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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배영만이 다사다난했던 인생사를 털어놨다.
10일 오전 방송된 채널A ‘행복한 아침’에 유행어 ‘맞다고요’, ‘아니라고요’로 큰 인기를 끌었던 개그맨 배영만(62)이 출연했다.
이날 배영만은 “제가 후두암 말기 판정을 받았었다. 지금은 완치했다. 그런 역경을 다 겪었지만 내 인생을 바꿔준 ‘감사의 힘’이 있었다. 긍정적 마인드로 바꿨다. 모든 걸 감사하자. ‘어차피 내가 이렇게 된 거 좋은 마음으로 살다가 가자’ 했더니 인생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11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는 배영만은 “그 형제들 사이에서 제가 살아남은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배영만은 “우리 때는 풍부하지 않았다. 간식이 어디 있냐. 정말 어렵게 살았다. 아버지는 산에 나무를 잘라서 파는 직업이라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왔다. 어머니 혼자 11명을 키웠다”고 말했다.
이어 “얼마나 힘들었으면 떼어놓고 도망간다고 했다”며 “어느 날 어머니가 새벽2시에 일어나서 몰래 보따리를 쌌다. 골목길 끝에서 반바지에 러닝셔츠 입고 혼자 울고 있었다. 어머니가 혹시나 나올까봐. 진짜 나오셨다. 내 앞에 오는데 나도 모르게 순간 어머니 치마폭으로 확 들어갔다. 엄마 우리 버리고 도망가면 우리 어떻게 사냐고 했다”며 어머니를 붙잡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군대와 관련한 일화도 전했다. 최전방에 배치된 배영만. 북한 홍보 전단에 ‘못 먹고 굶주린 군인의 모습’이라며 사진이 찍혀 최전방에서 후방으로 전출됐다고. 배영만은 “헌병에게 물어봤더니 ‘넌 적의 선전 대상이 된다’고 했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군에 에어로빅을 처음 보급하기도 했다고.
개그맨이 된 계기도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갈 노동자로 지원했는데 어느 날 TV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김명덕을 봤다고. 김명덕을 찾아갔는데 너무 바빠 만나지 못했고, 나오는 길에 만난 경비 아저씨의 추천으로 개그맨 시험을 보게 됐다는 것. 배영만은 “얼굴만 보고 합격” 됐다며 “딱 보더니 ‘재수 없어. 나가’라고 했다. 합격발표를 못 봤으면 지금 이 자리에 못 있다. 합격 발표를 하는 꿈을 꿨다. 혹시나 해서 전화를 해봤더니 붙었다고 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2차 시험 역시 얼굴만으로 합격했다고. 배영만은 “그 당시에 이주일 씨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이주일보다 더 못생긴 사람을 찾으라’고 해서 최종 합격됐다”고 설명했다. 동기로는 김미화, 김종국, 장용, 임미숙 등이 있다고.
하지만 최고의 전성기 시절 도박중독에 빠졌다는 배영만. 그는 “배워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빠지다 보니까 재산도 다 날리고, 집도 다 날리고 그렇게 됐다. 3년 동안 3억을 잃었다”고 고백했다. 당시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는 그는 “큰아들이 연기를 한다. 31살이다. 큰아들이 태어날 때 난 도박장에 있었다. 장모님이 전화를 했다. ‘애가 나오는데 어디 있나. 빨리 오게’ 그러길래 장모님한테 ‘어머님 애는 나오면 받을 사람이 있지만 저는 본전 찾아가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것 때문에 가정이 완전히 쑥대밭이 됐다”고 털어놨다.
이랬던 배영만은 장모 덕분에 도박중독에서 빠져나오게 됐다. 배영만은 “저희 장모님이 제가 하도 도박에 빠지니까 타짜를 불렀다. ‘당신 뭐 가지고 싶냐’며 섞어보라고 했다. 섞었더니 내가 원하는 걸 다 만들어줬다. 둘이 하는데도. 내가 너무 놀라서 끊어버렸다. 내가 속았구나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교통사고 보상금으로는 노름빚을 갚았다. 배영만은 “8톤 트럭이 80킬로로 와서 저를 때렸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멀쩡했다. 제가 정신을 잃었었다. 중환자실에 갔는데 뇌가 좌측으로 부어있다고 했다. 그게 더 무섭다고 하더라. 터지면 쇼크사니까. 빨리 수술하자고 했는데 집사람이 안 된다고 했다. ‘개그맨이다. 머리하고 입으로 먹고사는데 수술하면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집사람이 이겼다. 독일의 비싼 약을 수입해서 약물치료로 나았다. 그 당시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많았으니까 보험회사에서 합의 보자고 와서 2500만원 보상금이 나와서 노름빚을 갚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다시 시작한 방송 활동. “정말 감사하게 열심히 살았다”는 배영만은 돈을 벌어 집을 지었지만 딸이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그는 “행사를 갔는데 전화가 왔다. ‘지금 딸이 죽었어요’라고 했다. 아이 엄마는 응급실에 쓰러져 있다고 했다”며 “의사 선생님한테 살려달라고 했더니 죽어서 왔다고 했다.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싶었다. 집사람은 졸도해 있고. 와이프가 그러는데 애가 열이 있어서 경기를 해 병원에 갔더니 감기라고 했다고 그러더라”라고 두 살배기 딸을 먼저 떠나보낸 일을 털어놓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촉촉해진 눈으로 배영만은 “집사람이 우울증도 오고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애가 들어섰다. 막내가. 그 아이에서 끝났다면 아마 우리 가정도 깨지고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라며 “사람이 간사해지더라. 걔를 키우면서 조금씩 잊어졌다. 그게 더 가슴 아팠다. 얘 때문에 걔를 잊어야 된다는 게. 화장해 뿌려놓은 데를 지나가면 제가 차를 세워놓고 많이 운다”라고 말해 먹먹함을 안겼다.
배영만에게 시련이 또 찾아왔다. 후두암 말기 진단을 받은 것. 그는 “큰 병원에 가라고 소견서를 써줬다. 일산의 큰 병원에 갔다. 다행히 모양은 말기 암 모양인데 초기 암으로 판명이 돼서 수술을 했다. 안 나오면 되는데 또 나왔다. 잘랐는데 암이 또 나왔다. 또 재수술했다. 성대에 하얀 게 달려 있어 잘라 놓고 기다렸는데 (암이) 굳어버렸다. 더 이상 진행이 안 된다고 했다. 15년 동안. 그래서 지금 나오는 목소리가 허스키해진 것”이라고 밝혔다.
“굉장히 부정적이었다”는 배영만은 감사를 표현하기로 결심했다며 “생활 목표가 뭐냐면 첫 번째가 ‘감사할 대상을 많이 두자’다. 두 번째는 ‘절제하지 말자. 감사하는데 아끼지 말자’다. 감사를 많이 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으로 바뀌더라. 그리고 감사 일기를 썼다. 긍정의 힘으로 바뀌면 생태계가 바뀐다. 저 보러 표정도 옛날과 달라졌다고 하지 않았나. 기쁘게 사니까”라며 감사의 힘을 전파했다.
마지막으로 배영만은 “살아보니까 고난과 역경이 없는 삶은 없다. 다만, 그때가 지나가 생존해 있으면 아름다운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 어려움을 겪으신 분들, 이 또한 지나가니까 감사해라”라며 자신의 유행어를 이용해 “감사하자고요~”라고 전했다.
[사진 = 채널A 방송 캡처]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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