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종합
호남의 정신 순창
조선 중기 명기(名技)이자 불세출의 예인 황진이가 사모했던 서거정이란 선비는 순창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던 모양이다. ‘순창은 호남의 승지(승지)로 산수의 아름다움과 논밭의 풍요로움, 금어(禽漁)의 넉넉함이 있다“라고 극찬한 걸 보면 말이다. 섬진강과 강천산이 서로의 뿌리를 부여잡고 천혜의 풍광을 만들어 낸 덕에 영화 <아름다운 시절> 등 수작(秀作) 촬영지로 잘 알려진 순창은 요즘 장수의 고장으로도 급부상하고 있다.
순창사람들은 ’순창의 물길은 다른 고장으로 새지 않고 모두 모여 섬진강 발원지로 향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섬진강의 발원지가 순창이라는 걸 이런 말로 대신하는데. 순창은 섬진강, 강천산 이외에도 천혜의 ’바람 온도‘를 보유한 고장이다. 물길 따라 산길 따라 순창을 감싸는 바람의 온도는 연평균 13도의 기온을 보인다. 그리고 안개일수는 약 77일 정도. 발효식품을 만드는 데 최적의 조건이다. 전통적으로 대를 물려 이어 온 어머니의 고추장맛을 내는 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물맛과 바람의 맛, 거기에 발효하기 딱 좋은 기온을 지니고 있으니 <순창 장류>가 유명세를 떨 칠 수 밖에 없다.
순창 밖에 있는 세계는 날씨가 변덕을 떨고 산천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순창 만큼은 발효 식품에 애오라지 첫정(情)을 이어간다. 옛 사람들은 호남정신의 반은 순창에 있고, 순창 정신의 반은 회문(回門)에 있다고 했다. 회문(回門)은 바로 순창 회문산을 이르는 말. 회문산은 짠한 역사를 지닌 곳으로 순창의 아픔을 상징한다. 조선시대에는 의적(義賊) 많았다고 하고, 구한말에는 의병의 고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6.25 한국 전쟁 당시에는 조선노동당 전북도당의 근거지가 되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고장에서 ’한국 전통음식 맛‘의 원천인 장류 축제가 열리니 한국다운 ’매운맛‘의 의미가 저절로 되짚어진다.
제14회 '순창 장류축제' & ’순창세계발효소스박람회' 슬로건
호남 정신의 시그니처라고 일컬는 전라북도 순창에서 지난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제14회 순창장류축제가 열렸다. 올해는 특히 장류 축제와 더불어 순창 세계 발효소스 박람회가 같이 개최되어 순창은 물론이고 인근 고을까지 북새통을 이뤘다. 이번 축제의 슬로건은 '천년의 장맛, 백 년의 미소'! 어딘지 좀 애매한 슬로건이다 싶다. 천년의 장맛은 딱 맞는 팩트지만 백년의 미소는 어디가 갖다 붙여도 무방한지라 많이 아쉬웠다. 축제의 성패 10%는 슬로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로건이 귀에 딱 꽂히면 축제 콘텐츠도 슬로건에 맞게 착착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슬로건이 좀 애매하면 무엇을 갖다 붙여도 무방한 것 같아 무난한 콘텐츠를 구현하곤 한다. 이럴 경우 콘텐츠가 중구난방이 되고, 관람객 입장에서는 보고 즐겼는데 가슴에 남는 게 없다는 불만을 터뜨릴 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쓴 소리를 하면 제14회 '순창 장류축제' & ’순창세계발효소스박람회'를 만든 축제관련자들이 ‘사돈 남 말 한다’고 핀잔을 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축제를 마치고 나서 반드시 들어봐야 할 이야기는 쓴 소리다. 내 눈에 들어 있는 대들보는 못 봐도 남의 눈에 들어 있는 티끌은 눈에 띄는 법. 내가 놓치고 있는 2%를 정확히 콕 집어 준다면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번 '순창 장류축제' & ’순창세계발효소스박람회'에서 슬로건을 좀 더 옹골차고 순창답게 잡았더라면 3일간 행사와 체험 종류도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모자람이 없었던 순창 고추장 진상 행렬
축제에서 주민들이 동참한 ‘행진 퍼포먼스’는 일석이조가 아닌 일석십조 이상의 효과를 창출한다. 행렬에 적극 참가 함으로써 전 국민이 모두 보러 오는 축제장에서 ‘내가 바로 주인공’이라는 주인을 갖게 되고, 자긍심 또한 높아지기 때문이다. 주민의 마음 속에 이런 긍정 마인드가 자리잡으면 가지 나무에서 수박이 열리는 횡재가 저절로 따라온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세상이지만 노력만 하면 마음 먹은대로 세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순창 장류축제'에서 선보인 <순창고추장진상행렬>은 재미와 동참의 즐거움, 그리고 과거로의 시간 여행 체험 등 다양한 가치를 창출한 참 좋은 퍼포먼스였다. <순창고추장진상행렬>은 개막 첫날에 이뤄졌다.
축제 첫날인 10월 18일 최용범 전북도 행정부지사와 황숙주 순창군수, 임환 전북도민일보 사장과 조용식 전북경찰청장을 비롯해 도내 14개 시군 단체장 등이 참석해 성공적 행사를 기원했다. 그리고 개막식 퍼포먼스로 조선시대 임금님께 고추장을 진상했던 과거의 모습을 오롯히 재현, 축제장을 찾은 관람객은 물론이고 순창 주민에게 순창 고추장의 유구한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을 선물했다. 황숙주 순창군수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조선 시대 지방관으로 분해 아전과 함께 임금님 수랏상에 순창고추장을 진상하는 장면은 개막식 대미를 장식하는데 손색이 없었다.
