원 기자] "연기 32년동안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많았어요. 지금은 자존심에도 군살이 박혀서,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배우 서진원을 만났다. 그는 최근 영화 '배심원들'(감독 홍승완 배급 CGV아트하우스)에서 국선 변호사 역으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내막을 살펴보니, 연기 경력도 32년인데다가 직접 쓴 시나리오 속 국선 변호사를 연구하면서 얻은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생생한 캐릭터를 구현할 수 있었다.
이제 50세의 나이인 서진원은 지난 1999년 '박하사탕'을 통해 영화계에 데뷔해 '광복절특사', '황산벌', '실미도', '범죄의 재구성',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천군', '식객', '백야행', '광해, 왕이 된 남자', '집으로 가는 길', '좋은 친구들', '치외법권', '게이트', '1987' 등 그동안 다양한 작품 속에서 조·단역 캐릭터로 출연했다. 작품 속에서는 짧게 등장해 많은 관객들이 그의 극 중 캐릭터와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기 어렵지만, 주변에서 그를 알아봐주는 관객들의 모습에 힘을 얻는다.
롤러코스터 같은 우여곡절 배우 인생을 걸었던 서진원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그동안의 배우 생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 "상처가 많았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주인공과 많이 붙는 조연이라 체력적으론 엄청 힘들게 찍었는데 주인공 위주로만 나오잖아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원빈 씨와 투샷인데 맞는 장면만 나오니 얼굴도 안 나왔고, 포커스 맞추려고 줄자를 잴 때 저를 지나쳐서 주연배우로 줄자가 향할 때 상처를 받기도 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요. '광복절 특사'에서 간수2였는데 대사가 제일 많았어요. 리허설 때 대충 자리를 잡아놓는데, 다른 배우들이 점심 먹고 오면 매니저가 맡아주는데 저만 매니저가 없어서 자리를 빼앗기는 경우가 빈번했어요. 그래서 저는 자리를 맡아야 하니 점심을 안 먹게 됐고요. 애환이었죠."
많은 배우들을 인터뷰 해왔지만 서진원 배우의 리얼한 현장 속 이야기는 처음 들은 것이었다. 줄자가 자신의 앞을 지나칠 때의 배우로서의 박탈감이나 식사를 포기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자리는 누군가에게는 별 게 아닐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서진원에게는 소중했다. 힘든 시간들을 겪은 그에게 연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는지 물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많았죠. 지금도 '내 역할이 없으면 어쩌지'라는 걱정도 많이 들어요. 그런데 포기란 단어를 떠올리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만약 누군가 '연기 못하니 하지 마'라고 했다면 포기했었을 텐데, 주변 사람들이 '조금만 더 버텨봐, 넌 기회만 잡으면 할 수 있어'라고 하니 버티게 됐어요. 자존심에 군살이 너무 박혀서 이젠 어디가서 부끄럽거나 소위 말해 쪽팔리지 않아요. 그래서 어딜 가도 뭘 할 수 있어요."
그에게 새로운 목표가 있는지 묻자, 재일교포인 아내를 언급했다. 아내의 마지막 소원이 오사카에서 사는 것이라고 밝히는 서진원은 "더 훌륭한 연기자가 돼서 아내를 위해 일본에 살면서 한국으로 촬영을 오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과 동갑이거든요. 50살이 되면서 새로운 인생 목표라고 하면, 그 전엔 연기자가 될까 작가가 될까 힘들어했다면 지금은 연기자로서 쭉 가는 목표를 설정했어요.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연기력을 갖추는 데 인생 2막의 목표예요. 후배들도 제게 연기에 대해 많이 물어보는데, 힘들어할 때는 제가 예전에 겪었던 고통들을 전해줘요. 그리고 두려워하는 후배들에게 '지금 네 위치가 너의 실력'이라고 말해요. 두려워하고 좌절하는 시간에 차라리 실력을 쌓으라고 말해줘요."
서진원은 데뷔작 '박하사탕'에 이어 '배심원들'을 통해 오랜만에 문소리와 다시 만났다. '박하사탕'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한 문소리와의 작업을 떠올리며, 과거 그를 회상했다.
"'박하사탕'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오디션 보러 가는 친구가 술을 많이 마시고 우리 집에서 잤거든요. 오디션장까지 태워달라고 갔는데, 저도 심심한 차에 오디션을 봤는데 그 친구도 됐고, 저도 됐어요. 전 분대장 역을 했는데, 그 때 문소리 씨를 처음 봤어요. 실제 군용 트럭을 가면 문소리가 오면 환호성을 치는 장면이었어요. 군대에 갔다는 생각으로 메소드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이어 국선 변호사와 재판장으로서 '배심원들'을 통해 다시 만난 문소리에 대해 그는 "정말 반가웠다"라며 얼굴에 화색을 보였다.
"'박하사탕' 때는 문소리 씨가 주인공이라 말을 못 걸었어요. 그런데 세상에 '배심원들'에서 만난 거예요. 너무 반가웠고 작품을 꼭 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했다는 얘기를 나눴어요. 국변에 대해 조언도 많이 해주고, 좋아해줬어요. 문소리 씨에게 고마운 건, 제가 연기하면 너무 좋다면서 응원과 격려를 해준 거예요. 그래서 나온 게 극 중 제가 삐지는 장면이 있는데 문소리 씨가 잘 받아줘서 장면이 잘 살았어요. '배심원들' 조한철 씨도 '박하사탕'에 나와서, 같이 재회 사진을 찍었어요."
서진원은 '배심원들' 속 모습보다 훨씬 살이 빠지고 날렵해진 모습이었다. 그에게 이유를 묻자 '멜로'에 도전하기 위해서라도 말했다. 그동안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왔던 서진원은 배우 2막의 초입에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 엘아이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신소원 기자 hope-ss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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