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이후광 기자] 6월의 첫날 4이닝 13실점 악몽을 겪었지만 좌절은 없다. 비온 뒤에 땅이 굳듯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다승 토종 단독 선두로 올라선 이영하(22, 두산)다.
이영하에게 2019년 6월 1일은 야구를 시작하고 가장 힘든 날이었다. 수원에서 KT를 만나 4이닝 동안 15피안타(2피홈런) 4볼넷을 허용하며 무려 13점을 헌납했다. 경기 전 토종 평균자책점 1위, 다승 2위로 순항 중이었지만 1회 4실점을 시작으로 로하스에게 3점홈런 두 방을 맞는 등 난타를 당하며 KBO 역대 한 경기 최다 실점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잠실에서 만난 이영하는 “야구 하면서 그런 경험은 없었다. 허무했다”고 쓴웃음을 지으며 “솔직히 계속 맞으면 기분이 안 좋다. 그러나 초반부터 승기가 넘어가 나 때문에 졌다는 생각으로 던졌다. 불펜 소모를 줄이기 위해 무조건 길게 던지고 싶었지만 그날은 마음처럼 안 됐다. KT 타자들의 컨디션이 좋았고 공이 자꾸 가운데로 몰렸다”라고 6월 1일을 회상했다.
당시 김태형 감독은 “이영하가 1회부터 전력투구를 하지 않았다”고 부진의 원인을 진단했다. 이영하도 이를 시인했다. 그는 “나름대로 초반이라 볼넷도 주기 싫고 맞춰 잡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며 “이제는 맞춰 잡기보다 삼진을 잡는다는 생각으로 힘 있게 던진다. 또 타자가 그걸 알아서 쳐주면 자연스레 맞춰 잡는 투구가 된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한다”고 설명했다.
13실점을 했지만 상실감은 없다. “시즌을 치르다보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경기”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좌절을 극복했다. 그는 “오히려 그 동안 잘해놔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었다. 상실감은 없었다”며 “내가 어떤 기록의 1위가 아니었고, 기록 자체를 신경 쓰는 편도 아니다. 그냥 그런 날이 있는 것 같다. 초반에 내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한 번 이렇게 된 것 같다”고 웃었다.
이영하는 그렇게 다시 일어섰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다. 언제 13실점을 했냐는 듯 7일 잠실 키움전(6이닝 1실점)과 13일 대전 한화전(6이닝 2실점)에서 연달아 호투하며 연승을 달렸다. 시즌 기록은 13경기 8승 1패 평균자책점 3.63. 리그 에이스 김광현(SK), 양현종(KIA)을 제치고 다승 토종 단독 선두(리그 3위)로 올라섰다.
이영하는 “키움전은 1회부터 전력투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후회 없이 던지고 싶었다”며 “후회 없이 매 타자를 상대한다는 생각으로 던지니 5회가 훅 지나갔다. 6회 첫 실점했지만 전력투구에 대한 생각은 그대로였다. 포수 미트만 보고 세게 던졌는데 이닝을 쉽게 소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영하는 KT전을 통해 안일했던 자기 자신을 반성했다. “그날이 도움이 됐다”고 운을 뗀 그는 “시즌 초반 조금 안일한 면이 있었다. 아무래도 6승이란 게 적은 승수가 아니기에 ‘이 정도면 됐겠지’라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다”며 “KT전을 통해 긴장감을 다시 얻었다. 시즌 중간에 잠깐 잘한다고 안일해지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앞으로 어떻게 운동을 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이영하의 13실점으로 인해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건 김태형 감독이다. 이른바 ‘벌투 논란’에 휩싸이며 팬들로부터 질타를 받아야했다. 그러나 이영하는 김 감독과의 꾸준한 소통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님이 항상 ‘경기에만 집중하라’는 조언을 해주신다. ‘그렇게 던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 왜 능력을 갖추고도 지냐’며 아쉬워하신다. 아마 KT 경기 때 감독님도 화가 많이 나셨을 것”이라며 “사실 감독님 말씀대로 하면 결과가 나쁘지 않다. 내가 잘해야 팀도 좋고, 나도 좋고, 감독님도 좋다. 감독님도 내가 잘하길 바라지 절대 못하길 바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성장통을 제대로 겪으며 다시 일어선 이영하. 이제 다음 목표는 다승왕, 방어율왕도 아닌 태극마크를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그는 “솔직히 욕심이 있다. 올해처럼 잘할 때 가야한다”고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지치지 않고 좀 더 치고 올라가면 뽑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의식하면 내 체력이 안 될 것 같다. 프리미어12, 올림픽을 떠나서 국가대표를 한 번 꼭 해보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영하. 사진 = 잠실 이후광 기자 backlight@mydaily.co.kr, 마이데일리 DB]
이후광 기자 backligh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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