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머니’, 최악의 금융스캔들 파헤치는 뜨겁고 묵직한 돌직구[MD리뷰]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사건 앞에서는 위 아래도 없고, 물불 안 가리는 서울지검의 문제적 검사 양민혁(조진웅)은 자신이 조사를 담당한 피의자가 자살하는 사건으로 치명적 위기에 처한다. 누명을 벗기 위해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수사를 펼치던 그는 피의자가 대한은행 헐값 매각사건의 중요 증인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금융감독원, 대형 로펌, 해외펀드 회사가 얽히 거대 비리의 실체와 마주한 그는 상대편 변호사 김나리(이하늬)와 ‘적과의 동조’를 펼치며 금융스캔들을 파헤친다.

‘블랙머니’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극화한 범죄 실화극이다. 오랜 시간 진행된 사건인만큼 자료가 방대하고, 연루된 인물도 많아 대단히 복잡한 사건이지만 정지영 감독은 범죄드라마 형식을 차용해 2시간 동안 빠른 속도감으로 거침없이 전진한다. 자산가치 70조 은행이 1조 7,000억원에 넘어간 희대의 금융 스캔들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관객의 공분도 쌓여간다.

무모하게 들이받는 양민혁 검사를 통해 금융 비리 사건의 전모를 알기 쉽게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조진웅은 좌충우돌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하는 연기로 흥미를 유발한다. 해지펀드 측을 옹호하던 김나리 변호사는 사건의 본질을 파악한 뒤 흔들리게 되는데, 그의 존재는 금융 상류층이 어떤 네트워크로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이하늬는 전작 ‘극한직업’과는 전혀 다른 차가운 매력으로 금융 자본주의의 숨겨진 위험을 드러낸다.

정지영 감독은 언제나 대한민국 사회와 역사의 이면을 추적했다. ‘남부군’ ‘하얀전쟁’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등 화제작과 ‘천안함 프로젝트’ ‘직지코드’ ‘국정교과서 516일:끝나지 않은 역사전쟁’ 등 다큐멘터리 제작은 그의 카메라가 어느 곳을 향해왔는지를 뚜렷하게 증명한다. 그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 카메라를 들었고, 시대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영화엔 진실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격렬하게 요동친다.

희대의 ‘먹튀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피해자만 양산한 채 대중들의 기억 속에 사라져 갔지만, 5조원의 소송이 걸린 최악의 금융스캔들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블랙머니’는 잊혀진 사건을 전면에 소환한 뒤 분노의 방아쇠를 당긴다. 양민혁 검사가 울분을 토하며 쩌렁쩌렁 외치는 목소리는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한국 상류층 엘리트를 저격한다. 영화가 끝난 뒤 무심하게 올라가는 자막을 읽으면 당신의 몸이 부르르 떨릴 것이다.

[사진 제공 = 에이스메이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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