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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 세종, 조선의 기술을 진보시켰던 장영실. 두 사람이 단순한 리더, 인재 사이 혹은 군신 관계가 아닌 가장 가까웠던 벗이었다면?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이하 '천문')은 이러한 흥미로운 물음에서 시작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덕혜옹주'(2016) 등을 연출하며 섬세한 심리 묘사에 능한 감독으로 평가 받은 허진호 감독은 '천문'을 통해 다시 한번 제 장기를 발휘했다.
명나라가 아닌 조선만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은 보다 활발한 연구 활동을 위해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관노 출신인 장영실을 면천했고, 함께 조선 과학의 황금기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발명품들을 만들어냈다. 세종은 내관보다도 장영실을 가까이 뒀다고. 그러나 장영실은 세종 24년 '안여 사건'(장영실이 감독한 안여가 허물어진 사건) 이후 기록에서 사라진다. '천문'은 이 역사의 빈틈에 주목하여 상상력으로 채웠다.
세종은 아라비아에서 가져온 물시계 그림을 그린 장본인이 장영실이란 걸 찾아낸 뒤, 자신의 곁에 두기 시작한다. 상상만 했던 조선의 시간을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이 장영실이었기 때문. 고개 하나 쉽게 들 수 없던 장영실은 격 없이 자신을 전폭지원해주는 세종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느끼고, 두 사람은 발명품 하나에도 아이처럼 즐거워하며 마음을 나눈다.
"신분이 무슨 상관이냐.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게 중요하지"라며 장영실을 제 옆에 뉜 세종은 그와 함께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백성을 위한 마음을 공유한다. 북극성이 왕의 별이라는 장영실에 그 옆의 작은 별을 장영실이라고 칭하는 세종은 다정하고, 그런 세종을 바라보는 장영실은 애틋하다. 간혹 자신을 멀리하는 세종에 장영실은 천진한 얼굴로 질투를 하기도 하는데, 세종은 물어 꾸짖는 대신 인자한 웃음으로 달랜다. 상하 군신 관계를 넘어선 벗이다.
이와 관련해 허진호 감독은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세종이 장영실을 내관과 같이 가까이 뒀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렇다면 강녕전에서도 계속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겠나. 그래서 벗이라고 생각했다. 장영실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세종을 보며 고마워했을 것 같고, 목숨까지도 버리지 않았을까. 실제 있었던 일에서 유추한 영화적인 상상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천문'은 '안여 사건' 이후의 장영실을 묘사할 때도 세종과의 우정을 기반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펼쳐 흥미를 자극한다. 허 감독은 이러한 전개에 대해 "세종은 신하가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내친 적이 없다고 나와 있다. 인재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기록에서 장영실이 사라졌고,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일지 상상했다. 벗이었던 두 사람이면, 그런 전개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세종과 장영실의 긴밀한 관계성에 상상력이 가미되었을 뿐, 천문에 대한 재현은 철저한 고증을 통해 진행됐다. 두 천재의 위대한 발명품들은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져 생생한 맛을 살린다. '천문' 측은 천문의기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부단히 공을 들였다. 간의대, 자격루, 안여 제작을 위해 방대한 연구 자료와 서적을 모두 탐독했고 철저히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특히 천문의기의 핵심인 천문 관측기구 간의와 간의대 제작과 관련해 허 감독은 "영화 속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고 한 달 이상의 제작 기간이 필요했다"며 "간의 역시 그 원리를 탐구하면서 오랫동안 작업해 완성했다"고 밝혔다.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서준 박사는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인 자격루의 원리가 설득력 있게 화면상 잘 드러났다"며 "1년의 길이를 측정하고, 24절기를 관측할 수 있는 규표,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천문 관측기 혼천의 등의 작동 원리도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던 바. 숨겨진 역사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 완성도 있는 역사 구현 등은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6일 개봉.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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