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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이름만큼이나 맑은 미소가 얼굴에 만연했다.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이라지만 어딘가 초연해 보이는 배우 강말금(42)에게서 선명한 강단과 내공이 느껴졌다. 찬실이가 스크린에서 튀어나와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강말금은 더 큰 세상으로 들어왔다.
강말금의 장편영화 데뷔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감독 김초희)인생 최대의 위기, 극복은 셀프! 행복은 덤! 씩씩하고 '복' 많은 찬실이의 현생 극복기를 담은 영화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CGV아트하우스상, KBS독립영화상을 수상하며 무려 3관왕에 올랐고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제22회 우디네극동영화제, 제15회 오사카아시안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일찍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인생 최대 위기를 그린 영화인데, 조금도 울적하지 않다. 갑작스러운 실직을 당한 찬실이의 상황이 나의 일처럼 다가와 애잔하다가도 결국 대수롭지 않게 다음 걸음을 내딛는 찬실이를 보면 절로 웃음 짓게 된다. 내면에서 끊임없이 꿈과 현실을 두고 갈등하지만 분출시키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자신을 들여다본다. 조급하게 내달리기보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천천히 걸어간 결과, 찬실이는 자신 앞에 놓인 새로운 환한 빛을 발견하게 된다.
관객들은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인생의 크고 작은 굴곡 앞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씩씩하게 삶을 마주하는 찬실이를 보며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그 여정엔 강말금이 함께 했다. 영화제에 선공개되면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체감하고 있다던 강말금은 "사진도 많이 찍고 싸인도 많이 해드렸다. 인기 있는 연극을 한 적도 있는데 느낌이 다르다. 개봉도 처음이라 신기하다. 미진한 부분이 많은데도 제가 칭찬을 너무 많이 받고 있다"며 쑥스러운 듯 말했다.
"무엇보다 장편은 처음이라 낯설었어요. 촬영 중에 쉬는 날이 많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주연으로서 필요한 걸 정리했죠. 먼저 흐름을 만들어야 했어요. 찍을 땐 순서대로 안 찍잖아요. 그래서 혼자서 리딩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체력이 필요했는데, 촬영 2주 전부터 각종 영양제를 사놨어요.(웃음) 원래 제가 낮잠을 많이 자는 타입이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훈련도 했고요. 그럼에도 쉽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유지하려고 애썼어요."
찬실이를 몸에 투영시키기 위해 강말금은 연극 시절부터 해온 대본 필사도 꼼꼼하게 했다. 그는 "반복적으로 하면 지루하긴 하지만 필요한 작업이다. 눈으로만 읽으면 선택적으로 보인다. 필사를 하게 되면 못 봤던 단어를 발견한다. 그래서 '강말금화' 된 찬실이가 탄생했다. 다른 분이 했다면 전혀 다른 찬실이가 나왔을 거다. 물론 실제 저와는 다른 모습도 많다. 솔직히 저라면 영(배유람)에게 보자기에 도시락을 싸가는 행동은 안 했을 거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독립영화지만, 코믹이 강점이다. 특별한 코믹 요소 없이 시시콜콜한 대화들만 나누는데 웃음이 삐져나온다. 강말금의 오묘한 사투리도 관전 포인트다. 강말금은 "시나리오를 보면 재치 넘치는 대사가 많았다. 하지만 연기할 땐 일부러 웃기려고 해선 안 되겠더라. 그래서 저는 그냥 진지하게 했다. 웃긴 상황을, 카메라가 담고 있으니 재미가 터졌다. 다만 리딩 때부터 '이건 내가 웃길 수 있겠네'라는 지점들도 있긴 했다. 선술집에서 영에게 화를 내는 장면, 한 번만 안아달라고 하는 장면, 장국영(김영민)과 만나는 장면 등이 그렇다. 그건 다음 수가 보여서 자신 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30살까지 사투리를 썼어요. 그 때 사투리와 지금의 사투리는 다르고요. 이 영화 현장에 포항 사람, 대구 사람들이 있어서 그 지역 사투리가 다 섞여있죠. 그럼에도 제가 대사를 치고 나면 끝이 일정했어요. 감독님은 말의 리듬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고, 그래서 다시 촬영했죠. 어떤 관객 분들은 '찐부산' 사투리라고도 하시고, 어떤 분들은 '서산'(서울+부산) 사투리래요. 제가 생각하기엔 조금 섞인 거 같아요. '서산' 사람이거든요.(웃음)"
김초희 감독은 김도영 감독의 단편영화 '자유연기'에서 독박 육아에 지쳐버린 배우 지연을 연기한 강말금을 보고 찬실이로 점찍었다. '자유연기'로 강말금은 제17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연기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30대 후반의 나이로 그는 영화계 루키가 됐다. 이전까지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강말금이다.
