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허진호 감독이 배우 최민식, 한석규에 대한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천문'은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한석규)과 장영실(최민식)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다. 세종에게 발탁된 뒤 여러 발명품을 만들어냈지만 '안여사건'(세종 24년 장영실이 만든 안여가 허물어져 장영실이 국문을 받은 일) 이후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진 장영실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했다.
허진호 감독이라 달랐다. 수많은 업적을 세운 역사 속 두 위인 세종과 장영실을 두고 눈부신 업적과 의미 있는 기록 대신, 인간적인 감정을 이야기한다. 애틋하고 다정하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을 통해 발휘됐던 섬세한 강점이 '천문: 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를 통해 다시 한번 긍정적으로 발휘됐다.
조선시대에서 가장 위대한 성과를 만들어낸 세종과 장영실에 눈을 돌려 두 사람의 감정을 끈기 있게 관찰했다. 허 감독의 손에서 탄생한 두 천재는 한없이 어린 아이 같아서 새롭다.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만났던 예민한 세종대왕 대신, 같은 꿈을 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장영실을 곁에 둔 과감하고 인자한 세종의 모습이 담겼고 이런 세종에게 무한한 충성심을 보이며 오롯이 그의 곁에 머무르고 싶은 순수한 장영실이 그려졌다.
장영실과 세종의 새 얼굴이 오롯이 표현된 건, 오랜 우정을 이어온 최민식과 한석규의 남다른 호흡 덕분이다. 영화 '쉬리'(1999) 이후 20년 만에 재회한 이들은 '천문' 배역도 서로 논의해서 정했다.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2011)에서 이미 세종을 연기한 바 있는 한석규는 다시 한번 세종에 도전하고 싶어 했고, 최민식은 이를 받아들여 남은 장영실을 가져갔다.
이에 허 감독은 "두 분이 그냥 같이 연기를 하고 싶어 하셨고, 그걸 알고 있었다.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나. 감정들이 중요하다. 그냥 군신 관계가 아닌 더 깊은 관계 묘사가 필요했다. 그래서 둘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사실 두 배우를 각각 세종과 장영실에 대입했는데 다 잘 어울렸다"라고 캐스팅 일화를 전했다.
"두 배우의 스타일이 정말 달라요. 최민식 배우는 현장에서도 표출을 하는 스타일이에요. 스태프들과 농담을 하고 에너지를 바깥으로 분출하는 사람이라면, 한석규 배우는 에너지를 안에 가지고 있다가 연기할 때 딱 들어가요. 그런 걸 봤을 때 세종의 냉철함이 한석규와 잘 맞지 않을까 싶었어요. 또 장영실의 열정과 해맑음, 귀여운 모습이 최민식 배우와 딱 맞고요. 촬영장에서도 '이렇게 귀여운 모습을 처음 봤다'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다만 세종을 다시 연기하는 한석규에 대한 우려는 없었을까. 소화력은 보장됐지만 자칫 익숙함이 독이 될 수도 있어 연출자로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허 감독은 "안 그래도 물어봤다. 다르게 할 수 잇겠냐고. 다르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믿었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한석규 배우는 굉장히 스마트한 배우다. 똑똑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할지 전부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고 표현하며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현명하고 재밌는 배우다. 혼자서 연기를 하다가 '이거 아니야'라며 고개를 젓고, 스스로 컷을 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 할 때는 대화가 많지 않았는데 이젠 많이 한다. 저는 그 때 신인 감독이기도 했고. 그런 부분들이 참 좋다. 마침내 다시 만나서 작업하게 돼 기쁘다"라고 굳건한 믿음을 전했다.
최민식에 대해서도 "최민식 배우와도 언제 함께 작품을 하나 싶었다. 최민식은 '진짜'다. 진정성이 있다. 보통 '연기'를 한다고 하는데, 최민식은 그 순간 실제 인물이 된다. 정말 화난 것 같고, 슬프고, 웃고, 분노한다. 연기의 느낌 없이 날 것처럼 느껴진다. 대단한 힘이다. 이번에도 천진난만한 최민식의 본래의 모습이 나왔고 캐릭터로 가져갈 수 있어서 감독으로서 기쁘다. 또 작품 속에서 그런 최민식의 모습을 발견하기 힘들지 않았나. '천문'에선 보여진다"라고 흐뭇해했다.
최민식과 한석규, 두 명배우를 한 스크린에서 보는 건 관객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지만 이를 현장에서 지켜보는 감독에게도 뜻 깊은 순간이었다. 허 감독은 "원하는 장면이 모두 나왔지만 '컷'을 못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으며 "환복을 하고 세종과 장영실이 만나는 장면이 있지 않나. 전주 세트장에서 찍었다. 원래 촬영하기 전에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두 분이 '해보겠다'며 이야기를 계속 나누시더라. 그러더니 '보여드리겠다'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현장에서 정말 몰두하면서 봤다. 저는 그 정도까지의 감정을 생각 못했는데, 그 이상의 것을 보고 있자니 컷을 못하겠더라. 디테일이 참 좋았다. 분명 같이 웃는데 짠했고, 좋았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장영실은 세종이 자신을 버렸을 거라고 생각하며 삐져있던 상태에서 세종과 만나게 돼요. 그런데 세종은 그냥 웃어요. '안여 사건'의 진실을 말하면서도 가볍게 농을 던지듯 말하는데, 참 짠했어요. 감정이 잘 드러났어요. 저는 편집하고, 후반 작업하면서도 지겹게 보는데 못 봤던 표정들을 발견할 때가 많아요. 몰랐던 디테일을 발견하는 맛이 있어요."
허 감독은 더 많은 장면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특히 장영실이 아끼는 관노인 사임 역의 전여빈은 역할이 대폭 축소돼 궁금증을 낳기도. 그는 "사임 역도 전여빈 배우가 아니었으면 지나갈 역할일 뻔 했다. 영화 내에서 장영실이 제자처럼, 수양딸처럼 삼았는데 편집이 됐다"고 전했다. 또 "꿈 속과 같은 곳에서 다시 만나는 장영실과 세종의 모습을 에필로그로 찍어놓기도 했는데, 생략을 하면서 뒷부분이 다 사라졌다. 이 장면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다"라고 전했다.
영화 '백두산', '시동' 등 한국 영화가 오랜만에 기지개를 피며 강세를 보이고 있는 12월 극장가다. '천문'도 흥행 욕심을 노려볼 만 하다. 그러자 허 감독은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 중이다"면서도 "잘 됐으면 좋겠다. 최민식, 한석규가 나왔는데 재밌다. '백두산'의 김병서 감독과 '호우시절' 때 함께 하기도 했다"며 "둘이 만나서 우리 둘 다 잘 되자고 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신분을 초월한 우정에 잘 집중해 봐주시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연기를 보는 맛이 있어요. 최민식, 한석규뿐만 아니라 허준호, 신구, 김홍파, 임원희, 윤제문, 김태우 등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에요. 다시 못 볼 조합이에요."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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