임금님께 바치는 먹거리 진상물품은 ‘정성이 가득 들어간 귀한 음식’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지금도 지역 특산물 마다 ‘임금이 잡쉈던 음식’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있는데 고추장은 순창이 최고였던 모양이다. 진상은 형식상으로는 각 도가 진상의 단위가 되었으나 실제로는 각 주현에서 분담하였다. 순창 고추장을 진상할 때도 현감을 비롯한 아전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장독을 열어 고추장 맛을 보았을 터. 이번 축제에서 <순창고추장진상행렬> 퍼포먼스를 한 것은 전북 순창이 한민국의 대표 먹거리 고추장의 본고장임을 여실히 증명한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유망축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고추장, 조선장, 된장 등 장류를 테마로 다양한 체험거리와 볼거리, 푸짐한 먹거리로 관람객의 오감을 만족하는 순창 장류 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 유망축제로 선정되었다. 해마다 순창고추장민속마을 일원에서 펼쳐지는 순창장류축제는
순창 군민에게는 고추장 본고장이라는 자부심을 갖게하고, 관람객에는 장류의 맛과 멋, 그리고 잊혀져가는 전통장류문화를 느끼게 하는 소중한 체험장이다.
해마다 다양한 체험과 공연, 경연, 전시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방문객이 직접 참여하고 함께 즐길 수 있어 화합의 축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세대공감형 축제로 소문이 났다. 올 해 치러진 순창 장류 축제는 다른 해와는 달리
‘순창 세계 발효 소스 박람회'가 함께 치러지면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순창 세계 발효 소스 박람회가 같이 열리다 보니 축제장 규모는 물론이고 콘텐츠도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많아 무엇을 즐겨야 할지 헷갈릴 정도였다. 축제와 박람회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열리면 좋은 점도 있지만 효과가 반감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운영의 묘인데 이번 축제에서 운영진에 대한 불만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체험 부스는 많았는데 안내원들이 체험 부스 위치를 잘 몰라 관람객들이 많이 헤맸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체험부스 지도인데 이또한 미흡했다. 관람객이 따져 물으니 ’뒤늦게 참가한 체험부스들 때문에 지도를 만들이 못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는 것. 안내원 수를 대폭 늘이고 부스 안내를 잘 할 수 있도록 교육을 했더라면 체험부스 지도가 없더라고 편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또 VR 체험관도 말이 좀 있었던 것 같다. VR로 요리를 해보는 체험관 설치는 좋았으나 안내원 교육을 충분히 해서 불만의 소지를 없앴더라면 금상첨화가 아니었을까?
축제는 아무리 잘해도 뒷말이 남기 마련이다. 뒷말이라는 게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는데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 그 점은 정말 시정해야 돼“라는 말이 나오면 안 된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했다라는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하는 게 총감독의 역할이다.
현재 순창 장류 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 유망축제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한민국 명품 축제로 우뚝 서야만 지난 14년의 노력이 빛을 발할 것이라고 본다. 미숙한 운영으로 ’장맛은 좋은데 뚝배기가 영 아니다‘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찌되겠는가..?
내년 축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
제14회 축제가 성황리에 종료되고 나서 황숙주 순창군수는 “이번 장류축제와 소스박람회는 관광객 및 바이어들의 참여로 축제의 산업적인 성과까지 거뒀다”라며 “앞으로도 축제를 통해 지역산업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벅찬 소감을 피력했다. 축제와 박람회를 겸해 개최한 덕분에 관광과 산업 두 마리 토끼 잡은 셈인데 “과연 2020년 축제에서도 이런 성과를 거둘수 있을까” 반신반의하게 된다. 잘 나갈 때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축제전문가 시선으로 볼 때 순창 장류 축제가 바로 그 시점을 맞이 했다.
올 해 순창 장류 축제는 콘텐츠는 푸짐했지만 다른 축제에서도 만날 수 있는 그럭저럭한 평균 수준의 콘텐츠였다. 이벤트 무대에서 열린 ’고추장 매운맛대회‘ ‘치유벗 모두의 숲 프로그램’ ‘이혜정 쉐프의 쿠킹쇼’ ‘유명 BJ ‘한나’의 유튜브 쇼, 송가인이 출연한 무대 등 볼거리는 풍성했지만 어디선지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아쉬움이 크다.
이제 ‘순창 장류 축제’는 근본적인 변화가 절실하다. 전통에서 출발한 축제는 변신의 묘책을 초심에서 찾는 것이 상책이다. 많은 지역축제 총감독을 역임한 필자는 순창 장류 축제 성공의 조건이 1979년 5월 1일에 순창읍으로 승격되었던 당시에 있다고 본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임금님께 진상했던 고추장 맛과 문화를 지난 역사에서 뽑아낸다면 그야말로 신선한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로 돌아가 조선시대와 미래를 아우르는 콘텐츠, 상상만해도 짜릿하다. 온고지신의 지혜는 미래로 가는 튼튼한 징검다리임을 순창이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 문득 든다.
필자 소개
함양 산삼축제 총감독
보성다향대축제 총감독
마포나루새우젓축제 총감독
남해 보물섬마늘축제 총감독
양구배꼽축제 총감독 ...
지리산 산청 곶감 축제 총감독
귀주대첩 1,000주년 2019 관악 강감찬 축제 총감독 .. 外 다수 역임
서울정원박람회
사랑의 행복콘서트 가요제
김제 효(孝) 콘서트
김정연의 효(孝).행복 콘서트 .. 外 다수 연출
축제관련 TV토론. 라디오 출연. 포럼 패널. 강연 활동
KBS. TV 조선. MBN 등 토크쇼 출연
(現)한국축제문화진흥협회 위원장
(現)파주시 정책 자문위원 (문화경제분야)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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