"찬실이와 저는 닮은 구석이 있어요. 다만 찬실이가 크고 깊은 실패를 겪었다면, 저는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후부터 작은 실패를 무수하게 겪었어요. 21살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어서 대학교 극회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하지만 저 같이 평범한 애가 배우를 한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죠. 이런 상황에서 연기를 향한 꿈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어요. 돈이 필요했고, 삶이 급박하게 흘러갔어요. 차분하게 새로운 걸 도모할 상황이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어린 애처럼 20대를 보냈어요. 계속 남 탓만 하고요."
그렇게 강말금은 잠시 꿈은 접어두고 회사에 입사했지만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고. 연기 갈망도 커져갔다. 그래서 다시 극단으로 들어가 기본기를 다지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연기를 하니 얼마나 잘하겠나. 하던 것도 다 까먹은 상태였다. 기대만큼 안 됐고 되려던 것도 다 엎어졌다. 마음이 못나지더라. 그래서 술을 마시다가 뜬금없이 영에게 화내는 찬실이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의연한 답을 내놨다.
"30대부터 제 마음이 개선됐어요. 43살인 지금, 30대를 돌아보면 후회 없어요. 솔직히 지금도 모든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니지만, 어제 했던 고민은 오늘 하지 않는 걸로 개선시켰죠. 10년 전에 절 만났던 사람은 놀랄지도 몰라요.(웃음) 그 땐 '너는 왜 바닥에 발이 붙어있지 않니'라고 하셨거든요. 그래도 제가 인복은 많나 봐요. 늘 선배님들이 저를 도와주려고 하셨어요. 지금은 바위가 됐어요."
본명인 강수혜를 뒤로 하고 강말금이라는 이름을 활동명으로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강말금은 "20대를 연약하게 보내다 보니 저라는 사람 자체가 많이 연약해졌다. 사람이 강하면 이름이 뭔들 상관없지만 저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배우 이름을 갖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못난 강수혜 말고, 건강한 이름을 원했다. 제 친구 중에 시를 잘 쓰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닉네임이 '말금'이었다. 그래서 제가 팔라고 해서 가져왔다. 또 당시엔 '이제 서른이나 됐으니 아줌마 연기나 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이 들어서 촌스러운 매력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또 새로운 복이 왔다.(웃음) 처음엔 이 이름이 쑥스러웠는데, 여러 사람이 불러주기 시작하면서 이름이 됐다"고 전했다.
"저는 인복이 있어요. 2년 전부터 '나는 사랑받는 팔자야'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비빌 언덕이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니까 걱정이 없어졌어요. 이번 영화에서 김초희 감독님을 만난 것도, 윤여정 선생님, 윤승아 씨, 배유람 씨, 김영민 씨 등을 만난 것도 그렇죠. 특히 윤여정 선생님과의 연기는 정말 재밌었어요. 어렵기도 했지만 연기를 볼 때면 경탄스러웠어요. 다만 저 때문에 테이크를 한 번 더 가게 될 땐 홀로 걱정하곤 했죠.(웃음)"
강말금은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우화 같은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영화는 복잡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찬실이의 시간이 선형적으로 흘러간다. 남녀노소가 볼 수 있는 영화다. 다른 건 몰라도 복잡했던 머리가 상쾌하고 가벼워질 거라고 본다. 예전의 저처럼 연약해진 사람들, 주변 상황, 개인의 애달픔, 고달픔으로 지친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보다 더 심플해져서 막연한 고민 말고 내일 당장 할 일을 하면서 극장 문을 나서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며 영화를 향한 꾸준한 관심과 애정을 당부했다.
한편, 강말금은 최하나 감독의 '애비규환'으로 다시 관객을 찾을 전망이다. 그룹 에프엑스 출신 배우 정수정(크리스탈)이 출연을 확정하며 눈길을 끈 '애비규환'은 불같은 사랑으로 임신을 하게 된 대학생 토일(정수정)이 결혼을 앞두고 친아빠를 찾아가는 여정을 재기 발랄하게 담아낸 소동극이다. 강말금은 "저는 크리스탈의 시어머니로 출연한다"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5일 개봉.
[사진 =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찬란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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